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연(硝煙, 화약연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양지 녘에/ 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 비목이여/ 먼 고향 초동친구 두고 온 하늘가/ 그리워 마디마디 이끼 되어 맺혔네.’
해마다 6월이 되면 전쟁의 비극을 담은 가곡 ‘비목’이 생각난다. 한명희 교수의 비목이란 시를 장일남 교수가 작곡한 우리 가곡이다. 한명희 교수는 1960년대 초 육군 소위로 6.25 전쟁의 격전지이었던 강원도 화천군 백암산(해발 1179m)의 DMZ 초소(GP)장으로 근무했다.

그는 당시 순찰 길을 따라 가는데, 돌무더기에 팻말 비슷한 나무가 썩어 누워 있고 탄피와 철모가 널브러져 있은 것을 발견했다. 한 소위는 그때, 무명병사의 돌무덤과 나무 비(木碑)를 보면서 ‘죽은 이는 누굴까, 고향은 어딜까, 아내는 있었을까, 죽기 전 어떤 꿈을 가지고 있었을까’ 등등 만감이 교차했다고 한다. 그때 주변에 핀 산 목련은 긴 세월을 기다리다 지친 아낙의 돌아오지 않는 낭군의 무덤가를 지켜주는 망부석(望夫石)으로 다가왔고 그날의 감흥을 훗날 ‘비목’이라는 시로 엮었던 것이다.

6.25 전쟁의 포성이 멎은 지 올해로 71주년이 되는 해다. 전쟁의 비극을 담은 우리가곡 ‘비목’ 만큼 한국인의 심금을 울리는 노래가 어디 있을까.
아직도 전쟁터에서 산화한 뒤 그 유해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또한 전쟁이후 북한에 강제로 억류된 국군포로가 약 3만~5만 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들 대다수는 죽거나 포로가 돼 탄광이나 농장에서 노예처럼 살고 있다고 한다. 미국처럼 참전 군인들을 끝까지 책임져 줄 때 군인들도 가슴에서 우러나는 충성심이 생길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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