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자매네 반디농장 김영란의 전원일기(51)

"남을 고치려 하지 말고 
나를 고치는 게 낫다는 
자각이 왔다... 둥지에 
작은 평화가 찾아왔다"

말 한마디에 모든 상황이 와장창 깨지는 경험을 한 적이 있는가? 며칠 전 <겸손은 힘들어>팀의 일원인 자칭 유리공주님네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하고 안주인과 차를 마시며 담소를 하고 있는데, 나지막한 귀를 스쳐가는 소리. “공주 비위 맞추기 너무 힘들어서 식당 접어야겠어~” 하는 소리가 들렸다.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공주님 남편의 소리인데, 우리는 둘 다 그 소리를 들어버렸다. 그날은 손님이 한꺼번에 몰려서 무지 힘들었노라고 유리공주가 나에게 하소연을 하는 중이었고, 나는 그 힘든 상황을 잘 이겨내서 훌륭하다고 치하하고 있는 중이었다.

일순간 짧은 정적이 흐르고, 유리공주의 눈빛이 섬광처럼 번쩍였다. 공중에서 스파크가 터지고, 노고를 치하 받고 싶던 유리공주는 그동안 쌓인 울분이 폭발하고 말았다. 
아차차... 나는 순식간에 칼로 물 베는 부부싸움에 관객이 되고 말았다. 이럴 때 그 무슨 말이 위로가 되겠는가? 제3자일 때는 객관적인 입장이 돼서 문제점이 보이고, 해법도 보이지만 당사자일 때는 첩첩이 쌓인 해묵은 감정까지 동원돼 이성을 잃고 오직 나의 감정만이 펄펄 뛸 때가 부부싸움인 것을 나도 경험했기에 이럴 때 그 어느 편도 들어주면 안 된다는 것을 안다.

마흔일곱 살에 명퇴 당하고 집으로 돌아온 남편과의 24시간 동거는 나의 지난한 귀농생활 중 가장 큰 고충이기도 했었기에 도를 닦아야 하는 심정을 이해한다. 24시간 함께 하면서 충분히 소통하지 못하고 쌓여가는 불만이 팽배할 즈음에, 내 일생일대의 부끄러운 사건이 터졌다. 

남편도 욕구불만이 쌓였는지 어느 날 아주 사소한 일로 의견충돌이 생겼는데,  남편이 나를 향해 쌍욕을 했다. 귀를 의심했다. 문제의 본질은 다 날아가고, 오직 그 욕만 내 귓가에서 확대 재해석돼 분해서 참을 수 없었다. 명퇴 당해서 집으로 돌아왔어도 이해해줬고, 무기력하게 손을 놓고 있어도 다 이해해줬건만 나에게 욕을 해???
‘이 수치와 모욕을 고스란히 돌려주마...’

그 순간은 얼결에 되갚음을 못해주고, 나는 다음에 또 그러면 두배로 갚아주어서
어떤 심정일지를 맛보게 해 주리라~하며 그날부터 생전 안 해본 욕을 연습했다.
“절묘한 순간에 강펀치를 날려주마~”

기회가 왔다. 또 남편의 입에서 욕이 나오는 순간, 그 두 배로 내가 욕을 돌려주니 남편이 기가 막혀서 버벅거리다가 옆에 있는 물건을 땅에다가 내리쳤다. 그것도 예견해 준비해뒀지. 옆에 준비해 둔 플라스틱 바가지를 박살내버렸다. 
“욕 들은 기분이 어떠셔~” 하고 나는 방으로 들어와서 문을 잠갔다.

그 후, 나는 스스로가 너무 부끄러워서 다시는 이러지 말자고 결심했다. 이 나이에, 이 무슨 유치찬란한 행각이란 말인가? 남의 편을 고치려 하지 말고 나를 고치는 게 낫다는 자각이 왔고, 가정을 깰 요량이 아니라면 내가 변하는 게 빠르다고 생각했다.
남편이 원하는 것을 맞춰주려고 했고, 남편도 조심하는 태도로 변했다. 그리고 둥지에 작은 평화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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