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광희 칼럼 - 누리백경(百景)(193)

▲ 메르켈 총리의 오래된 습관

# ‘무티(mutti)’는 독일어로 ‘엄마’를 뜻하는 말이다. 애초에는 앙겔라 메르켈(67)이 정계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 ‘동독의 촌스러운 아줌마’라는 비꼬는 뜻으로 불렸던 별명이었다.
그러던 것이, 메르켈이 16년의 집권기간 내내 보여준 엄마와도 같은 따뜻하고도 넓은 포용력으로 국민들과 소통하는 소탈한 모습이 그녀의 리더십을 얘기하는 대명사로 굳어졌다.

미국의 유명한 경제잡지 《포브스》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의 여성’ 가운데 1위로 앙겔라 메르켈 독일연방공화국 제8대 연방총리를 선정했다.
동베를린의 물리화학연구소에서 일개 연구원으로 일하던 여성과학도가 통일독일 최초의 여성총리가 돼 16년간 최장수 총리로 유럽연합(EU)을 이끌었던 힘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 그 원천적 힘의 바탕은 부모님의 가르침이었다. 베를린 교외의 루터교회 목사였던 아버지는 그녀와 두 동생이 어릴 때부터 동독의 공산주의 체제하에서 살면서도 비밀리에 서독TV를 보여주며 자유민주주의적 사고를 심어주고, 특히 메르켈에게는 정치적 역량을 키워주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서독 함부르크 출신 영어교사였던 어머니는 홈-스쿨링을 통해 자녀들에게 어학을 비롯해 자유와 책임, 인내와 성실을 가르쳤다.

이와 같은 두 부모님의 헌신적인 교육을 자양분으로 해서 메르켈은 사회공동체와 소외계층, 그리고 소수자를 향한 남다른 사명감을 키워갔다. 그녀는 특히 공부를 ‘워낙 잘 해서’ 라이프치히 대학교(물리학 전공)를 졸업한 후, 베를린 독일 과학원(동독 최고의 과학연구소)에 진학해 양자화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으며, 장래가 촉망되는 과학자의 길을 거침없이 헤쳐나갔다.

# 메르켈은 1991년 당시 독일의 총리였던 헬무트 콜에게 여성청소년부 장관으로 발탁되면서 정치에 입문했다.
그후 기민당 최초 여성의장(2000년) 등 정계 요직을 두루 거치며 16년 재임이라는 역대 최장수 총리가 됐다.

메르켈 총리는 오는 9월 말 치르는 독일총선 직후 총리직에서 물러나겠다고 이미 발표했다.
그녀는 총리직에서 물러나면,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총리가 되기 전에 살던 아파트에 그대로 살면서, 장바구니를 들고 수퍼마켓에 들러 장을 보고, 동료교수(훔볼트대)로 만나 1998년 재혼한 남편 요아힘 자우어를 위한 식탁을 차릴 것이다.

“신뢰할 수 있고, 지적으로 정확한 사람”(버락 오바마 전 미국대통령)이라는 평을 받으며, 유럽연합의 단합을 이끌어 낸 ‘유럽의 여제(女帝)’. 퇴임 직전임에도 63%라는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는 그녀에게, 독일 국민들은 한치의 주저함도 없이 묻는다.-“왜 벌써 물러나려 하느냐?”
왜 우리는 이런 지도자를 가질 수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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