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명견 교수의 재미있고 유익한 옷 이야기(107)

▲ 미 하원 지도부 간담회에서의 펠로시 의장과 문재인 대통령<사진출처/청와대>

"하이힐 신고 뜀박질해오며
열성을 다하는 따뜻함이
새삼 존경스럽고 아름답다"

문재인 대통령 방미 중 미국 연방하원지도부와의 간담회는 공식적인 행사였음에도 부드러움과 배려가 넘쳐나는 자리였다. 해서 현지 정가에서도 화제가 된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그날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보여준 따뜻함과 품위와 성의는 한미 양측 모두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줬다고 했다.

펠로시 의장은 마스크까지 패션으로 살려내는 멋쟁이로 유명하지만 이날도 옷차림부터 특별했다. 흰색 바지정장에 코발트색 탑을 안에 입고 탑과 같은 색의 스틸레토 하이힐(굽이 높고 가느다란 구두)을 신고, 청색 선이 들어간 마스크를 했다. 흰색은 1910년대 여성 참정권운동의 대표색이어서 여성 정치인들이 종종 애용하지만, 일반적으로 최고의 격식을 갖출 때 정장으로 입는다. 하이힐 역시 패션의 마무리라 할 만큼 만나는 사람과의 예의를 다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아이템이다.

펠로시는 회의가 시작하자 카드 한 장을 꺼내 들었다. 문대통령이 올해 초 보내준 신년인사 카드였다. “아주 예뻐서 간직하고 있고, 내용도 감동적이었다.”고 했다. 분위기가 따뜻해졌다고 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한국계의원 전원이 초대돼 자리를 함께했다. 펠로시 의장의 특별 배려였다. 미셸 박 스틸, 앤디 킴, 메릴린 스트릭랜드(한국명 순자), 영 킴 등 한국계 하원 의원들이 모두 감격했다. 특히 지난 1월 미 의회 취임식에 붉은 한복 저고리와 푸른색 한복 치마를 입고 참석해 화제가 됐던 메릴린 스트릭랜드 하원의원(한국인 어머니와 미국인 아버지)은 문대통령 앞에서 감동해 울먹이기까지 했다고 청와대 고위관계자가 전했다.

미연방 하원의장은 대통령 유고 시 부통령 다음으로 대통령직을 수행할 권력서열 3위의 인사다. 낸시 펠로시는 1940년생으로 올해 4번째 하원의장을 하고 있다. 47세에 정치에 입문해 2007년에는 하원의장으로서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일본정부의 공식 사과 촉구 결의안 통과를 이끌기도 했고, 2020년 6월4일에는 당시 트럼프대통령이 의회에서 국정연설을 마치자 뒤에 서있던 펠로시 의장이 모두 보는 앞에서 “모두 거짓말”이라며 연설문을 북북 찢어버린 유명한 일화도 남아 있다. 말하자면 펠로시 의장은 그저 너그럽고 마음씨 좋은 ‘할머니’만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날 문재인 대통령이 의회지도자들과의 일정을 마치고 의사당을 떠나려던 순간 별난 일이 벌어졌다. 멀리서부터 누군가가 뛰어왔다. 펠로시 의장과 보좌관 한 사람이 힘껏 달려오는 중이었다. 81세의 ‘할머니’가 10㎝ 가까이 되는 스틸레토 힐을 신고 뜀박질해오는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한국계 보좌관이 문대통령을 꼭 뵙고 싶다고 간청해 고령의 의장이 “함께 뛰자”고 해서 ‘별난 달리기 경기’가 벌어졌다는 것이었다.

그녀가 신은 그 구두는 굽이 높은데다 발가락을 조이기 때문에 불편하고 몸에 무리를 주는 신발로 젊은 사람들도 부담을 느끼는 구두였다. 그런 신발을 신고 보좌관을 위해 뛰기까지 한 펠로시 의장의 열정과 배려가 놀랍다. 이번 회담 중에 보여준 그녀의 열과 성의를 다하는 따뜻함이 새삼 존경스럽고 아름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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