■현장르포-경북 울진 산불피해 현장을 가다

지난 4일 경북 울진군 북면 두천리에서 최초 발생한 산불은 열흘간 산림과 민가, 시설물 등을 불태우며 역대 최악의 피해를 냈다. 겨울 역대 최저 강수량으로 건조한 날씨가 이어졌고 최대풍속 초속 20m 이상인 서남서풍이 동반되며 울진에서 시작한 산불은 인근의 강원 삼척과 동해, 강릉으로 확산돼 피해면적은 2만5003ha(잠정치)에 이르렀다. 울진이 1만8463ha로 피해가 가장 컸고, 이어 삼척 2369ha, 동해 2100ha, 강릉 1900ha 순이었다. 특히 울진의 산림은 소나무 위주라 송진이 불쏘시개 역할을 하며 삽시간에 확산되기 쉬운 조건을 지닌 탓에 피해가 컸다.

▲ 울진군 죽변면 이재심씨는 피땀 흘려 일군 터전을 산불로 모두 잃어 망연자실해 하고 있다. 창고와 작업동을 포함해 75평의 김치공장이 이번 산불로 잿더미가 됐다.

산불로 5000만 원 투자한 김치공장이 잿더미로 ‘폭삭’
농사 시작할 참에 호미 하나 낫 하나 건질 게 없어

5일 새벽 산불로 터전 잃어
경북 울진군 죽변면에 살고 있는 이재심(울진군 죽변면생활개선회장)씨는 남편과 그동안 피땀 흘려 일궈온 터전을 송두리째 잃게 됐다. 재작년 약 5000만 원을 들여 마련한 김치공장이 이번 산불로 잿더미가 된 것이다. 창고와 작업동 등 2동을 합쳐 약 75평의 공장이 남들에겐 크지 않아 보일진 몰라도 이 회장에겐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업자등록까지 마치고, HACCP 인증까지 준비하며 사업규모를 막 불려가던 차에 일어난 일이라 상심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북면에서 시작한 불이 산을 타고 넘어오더니 5일 새벽에 우리 동네까지 덮치더라구요. 대피 해 있다 안심이 안 돼 부리나케 달려와 봤더니 공장이 불타고 있길래 마침 지나가던 소방차 3대를 급히 세워 불을 껐어요. 그래도 공장 옆에 집까지 옮겨붙진 않았어요. 마을에서 산 아래 가장 윗자락에 공장과 집이 있었는데 이웃 두 집까지 타고 다른 집들이 피해를 입지 않은 건 그나마 다행이죠.”

산불이 워낙 거세 소방청은 전국의 모든 소방차를 동원할 수 있는 동원령 1호를 발동했다. 공장불은 끈 것도 울진의 소방차가 아닌 경북의 다른 지역 소방차였다. 조기에 불을 끈 건 천만다행이었지만 먼 지역에서 온 탓에 마을의 방화수 위치까지 다 파악할 순 없었다. 도시지역이라면 쉽게 찾을 수 있는 소화전도 농촌마을에선 그렇질 못한 사정도 이번 산불피해가 커진 데 한몫을 했다. 지척에 실개천도 있었지만 소방차의 호스 길이가 짧아 물을 퍼 담을 수 없어 불을 끄는 데 한계도 있었다고 이 씨는 덧붙였다. 그렇게 안 내리던 비가 주불이 잡힌 후에야 내리자 이 씨는 하늘을 원망할 수밖에 없었다. 고난의 시기를 지나 인생의 수확기에 덮친 재난을 그대로 겪을 수밖에 없는 농업인의 처지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됐다고.

▲ 지난 4일 발생한 경북 울진의 산불은 강원지역으로 확산되며 약 2만5003ha의 역대 최악의 피해가 발생됐다.

민가부터 철거…언제 무너질지 모를 공장은 기약 없어
본인 피해 수습 미루고 봉사활동 나서기도

피해 커 복구 막막
울진시장에 그때그때 즉석김치를 만들어 판매해 온 이 씨의 손맛이 좋아 찾는 단골이 많아지며 집 옆에 김치공장까지 짓게 됐다. 세척기, 절임통, 대형냉장고, 건조대, 작업대 등 최신 설비를 갖춘데다 손수 농사지은 배추와 알타리, 갓부터 젓갈까지 모두 잿더미가 되며 그 허망함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지경이다. 거기다 농번기가 시작될 참인데 이앙기는 물론이고 호미 하나 낫 하나 건질 게 없어 어디에서 이걸 빌려야 할지 아니면 다 사야 할지 모든 게 막막할 뿐이다. 공장에 화기시설이 없어 화재보험을 따로 가입하지 않았던 게 두고두고 후회된다는 이 씨는 다시 재기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거기에 더 걱정인 건 피해복구가 언제 시작될지 모른다는 점이다.

