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촌愛살다 - 전북 김제시 ‘태양별농장’ 김대천 대표

▲ 김대천· 박지은 부부

서울살이 14년 접고 아내 고향으로 귀농
여주차·비트차·돼지감자차로 ‘부농꿈’ 착착
자료수집과 시행착오 거치며 작업 매뉴얼화

지평선의 고장 전북 김제. 서쪽은 낮은 언덕 하나 찾기 어려운 드넓은 평야지만 반면에 동부는 모악산을 정점으로 크고 작은 구릉지도 제법 펼쳐진다. 김제는 그래도 밭보다 논이 훨씬 더 많다. 전국 쌀 생산량의 1/40이 김제에서 생산된다. 
김제시 공덕면은 만경강변을 따라 충적평야가 잘 발달된 지형이다. 공덕면은 만경강의 충적작용과 감조하천의 유역으로 넓은 간석지가 발달해 대부분 황무지였으나, 만경강 제방공사 이후 개간돼 미작(米作) 농업지대로 전환된 고장이다.

갑을관계 직장생활에 염증...
만경강 중하류의 목천대교를 막 지나서 공덕대교 옆길로 돌아들면 만경강변을 주변으로 논과 밭이 자연스럽게 펼쳐진다. 저만치 동촌마을이 보일 때 쯤 ‘태양별농장’(공덕면 회룡길)이 우두커니 반긴다. 태양별농장은 여주와 비트, 돼지감자 등을 재배하는, 이제 귀농 3년차인 김대천 대표(35)의 꿈과 야망의 터전이다.

“서울에서만 살다가 귀농을 하니 많은 사람들이 걱정했습니다. 농사도 알아야 짓는 것이고, 또 거기다 육체적인 힘겨움도 쉽지 않다는 것이었지요. 그래도 확신을 가지고, 젊음을 믿고 내려왔습니다. 지금은 어느 정도 적응하면서 더 잘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습니다.”
김대천 대표는 서울이 고향이다. 서울과 인천에서 대부분을 살았다. 귀농 전만해도 서울의 자동차정비공장에서 14년여 직장생활을 했다. 

“직장생활을 오래 하면서 힘들다는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팀장으로 일하면서 매출과 고객 관리 등도 신경이 쓰였죠. 언제나 을로서 고개 숙이고 인사하고 사과하는 일들이 일상화되다보니 정신적으로 힘들었나 봐요. 게다가 전기차가 막 대중화되면서 나중에 공업사를 차려야겠다는 꿈도 결코 밝지 않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귀농을 결심하게 됐죠.”

▲ 여주환

여주 등 건강기능성 작목으로...
김 대표는 귀농하면서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아내 박지은 씨(37)의 고향이 농도 전북이기 때문이었다.
“아내의 고향이면서 장인과 장모가 계신 곳으로 귀농을 생각했어요. 그리고 서구화된 식습관과 당뇨환자 등에 초점을 맞춘 농사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여주와 비트를 일찌감치 재배작목으로 정했지요. 이후 무작정 농촌진흥청 도서관과 인터넷 홈페이지 등에서 여주와 비트 재배와 관련된 다양한 자료를 모았습니다. 그리고나서 2019년 11월 서른셋에 일단 귀농을 하게 됐죠.”

김 대표는 처갓집 근처에 토지를 매입하고, 지자체에서 일부를 임대해 약 1만㎡(약 3천여 평)의 농지를 마련했다. 농장 이름도 두 아이의 이름인 ‘태양’과 ‘별’을 따서 ‘태양별농장’으로 지었다. 그리고 이듬해에 1200여 평의 여주밭에서 5톤 정도의 여주를 생산해냈다. 생애 최초의 농작물 수확이었다.
“지난해 첫 수확의 기쁨은 지금도 짜릿하네요. 물론 장인과 주변 마을 분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지만 그래도 초보농사꾼으로서는 성공적인 수확이었지요. 여주는 농사짓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요. 지금 3년차를 맞았는데도 마땅히 큰 도움을 받을 곳이 별로 없습니다. 여주 재배에 대한 정교한 매뉴얼도 구하기 쉽지 않고요.”

김대천 대표는 요즘 모든 농작물 재배 과정을 매뉴얼화 하는 것이 일상이다. 곁순을 언제 따는지, 생장점을 어떻게 관리하는지 등등을 시행착오와 경험으로 기록하는 것이다.
“농사는 시간과의 싸움이더라고요. 새벽 5시에 나가서 10시 이전에 작업을 마치려고 노력합니다. 여주와 비트, 돼지감자를 한꺼번에 관리하다보니 결코 쉽지 않은 작업입니다. 그래도 지금은 시간이 흘렀다고, 육체를 쓰는 일이 조금은 몸에 밴 것 같기도 하고, 일의 능률도 오르는 것 같기도 합니다.”

▲ 여주농장

온·오프라인 매출 증가에 기쁨 만끽
김 대표는 올해부터 여주차, 비트차, 돼지감자차 등 침출차 3종과 여주환, 강황환 등을 생산하며 본격적인 판로개척에 나서고 있다. 특히 침출자 3종은 김제 하나로마트에도 입점하는 등 다양한 곳에서 입점을 기다리고 있다. SNS 등 온라인 판매 홍보에도 힘쓰면서 조금씩 매출이 증가하는 기쁨도 만끽하고 있단다.

“농사를 짓다보니 결국은 정직이더라고요. 그래야 힘든 일도 이겨낼 수 있고 즐거움도 배가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자부심이 없으면 더 힘들 수밖에 없는 것이 농사입니다. 그리고 마을주민과 주변 동료들에게 항상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농사를 즐겁게 짓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바로 주위 분들과 함께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입니다.”

“소망이 있다면 조그만 식품제조공장을 갖는 것입니다. 지금은 차와 환을 외주가공을 통해서 만들고 있어요. 귀농은 짧았지만 재배·가공·유통을 온몸으로 경험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매출이 더 오르고 자금이 확보되면 나만의 제조 공장을 갖추고 더 좋은 제품으로 소비자에게 다가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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