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의 유관순 ‘이선경 지사’ 집중 조명, 순국 100주년 기념 전시

▲ 전시회장 대문엔 이선경 지사의 초상화(중앙)가 그려져 있다.

“역사는 잊어버리는 자의 몫이 아닌, 기억하는 자의 몫이다”

수원박물관은 수원 산루리 지역 출신 독립운동가들을 재조명하는 전시회를 7월4일까지 개획전시실에서 열고 있다. ‘수원의 유관순’이라 불리는 독립운동가 이선경(1902~1921)의 순국 100주년을 기념하는 테마전시로 산루리 지역 독립운동가들의 사진, 관련 유물·자료 등 100여 점이 전시된다.

산루리는 현재 수원시 팔달구 중동·영동·교동 일대로 수원에서 가장 먼저 일제의 침탈을 받은 지역이다. 조선시대에는 팔달문 밖 마을을 ‘산루동’이라고 불렀다. 당시의 수원은 1905년 철도가 개통되면서 수원역을 거점으로 일제의 자본이 모여들고, 수원의 전통사회에 침투하기 시작했다. 1910년 한일합방 이후 일제는 더욱 노골적으로 나와 토지조사사업을 통해 뺏은 토지는 헐값에 일본인에 매각해 경제적 침탈의 기반을 구축했다. 종묘와 종자를 독점하던 부국원이 새롭게 산루리로 건물을 이전해왔고, 일제는 수원주조주식회사를 설립해 일본인이 즐겨먹던 술을 만들기도 했다.

서울로 통학하던 학생들은 일제 수탈로 인해 점점 변해가는 산루리의 모습을 보며 식민지배에 대한 저항의식을 마음에 심었고 일제의 억압과 수탈에 시달리던 산루리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독립운동에 나서며 일제에 대항했다.

일제 식민지배에 억눌려 있던 수원 사람들의 분노는 1919년 3․1운동을 기폭제로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3․1운동 이후에도 학생들의 비밀결사 조직, 각종 사회단체들의 식민지배에 대한 저항, 노동자와 농민들의 투쟁, 항일격문 배포 등이 해방을 맞는 순간까지 격렬히 이어졌으며 그 중심에 산루리 독립영웅들이 있었다.

 

일제 수탈의 모습 보며
독립의지 키운 이선경

이선경은 대표적인 산루리 출신 독립운동가다. 이선경과 언니 이현경, 남동생 이용성 삼남매 모두 나름의 방식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했으나 이선경은 유관순 열사처럼 모진 고문 끝에 감옥에서 가석방 돼 잠시 나온 1921년 9일 만에 숨을 거뒀기에 더욱 안타깝다.

이선경은 1902년 수원 산루리에서 태어났다. 수원공립보통학교(현 신풍초등학교)를 일제강점기인 1918년 졸업하고 1919년 숙명여학교에 입학했으나 1919년 2학기를 마치고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로 전학했다가 구국민단 활동으로 검거돼 수감됐다. 학적부에는 이선경의 성격과 행실에 대해 ‘온순하나 책임감이 강하다’고 표현돼 있다.

▲ 이선경 지사의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 학적부

구국민단은 수원 학생들이 조직한 비밀결사다. 서울에서 구해온 상해판 독립신문을 수원지역에 배포하며 독립의식을 고취시켰다. 상해판 독립신문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이념과 활동을 전파하고 중국에서의 독립운동을 국내외에 알리기 위해 간행됐다.

구국민단은 상해 임시정부의 독립군을 위한 독립자금도 모금해 전달했다. 당시 나이 18세였던 이선경은 독립자금 전달의 임무를 맡아 상해로 가려다 미리 첩보를 입수한 일본경찰에 검거돼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계속된 고문으로 이선경이 죽음의 문턱에 이르렀을 때 일제는 옥사를 염려해 슬그머니 가석방으로 풀어줬고, 서대문형무소를 나온 그는 본가까지 가지도 못한 채 수원역 바로 앞의 큰오빠 집에서 치료받다가 석방 9일 만에 눈을 감았다. 19살 되던 해였다.

▲ 감옥에서 나온 이선경 지사가 죽음을 맞이한 곳인 수원역 앞 큰오빠 집의 당시 사진.

이번 전시를 기획한 수원박물관 학예팀 김경표 학예사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투신한 이선경을 비롯한 산루리 독립운동 영웅들의 희생은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의 밑거름이 됐다”며 “산루리 독립운동 영웅들을 기억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시회의 이선경 지사의 모습은 이 지사의 사진이 남아있지 않아 언니인 이현경을 모티브로 그린 초상화다. 언니 이현경 역시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 졸업 후 동경으로 유학 중에 도쿄 히비야 공원에서 3․1운동 2주년을 기념해 만세를 부르다 옥고를 치렀다. 그는 동생 선경의 비통한 소식을 구금당한 상태에서 접해야 했다. 학업을 마치고 귀국한 이현경은 여성단체 근우회 설립을 주도하다가 여의치 않자 중국으로 망명해 독립운동을 이어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시의 의미는? ....수원박물관 김경표 학예사

▲ 수원박물관 김경표 학예사

역사는 기록으로 기억된다

독립을 위해 격렬하게 저항한 산루리 지역의 역사적 상황과 왜 산루리 지역의 사람들이 독립운동에 나설 수 밖에 없었는지 알리고 싶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지역인물에 대한 기록과 발굴은 의미가 있다.

수원박물관은 수원의 유관순으로 불리는 이선경의 구국민단독립운동 행적과 순국 사실을 밝혀냈다. 또 수원학연구센터와 함께 경기도독립운동 인물발굴사업을 펼쳐 수원 출신과 거주자 등의 독립운동 자료를 수집하고 검토해 최종 113명의 독립운동 행적을 정리해 국가보훈처에 포상을 신청하고 그중 2020년 광복 75주년 때 9명이 정부 포상을 받아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았다. 현재에도 독립운동가들의 얼굴을 알지 못하거나 후손이 없어 세상에 묻혀있는 분들이 너무 많다. 역사는 기록이다 기록을 통해 기억하며 기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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