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응수 원장의 건강한 중년 100세

"바이러스 등 미생물도
친구가 되는 과정이란
세상일처럼 시간이 걸린다"

코로나19가 처음 유행했을 때 사람들은 잠시 퍼붓는 소나기로 알았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도 코로나19는 우리에게 적지 않은 고통을 주고 있다. 다행히 우리나라에서도 백신 접종이 본격화됐다. 인구의 70%가 백신을 접종하면 집단면역에 도달해 코로나19의 공포에서 벗어나리라 기대해 본다.
참 어렵게 한해를 살았다. 그렇다 보니 코로나19 때문에 스스로 ‘만물의 영장’이라며 거들먹거리던 인류의 멸종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이런 사건은 일어날 수 없다. 바이러스는 상대방을 맘껏 혼내준 다음 또 다른 대상을 찾지 못하면 자신도 살 곳이 없어 끝나는 특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결국 이 전염병도 계절성 독감처럼 우리 곁에 무겁지 않게 머무를 가능성이 높다.

위산이 가득한 위장 속에서 거뜬히 살아가는 헬리코박터라는 세균이 있다. 여러 개의 꼬불꼬불하고 긴 털이 달린 세균은 재빨리 움직여 위산을 피해 위장 벽을 돌아다닌다. 왜 이렇게 험한 곳에서 어렵게 살아갈까? 의사들은 헬리코박터에게 묻고 싶을 때가 있다. 
이 세균은 위궤양, 십이지장궤양은 물론 위암을 일으키지만 전 세계 인구의 절반이 감염된 흔한 세균인 만큼 무조건 없애는 치료를 할 필요는 없다. 재미있는 세균인 헬리코박터를 통해 단편적으로나마 코로나의 미래를 엿볼 수 있다.

헬리코박터의 유전자를 분석해 보면 대체로 균주들이 현생 인류의 발생지인 동아프리카에서 유래한 균주다. 무려 6만 년이란 오래 전부터 사람 위장 속에 기생했기 때문에 적응할 시간이 넉넉해 이 세균에 감염돼도 대부분 증상이 없다. 그런데도 이 세균은 균주에 따라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남쪽 아메리카 산속의 원주민과 바닷가에 사는 아프리카 노예 후손인 마을 주민의 위장 속에 사는 헬리코박터를 비교해 보니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 모두 90% 수준의 감염률을 보이지만 위암의 발생률은 산속에 사는 원주민이 바닷가 사람보다 무려 25배나 높다. 이 세균은 바닷가 사람에게는 대장균처럼 친숙하게 대하지만 원주민에게는 아주 잔인한 낯빛을 보인다. 이러한 이유는 이 세균이 적응할 시간(공진화 정도)의 차이에 따라 상대를 대하는 표정이 판이하기 때문이다. 세균이나 바이러스 같은 미생물도 친구가 되는 과정이란 세상일처럼 험난하고 시간이 걸린다.

<김응수/웃는세상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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