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OCUS- 권익위, 김영란법 일반국민에도 적용…농업계 반발

▲ 국민권익위원회는 7월26일 농축산연합회 등 4개 단체 대표들과의 간담회에서‘청렴 선물권고안’을 추석 때부터 적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간판 김영란법 ‘청렴 선물권고안’ 추석부터 적용 방침
반발 예상해 의견수렴 과정에서 농업계 제외…사실상 패싱

선물가액 상향 대신 청렴 선물권고안 내놓은 권익위
지난 7월26일 국민권익위원회(이하 권익위) 전현희 위원장은 농축산연합회, 농협중앙회, 수협중앙회, 산림중앙회 등 4개 단체 대표들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청렴 선물권고안’을 추석 때부터 적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큰 파장이 일었다. 청렴 선물권고안은 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하 청탁금지법)의 선물기준(음식 3만원, 선물 5 만원, 농수축산물 10만 원)을 민간에도 적용하도록 권고하는 가이드라인이다.

전 위원장은 추석명절 농축수산물 소비 진작을 위해 청탁금지법 시행령의 농수산물 선물가액을 한시적으로 개정하는 것에 대해 법 원칙을 훼손한다는 여론을 이유로 들며 절충안으로 이번 권고안을 마련했다는 입장이다. 이날 의견수렴과 소통을 위한 자리라는 권익위의 설명과 달리 제도 마련 전에 농업계 의견을 청취하는 자리는 없어 일방적인 통보에 불과했다.

이미 지난 5월 민간선물 등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겠다며 권익위는 시민단체와 기업관계자 등의 의견을 수렴했다고 하지만 명절의 주요선물인 농축수산물을 생산하는 당사자인 농수축산업계는 쏙 빠졌다. 반발을 예상하고 사실상 패싱한 거 아니냐는 의구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업인을 더욱 궁지로 몰아넣는 권익위 처사에 극도의 불만을 표하는 목소리가 농업계 곳곳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민간에서 자율적으로 채택하는 윤리강령이라며 강제성은 없다는 게 권익위의 설명이지만,. 농업계는 사실상 민간판 김영란법으로 가뜩이나 코로나발 경기침체와 폭염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농업인들을 절망케 하는 처사라는 게 공통된 의견이다.

지난 11일 청렴 선물권고안과 관련해 권익위와의 간담회 자리에서 농업계 의견을 전달한 한국종합농업인단체협의회 강현옥 감사(한국생활개선중앙연합회장)는 “청렴한 사회를 만든다는 명분으로 권익위의 이번 결정은 코로나로 어려움이 큰 농업계가 그나마 기대하고 있는 명절대목에 찬물을 끼얹는 처사”라면서 “권익위와 간담회에서 이번 권고안 추진에 농업계의 우려를 강력히 전달했으며, 청탁금지법을 개정해 선물가액을 높여야만 한다는 의견을 다시 한 번 강력하게 요구했다”고 전했다.

▲ 지난 11일 국민권익위원회는 종단협과 간담회 자리에서 농업계의 요구사항을 전달받았다.

선물가액 상향 정례화 요구한 농업계에 ‘뒤통수’
권익위 일단 보류결정…의견수렴 더 거치기로

경제약자 부담 줄여준다고?
권익위는 권고안으로 내세운 이해관계자 사이에 적용할 합리적인 음식물, 경조사비, 선물 등의 가액범위를 정하겠다는 것이다. 청탁금지법을 준용해 선물 금액을 정하고 있는 기업이 늘고 있고, 올해 진행한 국민생각함 설문조사에 참여한 국민의 80.4%가 민간 분야 가이드라인 마련에 찬성했다는 이유를 들어 이르면 올 추석부터 적용하겠다는 입장이다. 특히 하청업체 등 경제적 약자의 부담을 덜어주고, 투명한 사회 정립에 역할을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번 추석에 농축산물 선물가액을 기존 10만 원에서 20만 원으로 상향하는 것을 한시조치가 아닌 정례화를 요구해온 농업계 입장에선 오히려 농축산물 판로를 옥죄는 이같은 조치를 받아들일 수 없단 입장이 확고하다.

한국농촌지도자중앙연합회는 성명서를 내고 “시장개방과 기후변화, 부족한 인력으로 삼중고를 겪는 농수축산인을 벼랑으로 내모는 처사”라며 “사실상 규제나 다름없는 선물가액 기준을 민간까지 확대하면 농축수산물 매출액과 거래량 감소가 불가피하다”고 우려했다. 다른 농업인단체들도 김영란법과 코로나발 경기침체로 위축된 농수축산물 매출액이 일정부분 상승했다는 지표가 확인됐는데도 이번 권고안을 강행한다면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명절대목에 소비가 더욱 위축될 것이라며 권익위 결정 철회를 촉구했다.

농업인의 입장을 대변해야 할 정치권의 소극적 태도도 문제다. 국회 농해수위 이개호 의원이 내놓은 청탁금지법 개정안은 추석 명절 이전 30일부터 종료 후 7일 이내 의례적인 선물인 농축수산물 가액을 20만 원 한도에서 정할 수 있도록 했다. 농협중앙회 등이 명절에 농수축산물 선물 가액 상향을 정례화할 것을 요구한 게 지난 4월이었다. 하지만 법률이 발의된 건 지난 10일로 이번 권고안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자 이를 의식해 법안을 발의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국회 농해수위의 법안소위를 거친 후 상임위에서 개정안이 통과된다 쳐도 법사위와 국회 본회의 일정까지 고려하면 이번 추석에 법을 적용하는 건 현실적으로 힘들어 보인다. 지난달 14일 농식품부와 해수부의 추경안 통과를 위해 회의를 개최한 이후 사실상 잠정휴업 상태인 국회 농해수위가 지금이라도 개정안 처리에 속도를 내야만 이번 논란을 불식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도를 넘는 권익위의 행태에 대해 농해수위 차원에서 결의문 채택은 고사하고 의원 개인별 의견을 제시하는 목소리가 없는 점도 아쉽다.

다행히 이같은 비판을 의식한 권익위가 일단 이번 추석부터 적용하기 위한 전단계인 청렴사회민간협의회에 상정하려던 계획을 일단 보류하기로 했다. 의견수렴 과정이 더 필요해 일정을 연기하기로 했지만 철회가 아닌 보류라 농업계는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국생활개선중앙연합회 이인숙 사무총장은 “가뜩이나 어려운 현실에 처해 있는 농업인들에게 이번 권고안은 청천벽력이나 마찬가지”라면서 “권익위는 보류가 아닌 철회결정을 내리는 것이 마땅하고, 법안으로 선물가액을 20만 원으로 상향하는 것을 보장해야만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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