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자매네 반디농장 김영란의 전원일기(54)

사랑은 사랑을 낳고 기적을 만든다...
방전된 내 몸에 생기가 돌아온다!

세 번째 눈이 내리기 전날까지(1월10일) 귤을 다 따냈다. 정확히는 몇 그루 남았지만, 그 정도는 눈 맞아서 얼어도 마음에 두지 않아도 될 정도의 양이다. 주변이 온통 귤밭이어서 주변에 사는 새들이 맘껏 귤을 먹었는데, 이제는 더 먹을 게 없는데 어쩌면 잘 된 건가...
이런 식으로 위로하며 펑펑 쏟아지는 눈을 감상했다. 이제야 눈을 마음 편히 감상해도 해도 된다. 휴~~~

긴긴 겨울동안 귤 이야기만 했고, 귤만 생각했어서 귤 이외의 것은 생각이 나지를 않는다. 세상사 어지러운 이야기들도 가끔 간섭하고 싶다가도 입을 다무는 연습을 하고 있다. 지금은 코로나19로 시끄럽지만 세상은 한결같이 복잡하고, 시끄럽고, 아우성을 치면서 큰 수레가 굴러 왔으니까 큰 틀에서 보면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다.

나 같은 민초도 시국선언을 하고 싶을 만큼 나라는 어지러워서 지혜롭고 강직한 리더들이 절실히 요구되는데, 이 사회는 어른다운 어른을 찾기 어렵다. 이미 누가 봐도 어른의 나이인 나조차도 흔들리고, 헷갈리고, 혼미한데 우리 아이들은 어디를 보고 가야할까? 혼미한 가운데 이런 생각까지 드는 것을 보니 이제 내가 귤 세상에서 인간세상으로 복귀하려나 보다.

귤을 다 따고나니 마음은 후련한데 몸은 방전돼 기진맥진이다. 아직도 마지막 남은 고지를 올라야 하는데(남은 귤 판매와 정리) 마중물을 부어도 기운이 솟지를 않는다. 해마다 겨울을 이렇게 극한직업처럼 겪고 나면 삶 앞에서 경건해진다.

이맘때면 동병상련의 예쁜 마음들이 마음을 덥혀주는 선물들을 보내오곤 한다. 연락도 없이 택배가 오곤 하는데, 눈시울을 뜨겁게 하고 말문이 막히게 하는 정 담은 선물들이 종종 온다. 3일을 고아 만든 생강조청, 고춧가루 한 봉지, 들기름 한 병, 참깨 한 봉지, 김부각, 강정, 사과, 시래기, 대구, 닭갈비, 한우, 꽃, 심지어 커피 배달까지... 말없이 보내놓고, 물어보지도 않는 선물들.

농사짓는 나를 응원하느라고, 우리 귤을 사서 주변에 선물을 하고도 선물까지 주는 천사님들은 어떻게 생겼을까? 자신의 선행을 드러내지 않고, 말없이 베푸는 사람들 덕분에 옹졸했던 나도 많이 배우게 됐다. 그들을 생각하니 시나브로 기운이 솟기 시작한다. 그들의 응원이 내게 마중물이다. 첫 마음을 잃지 말고, 한결같이 잘 가라는 응원. 내가 그들에게 등대가 되고, 그들은 나의 등대가 돼줬다.

2년 전에 귤이 많이 달려서 10년이 넘은 회원님들께 귤 한 상자씩 선물하려고 찾아보니 100여 명이 훨씬 넘었다. 한 자리에서 묵묵히 계신 분들. 이렇게 좌청룡 우백호 남주작 북현무의 사신도처럼 사방을 에워싸고 지켜주는 수호신들이 계신 것에 놀라고 감사해 다시 첫마음을 추스를 수 있었다.

내가 17년을 쓰러지지 않고, 한길로 매진해 올 수 있었던 힘. 생산자인 나는 정직하고 믿음 가는 농산물을 생산해 도시소비자인 회원님들께 생명의 먹거리를 제공하는 것이 소임이라는 것을 따뜻한 회원님들이 늘 일깨워 주셨다.
사랑은 사랑을 낳고, 용기를 북돋아서 기적을 만들기도 한다. 내가 받은 사랑을 하나씩 떠올리니, 방전된 내 몸에 생기가 돌아온다. 다시 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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