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자매네 반디농장 김영란의 전원일기(48)

"치매는 어쩌면 암보다도 
더 아득한 질병일지도...
행복하게 이 순간을 즐겨야지~"

귤 수확철만 되면, 유휴노동력인 큰언니가 서울에서 귤을 따러 오셨다. 햇수로 10년 가까이 오셨으니 큰언니도 귤 따는 데는 베테랑이라 할 수가 있다. 지난해 한해를 거르고 올해도 오셨는데, 큰언니의 치매가 많이 진행돼서 조카도 나도 치매문제를 적극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해마다 10%정도씩 치매인가 건망증인가 싶은 변화가 느껴지더니, 한해를 건너 띄고 온 올해 보니 확실히 치매성이고, 우리는 마음의 준비를 서둘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치매인지 아닌지 구분하는 것은 단기기억인지능력으로 구분된다고 한다. 과거의 어느 날은 정확하게 기억하는데 아주 가까운 어제나 조금 전 일은 잊어버리고, 같은 말을 반복하는 상황은 치매라고 보면 된다 한다.

전문가 의사선생님이 “오늘 아침 무엇을 드셨습니까?” 하고 물어보는데, 잘 기억을 못하고 횡설수설하면 치매라고 본다고 하셨다.
큰언니는 함께 일하는 <믿음>씨에게 1시간 전에 한말을 또 하고, 또 한 시간 후에 같은 말을 반복하고, 하루에 네댓 번은 같은 질문을 한다. <믿음>씨는 신심이 깊고, 2% 부족한 오빠를 돌보고 있는지라 다 이해한다고 말했지만, 일일이 들어주고, 맞장구 쳐주고, 웃어 주기란 쉬운 일이 아니어서 미안하고 고맙다.

나도 큰언니가 하는 행동들은 치매에서 오는 비정상적인 행동이 많아 환자적인 관점에서 보게 되니 이해가 되고, 연민이 샘솟는다. 아직은 일상생활은 가능한데 좀 더 진행돼 자신조차 잊어버리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있지만, 담대한 마음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지 하며 마음을 무장하고 있다.
치매 이야기만 나오면 읽어보고, 들어보며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하는데, 정작 당사지인 큰언니에게 치매가 오고 있다고 이러이러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하면 펄쩍 뛰면서 “나는 치매가 아니야~”하며 도리질을 한다.

큰언니보다 나이가 2살 더 많은 마중물 언니는 생활습관이 규칙적이고, 식사, 운동, 사회활동, 소통 등등 젊은이 못지않게 활발하게 지내시니 19년 젊은 나보다도 짱짱하다며 치매예방 비결을 알려주니 화까지 낸다. 아직은 완전 치매로 가지 않았고, 경계선에서 의식이 넘나드니 자존심을 건드린 것인지, 남하고 비교하지 말라고 화를 낸다. 본능만 남고, 학습된 것들은 잊어버리는 치매. 어쩌면 암보다도 더 아득한 질병일지도 모르겠다.

귤 따기에 베테랑급인 큰언니에게 “언니, 잘 익은 귤만 따세요. 큰귤, 못난이 귤, 덜 익은 귤은 따면 안돼요~” 하고 일러줬는데, 10분도 채 안 돼 보면 아무 생각 없이 모두 다 따고 있다. 전 같으면 나는 화를 내며 잔소리를 따발총처럼 쏘아댔겠지만, 큰언니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한다. 자존심마저 없어지면 더 슬프지 않을까? 

“비상품은 따로 골라서 주스로 만들어야지~” 
이런 너그러운 맘이 내게 언제 생겼는지 모르겠다.^^
제주도의 파란 하늘을 보며 거꾸로 들고 마시고 싶다는 예쁜 시심도 아직 있고, 예지랑날(늦은 오후)에 김장까지 했다고 좋아하는 큰언니. 그림교실에도 함께 가서 동심을 끌어내보려고 한다.
지금 이 순간, 행복하게 즐겨야지~ 인생은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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