“농업기술센터와 농기계 회사에서 피해조사를 나왔는데 언제 피해가 다 복구될지 알 수 없다고 하더라구요. 언제 무너질지 모를 공장도 철거해야 하는데 이걸 개인이 어떡하겠어요? 군청에선 집부터 시작한다고 하니 제 차례가 언제 돌아올지 그것도 모르겠네요.”

살고 있는 마을을 둘러싼 산의 모양이 꽃모양을 닮았다 해 꽃방마을로 불리는 죽변면 화성1리. 남편도 이장을 맡고 있어 본인들의 피해를 수습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장으로서 남편은 다른 농가 피해조사에 힘을 보태고 있고, 이 회장은 이 와중에도 봉사활동까지 나섰다.

▲ 산불로 화상을 입은 개의 상흔은 그날 상황이 얼마나 긴박했는지 짐작하게 한다.

“저도 저지만 다른 면회장님은 피해도 더 컸는데 코로나까지 확진된 분도 계셔요. 그래도 전 집이 탄 게 아니라 회관이나 모텔, 대피소를 전전하지 않으니 도움 드릴 수 있는 일이 있겠다 싶더라구요. 낮엔 봉사하신 분들이 많지만 밤이고 새벽이고 산불 끄는 분들 끼니 챙겨드릴 분이 없을 것 같아 이틀간 새벽에 지휘본부에서 급식봉사를 했어요. 그래도 전국에서 모여 우리 울진을 도와주러 오신 분들인데 가만히 있을 순 없잖아요.”

본인의 피해복구도 중요하지만 집을 잃고 그리고 농지와 산지에 피해를 본 농업인들을 위한 지원이 시급하다는 이 회장. 농번기가 시작되는 시기인 만큼 농업활동에 더 지장이 없도록 신속한 복구·지원이 이뤄져야 이들이 재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힘내세요-한국생활개선울진군연합회 임원진

어려울수록 봉사의 가치 빛나

▲ (사진 왼쪽부터)변귀자 오락부장, 김곡지 수석부회장, 송수금 홍보부장

역대 최악의 피해를 낸 이번 산불에 국민들의 응원 또한 역대급이었다. 기부행렬은 물론이고 코로나19라는 엄중한 상황에서도 전국 각지에서 많은 봉사자들이 삶의 터전을 잃은 이들을 돕기 위해 모여들었다. 경상북도에 따르면 16일까지 봉사자는 3713명에 이른다. 전국에서 모인 봉사자들은 산불 진화, 급식 지원, 차량 안내, 민간인 통제, 이재민 지원, 물품 배부 등을 도맡았다. 한국생활개선울진군연합회도 마찬가지다. 산불로 삶의 터전을 잃은 이재민과 지휘본부에 모인 인력들을 위해 간단하게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주먹밥을 만드는 것부터 급식에 필요한 재료손질과 배식을 책임졌다. 또한 전국에서 모인 물품 정리와 이재민의 새까맣게 탄 마음을 보듬으며 진심으로 챙겼다.

김곡지 수석부회장은 “생활개선회가 지역사회에서 받은 것들이 참 많다고 생각해 왔는데 이번에 피해를 본 분들에게 그걸 돌려드린다는 마음으로 임했다”면서 “전국에서 조금이라도 피해를 줄이려고 모인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면서 주민들도 다시 집으로 돌아가 예전처럼 지낼 수 있길 바란다”고 감사와 응원의 마음을 전했다.

2019년 태풍 미탁으로 축사 등의 피해를 봤다는 변귀자 오락부장은 “정말 어려울 때 봉사의 가치가 빛을 발한다는 사실을 미탁으로 많은 걸 잃어봤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 잘 안다”면서 “보잘 것 없다 하더라도 지금 당장 필요한 걸 나누면 그건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질 않는다”며 조금씩 온정을 나눠줄 것을 당부했다.

송수금 홍보부장은 “이번에 큰 피해를 본 이재심 회장은 평소에 언니 동생하며 가족처럼 지내 온 사이라 마음이 더 아프다”며 “큰 피해를 본 주민들이 어서 지원을 받아 하루빨리 일상으로 돌아갔으면 하는 마음뿐”이라고 바람을 전했다.

 

■피해 얼마나 컸나

피해면적 역대최대 2만5003㏊…코로나19까지 확산

▲ 삶의 터전을 잃은 이재민들은 코로나19까지 확산하며 이중고를 겪고 있다.

이번 산불로 피해금액도 역대급을 기록했다. 지난 16일 기준으로 경북의 재산피해는 1294억5587만 원, 강원은 320억8800만 원으로 모두 합치면 1595억4388만 원이었다. 최종적인 피해조사가 끝나지 않았지만 2000억 원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산림청에 따르면 경북 울진과 강원 삼척·강릉·동해에서 난 산불로 주택 319채와 공장과 창고 154곳, 농·축산시설 139곳, 종교시설 31곳 등 모두 643개 시설이 피해를 입은 것으로 조사됐다. 경북과 강원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발생한 산불로 타버린 산림 면적은 2만5003㏊나 된다.

