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자매네 반디농장 김영란의 전원일기(41)

"어쩌다 보니 개엄마가 돼 
삶이 더 분주해졌지만
그들도 사랑과 충성을 보였다"

가을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는 요즘, 난 개 때문에 가슴앓이를 하고 있다. 열흘 전쯤, 개가족 일가가 우리 귤농장에 진을 치고, 귤밭 주인인 나를 향해 으르렁거리며 농장주인 행세를 하고 있는 것이다.
아빠개, 엄마개, 강아지 4마리까지, 개가족 6마리가 처음에는 길가에서 왔다갔다 하더니, 아예 둥지를 틀었다. 멀지 않은 곳의 개 기르는 사람이 개 3 마리를 풀어놔서, 동네 사람들이 개떼들이 몰려다닌다고 아우성을 하며 유기견 신고를 해도 소용이 없고, 여전히 길을 활보하며 위협을 주고 있었다. 그런데 개가족 일가까지 가세해 9마리 개가 길을 가득 메우게 되니, 입이 딱 벌어졌다.

이웃집에는 기르던 고양이 새끼가 두 마리나 개떼들에게 희생됐고, 닭도 물어 죽여서, 개 주인한테 묶어두라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 마이동풍이었다. 세상에 이런 강심장이 있나 싶게 들은 척도 안 한다. 유기견센터에 신고해서 잡아가라고 한다고 해도 “우리 개는 인식표를 내장하고 있어서 잡혀가도 찾을 수 있다.”고 대답하니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이런 마당에 개가족이 우리 농장에 둥지를 틀었으니, 나도 참으로 난감하고, 이웃들은 신고하라고 아우성이었다.
개가족 일가의 행색을 살펴보니 얼마 전까지도 주인에게 식사를 제공받았을 법하게 초췌하지는 않고, 제법 큰 강아지들은 통통했다. 아빠개 엄마개도 그리 굶주려 보이지 않은 걸 보니 멀지 않은 곳에서 기르던 개가 새끼를 낳고, 수컷까지 와서 둥지를 트니까 한꺼번에 쫓아내지 않았나 싶었다.

삽시간에 개농장으로 변했는데도 철모르는 강아지들이 대문 밖으로 내다보는 풍경은 아름답기까지 했다. 
20년째 개를 기르고, 지금도 두 마리의 개엄마인 나는 새끼를 데리고 다니는 개아빠와 개엄마가 안쓰럽기도 했지만 더이상 개를 기를 형편이 안 돼 할 수 없이 유기견센터에 신고를 했다.
‘부디 선한 주인을 만나서 남은 생을 잘 살기를...’

신고를 하고 내가 외출을 한 사이에 포획단이 와서 개가족을 데려갔는데, 그 중 새끼 한 마리가 도망쳐서 남게 됐다. 개사료를 멀찌감치 두니 먹지를 않아서 우유를 주니 엄마젖 맛인지 먹었다. 다음날은 고깃국에 밥을 말아서 갖다 주니 먹었지만 내 근처에서 맴돌기는 하는데 가족이 잡혀가는 걸 봐서인지 절대로 가까이 오지는 않았다. “저 아이를 어찌할꼬...”

집에서 기르는 개 홍복이(강아지 때 제발로 걸어 들어온 아이)와 너무나 번잡해서 두 번이나 주인이 바뀐 닥스훈트 온이를 둘째가 입양해서 키우다가 감당을 못해서 집으로 데리고 왔다.
“사람 손주는 안겨주지 않고 개 손주를 안겨주다니...” 하면서도 정서불안인 온이를 맘껏 뛰놀게 하며 키우니, 지금은 집지킴이로서 사명감을 불태우고 있다. 개손주 온이는 내 팔베개를 하고 잔다.

20년 전에 이웃이 줘서 키운 흰둥이와 얼룩이까지 하면 개와의 인연도 만만치 않은데... 개아들, 개딸, 개손주까지... 나는 어쩌다 보니 개엄마가 돼 삶이 더 분주해졌지만, 그들 또한 사랑과 충성을 보여줬다.

개를 키우다가 버리는 사람들에게 “너, 다음 생에 개로 태어난다”고 말해주고 싶다. 개가 가족이라는 생각을 하면 쉽게 버리지는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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