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광희 칼럼 - 누리백경(百景)(184)

#1. ‘시골 옛집 앞을 지나 / 뒷산 등성이를 // 오늘은 상여(喪輿)로 넘으시는 아버지.// 낯익은 고갯길엔 / 마른풀 희게 우거졌고 // 이른 봄 찬 날씨에 / 허허로운 솔바람 소리. // -아버지,/ 생전(生前)에 이 고갯길을 몇 번이나 / 숨차시게,숨차시게 넘으셨던가요?’
-김종길(金宗吉, 1926~2017) 시, <고갯길>

#2. ‘지상에는 / 아홉켤레의 신발 / 아니 현관에는 아니 들깐에는/ 아니 어느 시인의 가정에는 / 알전등이 켜질 무렵을 / 문수가 다른 아홉켤레의 신발을.//…(중략)…// 아랫목에 모인 / 아홉마리의 강아지야 / 강아지 같은 것들아 / 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 / 내가 왔다 / 아니 십구문 반의 신발이 왔다 / 아니 지상에는 / 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 / 존재한다.’
-박목월(朴木月, 1915~1978) 시, <가정> 부분  

#3. ‘아버지가 왜 나무 그늘을 찾아 / 지게를 내려놓고 물끄러미 / 나를 쳐다보셨는지 알게 되었다 //…(중략)…// 해질 무렵 / 아버지가 왜 강가에 지게를 내려놓고 / 종아리를 씻고 돌아와 / 내 이름을 한번씩 불러보셨는지 알게 되었다’
-정호승(鄭浩承, 1950~  ) 시, <아버지의 나이> 부분  

김종길·박목월·정호승 세 시인이 시로 그리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들은, 또한 우리 모두가 평생을 가슴에 담고 사는 아버지의 풍경들이다.

생전에 식구들의 밥을 위해 가파른 삶의 고갯길을 ‘숨차시게’ 넘으셨던 아버지, ‘눈과 얼음의 길을 걸어’, ‘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 늦은 밤 지친 어깨로 아홉 마리의 강아지가 있는 지상의 집으로 돌아오는 아버지, 그리고 고된 하루 일을 끝내고 지게를 내려놓고 아들의 이름을 한 번씩 불러보던 아버지 -이제는 내가 그 아버지 나이의 아버지가 됐으므로… 그 적의 아버지가 왜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내 이름을 한 번씩 불러보셨는지 그 마음을 이제사 알게 됐다.

그런 부성(父性)을 가진 가부장을 전통적으로 우리는 ‘좋은 아버지’라 불렀다. 늘 삶에 지쳐있었지만, 자애로웠던 그는 가족 내에서 핵심역할을 하는 권위적인 가족구성원이기도 했다.

# 그러나 이젠 성(性)역할이 바뀌어 ‘일 하는 아내’를 대신해 가사·육아를 전담하는 ‘전업주부 아빠’가 늘고 있는 세상이다. 통계청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만15세 이상 미취업·비경제활동 인구 가운데 가사·육아를 전담하는 남성이 19만5000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들의 표현대로라면, ‘주부 아빠’ 20만 명 시대다. 이 ‘주부 아빠’ 숫자는 갈수록 점점 더 늘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취업난에 따른 실업이라는 사회적 문제가 반영돼 있다. 육아의 패턴도 변화의 바람을 맞고 있다.

‘가사는 여성의 몫’ 이라는 지난 날의 성 관념과 고유 역할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전통적인 ‘가정의 달’, ‘어버이 날’이 무색해지는 5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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