또다른 피해는 코로나19 확산이다. 울진에서 발생한 이재민은 219세대의 335명이다. 가장 피해가 큰 북면이 152세대에 220명, 죽변면이 37세대 67명, 울진읍이 30세대에 48명이다. 대피소에서 한데 모인 이재민들은 거리두기가 거의 힘들어지며 코로나19가 급격히 확산됐다. 3월4일까지 1789명이던 울진의 코로나19 확진자는 5일을 기점으로 급속도로 늘어났다. 산불피해 직후인 5일 하루 확진자가 133명으로 크게 늘더니 12일 225명, 15일에는 305명으로 크게 늘었다. 물론 전국적으로 확산세가 크게 늘어난 건 공통적인 현상이지만 문제는 대피소에서도 확진자가 발생했다는 점이다.

지난 10일 울진국민체육센터에서 생활하던 이재민 중 PCR 검사 결과 8명이 양성 판정을 받았다. 이곳은 이재민 대피소로 운영되며 300여 명이 넘는 주민들이 약 일주일간 집단생활을 해오고 있었다. 울진군은 이재민 일부를 씻는 문제부터 숙식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덕구온천호텔로 옮기는 한편, 원하는 이들은 마을회관이나 친인척집에서 머물도록 해 최대한 분산시켜 감염 우려를 해소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재민을 분산한 이후에도 덕구온천호텔 17명, 마을회관 4명 등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다.

거기에 울진의 나곡쓰레기처리장이 전소하며 생활폐기물과 침출수 처리에 곤란을 겪고 있다. 울진군은 정부에 쓰레기처리장 신축과 폐기물 처리비용을 포함해 199억 원의 국비지원과 생활폐기물의 타 시설 위탁과 선별인력 지원을 환경부에 건의했다.

 

■보상과 지원은 어떻게

주택 전소 1600만원까지 지원…농기계는 지원 불가능

▲ 화재로 피해를 입은 집은 전소 시 1600만 원, 반소 시 800만 원의 지원을 받게 된다.

정부는 지난 6일 울진과 삼척, 6일 강릉과 동해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대형산불로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한 건 2000년 동해안 산불, 2005년 양양산불, 2019년 강원 동해안 산불에 이어 네 번째다.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된 이후 정부의 지원은 크게 5가지로 나뉜다. ▲이재민 긴급구호와 주거지원 ▲피해주민 생활안정 ▲농·임업인 영농재개 ▲중소 자영업자 등 경제활동 지원 ▲세제와 금융지원 등이다.

그중 농식품부는 보유한 볍씨 202톤과 씨감자를 무상으로 공급한다. 비닐·호미·낫·삽·육묘상자·상토 등 피해 농기자재 보급과 농기계 제조업체의 A/S반 무상 수리를 지원한다. 피해가축에 대한 수의사 진료와 처방, 사료·동물의약품 등도 긴급 지원된다. 농축산경영자금의 상환 연기와 2.5% 이자 면제, 신규대출 지원도 이뤄진다. 산림청은 임업인 경영자금 상환 연기와 연이율 1.8% 1년 거치 1년 상환으로 2000만 원의 신규대출을 지원한다.

감면되는 공공요금으론 최대 50%로 3개월분의 건강보험료 경감과 국민연금이 최대 1년 납부가 유예된다. 전기요금은 최대 12개월분, 가스요금은 1개월분이 감면 또는 납부 유예된다. 통신요금은 세대당 1만2500원, 인터넷요금은 월50% 감면된다. 세제지원은 종합소득세와 부가가치세 납부기한이 최대 9개월 연장되고, 취득세 면제와 지방체납세와 체납처분이 6개월간 최대 1년까지 유예가 연장된다. 재해관련 보험금은 추정보험금의 50% 내에서 선지급된다.

하지만 충분치 않은 정부의 지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크다. 국민의힘 박형수 국회의원(경북 영주·영양·봉화·울진)은 “주택 전파 시 1600만 원, 반파 시 800만 원이 지원되지만 주거 내 가전제품, 가재도구, 차량, 트렉터, 농기계 지원이 불가능한 점은 개선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한 금융지원 시에도 정부는 연리 1.5% 최대 8800만 원을 제시하지만, 일정한 수입이 없는 고령의 노년층이 많은 피해지역의 특성상 무이자 대출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박 의원에 따르면 행정안전부 1000억 원, 산림청 500억 원, 농림축산식품부 2000억 원 등 올해 편성된 부처별 재난대책비를 포함해 정부의 가용예산을 모두 동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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