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론- 김재수의 기승전農

"이제 식량지원을 넘어 
영역과 범위를 확장해야...
식량지원과 기술협력의 
성공 기반을 토대로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 

최근 농업부문의 외교활동이 눈에 띈다. 농촌진흥청이 외교부와 합동으로 중남미에 농업협력 사절단을 파견해 현장 중심의 기술협력외교를 펼쳤다. 농촌진흥청의 코피아사업은 개도국에 우리 농업기술을 보급하는 사업이다. 코로나19로 개점휴업 상태인 정부 타 부처와는 대조적으로 적극적인 농업외교를 펼치고 있다.

현장 실용적인 기술협력이라 현지 국가들의 호응도 좋다. 코피아센터는 대륙 차원의 농업 협력 협의체로 확대돼 ‘한·아시아지역 협의체’, ‘한·아프리카지역 협의체’, ‘한·중남미 협의체’ 등으로 발전됐다. 한·중남미 간 지역협의체 활동은 정상들 간의 공동 선언문에서 다룰 정도다. 코피아센터는 이제 전 세계 22개국에 설치돼 명실상부 농업외교의 성공 모델로 자리 잡았다. 농업분야 기술협력은 영역과 범위가 다양하다. 종자, 양잠, 농기계, 토양 분야의 기술협력을 넘어 농업정책 컨설팅으로 발전한다. 한국의 ‘디지털 친환경’ 농업에 대한 세계 각국의 러브콜도 나날이 증가한다.

농업외교의 우선적 중심은 배고파 고통 받는 국가에 식량을 지원하는 일이었다. 코로나19가 수년간 지속되자 가장 위협받는 것이 식량 부족이다. 세계식량계획(WFP)은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 등 49개 국가가 심각한 식량 위기에 처할 것이며 약 2억7000만 명을 기아상태로 보고 있다. 8월 말 기준 세계 인구는 78억8901만 명이다. 기아인구는 8억1000만 명 수준이다. WFP는 식량 위기에 더해 기후변화, 바이러스 위기가 합쳐져 조만간 복합기근이 올 것으로 예상한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비극적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우리나라는 2018년부터 식량원조협약(FAC)에 가입해 해마다 5만 톤의 쌀을 아프리카, 중동 등 여러 나라에 원조하고 있다. 한국의 식량 지원은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닌다. 배고픈 고통에 처한 국가에 먹을거리를 공급해 생존권을 보장해준다. 글로벌 식량안보에 기여하고 국제사회의 식량 논의에 주도권을 쥐게 되며 우리나라의 국격을 높이게 된다. 국내적으로 쌀 수급안정과 재고관리에도 큰 도움이 된다. 가난과 굶주림, 6·25 전쟁으로 ‘식량원조를 받던 나라’였던 대한민국이 이제 식량자급을 넘어 ‘식량원조를 하는 국가’로 전환한 것은 세계적인 성공스토리다. 우리의 농업부문의 원조는 공적개발원조(ODA)사업으로 시작해 2006년 4억 원에 불과했던 예산규모가 이제 200억 원을 능가한다.

대한민국 농업외교는 이제 식량 지원을 넘어 영역과 범위를 확장해야 한다. 대한민국 국격과 위상도 달라졌다. 식량지원과 기술협력의 성공 기반을 토대로 새로운 길을 찾아야한다. 눈부신 한국의 경제발전 노하우도 필요할 것이다. 우수한 인력, 연구개발과 기술 투자, 자본 축적, 선택과 집중 전략을 접목시켜야 한다. 

중장기적으로 생산성 증대 방안, 즉 ‘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 식량원조는 원조 받는 국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잠비아 학자 담비사 모요 박사가 주장했다. 그는 “아프리카 원조가 아프리카 국가를 죽이고 있다”면서 선심성 물량지원은 부패한 정권을 더욱 부패하게 한다고 강조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의 ‘죽은 원조’(Dead aid)를 하지 말라는 얘기다. 

식량원조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농업정책 컨설팅이다. 품종 개량과 기술협력은 더 강조할 필요도 없다. 1986년 미국 미시간 주립대학의 글랜 존슨 교수와 조지 로스밀러 교수 등은 는 미국 농무부 지원으로 한국농업의 생산·인구·곡물 등을 입체적으로 분석하고 정책 대안을 제시한 적 있다. 카스(KASS ; Korean Agriculture Sector Study)모델로 이름 지은 한국농업 분석보고서는 이미 1978년 책으로도 발간됐었다. 오래된 연구보고서이나 지금 보아도 훌륭하다. KASS 컨설팅 보고서의 많은 부분이 우리 농업정책 수립에 도움이 됐다. 선진국 전문가들의 넓은 안목, 전문적인 식견과 예리한 분석은 매우 유용하다. 대한민국 농업외교도 지금까지 성과에 안주하지 말고 글로벌 대한민국의 위상에 알맞은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할 시기다.
 

김재수 동국대학교 석좌교수/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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