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자매네 반디농장 김영란의 전원일기(49)

  투혼의 귤나무를 만났다. 
“내가 너를 닮았나?” 
  감정이입이 돼 
  귤나무 앞에서 울컥했다.

귤농사 중 가장 좋고 쉬울 때가 귤을 따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귤 따느라고 가위질하는 것만 대략 하루에 1만 번 정도 하는 것 같다. 효율적으로 일하기 위해 귤을 따는 사람과 따 놓은 귤을 운반하는 사람이 나눠져 있어서, 귤 따는 사람은 하루 종일 가위질을 해야 한다. 

한 개의 귤을 딸 때 두 번의 가위질을 하는데, 나무에서 익은 귤을 골라 따는 우리는 한사람이 대략 10㎏짜리 바구니 40여 개 정도 딴다. 따놓은 귤바구니를 컨테이너상자에 옮겨 담고 운반하고, 쌓고 하는 일은 남편이 하는데 하루에 수십 톤은 들었다 내렸다 한다. 한꺼번에 마구 따 내리는 다른 집의 경우는 베테랑이 두 배 정도 더 따기도 하지만 우리는 골라 따느라고  수확할 때 인건비는 두 배 이상 든다. 

하루에 1만 번의 가위질을 하면 손아귀가 얼얼하지만, 귤을 따는 일은 가끔 맛있는 귤로 목을 축일 수도 있어서 여타 밭일에 비해 신선놀음이라고까지 빗대 말하기도 한다. 그래도 초보 일꾼은 하루 종일 서서 1만 번 이상의 가위질을 하는 일이 고돼 몸살이 난다고 하는데, 전 과정의 노동 강도를 아는 나는 귤 따는 것만 하면 좋겠다고 말한다.

하루 종일 귤만 따고 집에 와서 곤한 몸을 충분한 잠으로 피로를 푼다면 능히 할 만한 일인데, 나는 전량을 택배로 직거래하는지라 밤에는 컴퓨터에 주소를 입력하다보니 수면시간이 부족하다. 고객들의 다양한 요구들을 반영해 제대로 입력해야 해서 이 일은 다른 사람이 대신 해줄 수가 없다. 이맘때 나는 혼이 반은 나간 사람처럼 정신이 오락가락 할 때가 있다. 졸음운전처럼 깜빡해 주소가 한글자라도 틀리게 입력되면 배달사고가 난다. 

정신을 차리려고 찬물로 세수를 하고, 눈꺼풀이 내려앉는 것을 치켜뜬다. 이 와중에 그림이 그리고 싶어지다니... 한 시간만 그려보자며 딴 짓도 한다. 시간을 재다가 허둥거리는 자세는 평생 고쳐지지가 않는다. 그래도 이 시기가 늘어진 의식을 긴장시키고, 사라사테의 ‘치고이너바이젠’ 음률처럼 얼음이 쨍하고 갈라지는 듯한 예리한 스릴을 느끼기도 한다.

이제 수확의 반환점을 돌려고 하는 이 시점에 피로가 쌓여서 사고가 나기 쉽다. 이때부터는 정신력으로 감당한다. 몸의 균형이 조금만 깨져도 사고 우려가 있고, 정신이 느슨해져도 사고 위험이 있다. 
농번기 농부의 이런 치열한 삶의 현장을 전혀 모르는 고객들이 “맛이 시다” “지난해와 다르다” “껍질이 두껍다” “크다” “작다” 등등 전화를 해서 맘에 들지 않는 부분을 따진다. 심지어 환불요청도 한다. 정당한 대가를 지불한 고객의 권리이지만, 농산물이 공산품처럼 일정한 맛과 품질을 유지하기 어려운 수백 가지 환경요인들을 고객들은 모른다.

직거래의 어려움인데, 초기에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으나 이제는 충분히 설명해도 안 되면 반품하시라고 한다. 속으로는 “직접 농사지어서 드셔요~” 하고 싶다.
귤 따다가... 투혼의 귤나무를 만났다. “내가 너를 닮았나?” 감정이입이 돼 귤나무 앞에서 울컥했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리라” 온 몸으로 귤나무가 말했다.
나의 겨울은 온통 귤색이다.

저작권자 © 농촌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