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광희 칼럼 - 누리백경(百景)(194)

# ‘계명구도’는 한자로 닭 계(鷄), 울 명(鳴), 개 구(狗), 도둑 도(盜)로 닭의 울음소리를 잘 내는 사람과 개 흉내를 잘 내는 좀도둑이라는 뜻이다.
곧, 하찮은 재주를 가진 사람도 쓸모가 있음을 풍자한 고사다. 이 사자성어의 출전은 중국의 사마 천이 지은 《사기》에 나오는 <맹상군(孟嘗君) 열전>이다.

# 중국 전국시대 중기, 제나라 사람 맹상군은 왕족으로서 재상을 지낸 아버지 정곽군 슬하 40여 자녀 중 서자로 태어났으나, 정곽군은 자질이 뛰어난 그를 후계자로 삼았다.
이윽고 설(薛) 땅의 영주가 된 맹상군은 선정을 베풀면서 널리 인재를 모아 명성을 천하에 떨쳤다. 수 천명에 이르는 그의 수하 식객(남의 집에 얹혀 살며 밥을 얻어먹는 사람)중에는 구도(狗盜, 밤에 개가죽을 둘러쓰고 민가에 숨어들어 물건을 훔치는 도둑)와 닭 울음소리[계명]를 잘 내는 자도 있었다.

# 이 무렵 맹상군은 진나라 소양왕으로부터 재상 취임 요청을 받고 이를 수락, 진나라 서울 함양으로 가 소양왕에게 값비싼 호백구(여우 겨드랑이 흰 털가죽으로 만든 갖옷)를 예물로 바쳤다.
그러나 진나라 중신들의 강한 반대로 재상 취임이 무산됐다. 게다가 소양왕이 자신을 없애려 한다는 것을 눈치챈 맹상군은 왕이 총애하는 여자를 찾아가 탈출을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그녀는 호백구를 달라했고, 이 사실을 안 맹상군의 부하 구도가 그날 밤 궁중에 숨어들어가 전날 왕에게 선물한 호백구를 감쪽같이 훔쳐내어 그 여자에게 주고, 탈출허락을 받아냈다.
그러나 문제는 첫 닭이 울어야 문이 열린다는 함곡관을 통과하는 것이었다.
이 또한 계명이라는 부하가 한밤중에 은밀히 민가에 숨어들어가 닭 울음소리를 내어 온 동네 닭이 따라울게 함으로써 관문이 열리자, 맹상군 일행은 무사히 성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 지금 우리나라 안은 내년의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수십명의 후보가 난립해 흡사 도떼기 시장을 방불케 하고 있다.
만백성의 지존인 대통령이란 자리가 그리도 만만한 자리였던가. 땅에 떨어지면 개도 안물어 갈 세속적 스펙을 내세우고, 얄팍한 술수로 선량한 국민들을 현혹시키며, 오로지 표계산 만을 염두에 두고 국민 편가르기에 골몰하고들 있다.

정작 지금 우리에게 시급한 건, 어려움에 처한 민생과 경제를 회생시키는 일이거늘, 이런 나라의 절박한 현실과 미래를 절실하게 고민하는 주자는 보이지 않는다. 하여 속되고 하찮지만, 옛날의 고사 속 인물 -계명과 구도의 진정어린 충심에 불현듯 눈이 가는 옹색한 마음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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