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자매네 반디농장 김영란의 전원일기(33)

"아이들은 좋은 것보다 
나쁜 걸 세제곱해 본받는다
결국 아이들이 스승이다"

40대 끝자락에 만난 박완서님의 책 <어른 노릇 사람 노릇>은 ‘내 나이에 맞게 사람 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읽게 했던 책이었다.
이제 60대, 누가 봐도 어른의 나이가 됐으니 어른 노릇을 생각해 보게 된다. 사람 노릇도 어른 노릇도 성찰해 보면, 언제나 스스로 흡족한 대답을 못하니 늘 나는 미완의 결핍인격체가 아니었나 싶다.

보수세대의 마지막 주자인 나는(나는 아랫세대보다는 윗세대의 정서에 더 가깝다) 세상의 변화에도 둔감한 편이고, 타인과의 관계형성도 느린 편이어서 소처럼 늘 되새김질을 하면서 뒤늦게 깨닫곤 한다. 날아가는 변화의 시대에 거북이걸음으로라도 따라가려는 노력은 윗세대에게서 배운 끈기와 투지를 학습한 것인데, 살아보니 중요한 유산을 물려받은 것 같다.

자본을 물려받지는 못했으나 정신을 물려받은 것이 부모님 세대로부터 받은 귀한 자산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게 됐다.
나를 비롯해 이 시대의 리더인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정신지주가 무너지고, 도덕도, 가치관도 흔들려서 과연 어르신다운지 살펴보게 된다. 우선 나부터 돌아봐도 아이들에게 모범답안의 부모였는지 반성해 본다. 사느라고 정신이 없어서 내 모습이 어떻게 아이들에게 투영되는지를 모르고 산 세월이었는데, 아이들에게서 보여지는 잘못된 습관들이 나를 보고 학습한 것이라는 것을 이제서야 깨닫는다. 

지난주에 21개월 만에 아이들 집에 다녀왔다. 코로나19 사태가 터진 이후에 육지를 나가지 않고, 아이들만 몇 번 우리집에 다녀갔다. 나는 면역력이 떨어져 있어서 제주도를 벗어나지 않았던 것이었다.
세 아이가 모두 미성년은 벗어났으나 엄마가 보기엔 늘 아기라서, 우리의 부모가 우리에게 그랬듯이 소소한 일까지 염려하는 말들을 하게 된다. 오랜만에 아이들 집에 가서 엄마밥을 해먹이려고 가방이 미어터지게 싸는 것을 보고, 남편은 핀잔을 준다. 

실은 아이들은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텃밭 가지, 오이, 밑반찬 등등, 건강식이라고 잔뜩 싼 음식들인데, 남편 말이 맞는 말이지만 엄마가 들고 온 보따리가 보물단지라는 것을 아이들이 먼 훗날 내 나이가 돼서야 알게 될 것이다.

큰아이가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하게 돼서 혹시라도 과민반응이 나타나면 곁에 있어주려고 상경했는데, 엄마가 사랑표현을 먹는 것으로 하다 보니 과잉섭취가 돼서 모두가 지나치게 우량해져 버린 불상사가 생겼는데도 나는 여전히 먹는 것으로 사랑표현을 하는 구식엄마다.

며칠 있는 동안 나도 쉬면서 그림도 그려볼까 하고 도구들도 넣었다. 그런데 아이들 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부터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정리해주고, 청소하고, 음식하고...
내 눈에 거슬리는 것들을 보면 “누굴 닮아서 그러나~” 했다가도 돌아보면 내 모습이 투영되니, 부모 노릇 어른 노릇이 중요하단 걸 깨닫는다.

내 나쁜 습관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아이들을 보고 “좋은 것 좀 본받아라” 하지만 언제나 나쁜 점을 세제곱해 본받아서 나를 놀라게 한다. 결국 아이들이 스승이다.
균형있게 잘 사는 게 어렵다. 펼쳐보지도 못했던 그림도구들을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꺼내놓고 맨드라미 한 송이를 그리면서 “내 탓이요~”를 곱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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