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자매네 반디농장 김영란의 전원일기 ㉕

"햇살과 바람과 새소리와
식물들의 싱그러움을
맘껏 느낄 수 있는
농부의 삶으로 인도해주신
신께 감사한다..."

60년을 살아보니, 옛 어른들 말씀이 무릎 치게 맞다는 것을 깨닫는다. ‘젊어서 고생, 사서 한다’는 말을 내 인생에 대입해 보면, 교육상 경험상 고생을 사서 한 게 아니라 어쩔 수 없는 환경에서 몸으로 살아내다 보니 ‘고생 끝에 낙이 온다’를 실감하게 된다.
이제 꽃밭에서 하루 종일을 보내고, 그림을 그리고, 거북이걸음으로 천천히 가도 좋은 시간을 누리게 됐다. 40대에 누리고 싶던 낙을 60대에야 누리게 됐지만 이 나이에라도 원하는 삶을 살게 돼서 너무나 감사하다.

45세에 유기농 농부가 됐고, 녹록치 않은 길을 건너오고 나니 신이 주신 선물이 기다리고 있었다. 내 삶에 만족하게 된 것, ‘나는 농부다’ 하며 자부심을 갖게 된 것, 이웃집 건너다보며 내가 갖지 못한 것을 부러워하지 않게 된 것, 타인의 삶과 비교하지 않게 된 것, 내가 가진 것이 소중하게 된 것, 성한 몸으로 일할 수 있었음이 축복이었음을 깨닫게 된 것 등등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말한다면, ‘인간이 된 것’이다. 신께서 원하는 모습에 가까워진 것이다.

우리가 받았던 수많은 교육들이 인간다워지는 것이었나? 경쟁에서 이기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었나? 성찰 없이 맹목적으로 무리지어 달려가는 열차에서 뛰어내려 내가 가고 싶은 방향으로 걸어가는 용기를 우리는 학교에서 배웠던가?

삶의 기본 진리는 초등학교 때 다 배웠다는 생각이 든다. 로켓 타고 우주행성을 여행해야 할 시절에 무슨 그런 고리타분한 철학을 이야기하느냐고 싶지만, 문명이 발달한다고 더 행복해졌는지를 한 번쯤 돌아봐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더 행복해졌는가?

대학생 막내 예인이가 모두가 다 한다는 주식에 입문했다. ‘주린이’(주식어린이)가 돼 용돈을 벌었다고 엄마아빠에게 갤럭시 워치를 사줬다. 최신식 전자기기는 우리에게 별 소용도 없는데(온갖 기능이 다 있다고 함) 손목에 차고 다니는 것이 오히려 번거롭고 달갑지 않은 선물이건만, 아이들은 사람보다도 기계와 더 익숙한 신인류가 됐다.

막내는 용돈을 아껴서 자본금 100만 원으로 주식을 시작해 몇 만 원씩 번다고 자랑질 하길래 이미 주식으로 패가망신할 뻔 했던 전력의 엄마는 “막내까지 주린이가 된 걸 보니 주식이 꼭대기에 왔나보군.”하며 조심을 당부했다. “절대로 여유자금으로만 해야 하는 것이 주식이다”를 강조하며.

1998년, IMF 외환위기 직전에 남편회사에서 퇴직금을 중간 정산해 여유자금이 생겼다. 그 즈음 아줌마들도 시장바구니를 들고 증권사에 죽치고 있을 정도로 주식열풍이 불고 있었기에 우리사주를 받으면서 입문했던 주식세계. 하지만 IMF를 거치면서 주식은 산산조각의 세계로 직행했었다. 그 어둠의 열차에 편승했던 전력이 있는 나는 돈 잃고 병도 얻어 혼비백산했었다.

이후, 나는 땀 흘려 일하는 삶과 그 대가만이 가장 단단한 자산이라는 것을 가슴에 새기며 지난한 농부의 삶을 견뎌낼 수 있었다. 주식으로 돈을 번다고 해도 늘 주식생각이 떠나지 않는 그런 삶으로 다시 입문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햇살과 바람과 새소리와 식물들의 싱그러움을 맘껏 느낄 수 있는 농부의 삶으로 인도해주신 신께 감사드린다.
자연은 자연스럽게, 사람은 사람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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