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광희 칼럼 - 누리백경(百景)(183)

# “누가 당신께 약주를 권하는지, 내가 알아낼까요. 저…첫째는 화중이 술을 권하고, 둘째는 하이칼라가 약주를 권하지요.”
남편은 쓰게 웃는다. “내게 술을 권하는 것은 화중도 아니고, 하이칼라도 아니요, 이 사회란 것이, 조선사회란 것이 내게 술을 권한다오.”

“술 아니 먹는다고 흉장이 막혀요.”
남편의 하는 짓은 본체만체 하고, 아내는 얼굴을 더욱 붉히며 부르짖었다.…(중략)…
“그 못쓸 사회가 왜 술을 권하는고!”
-현진건(1900~1943) 단편소설, <술 권하는 사회>(1921) 부분

# ‘어둠 깊어가는 수서역 부근에는/ 트럭 한 대분의 하루 노동을 벗기 위해/ 포장마차에 몸을 싣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 밤에서 밤까지 주황색 마차는/ 구슬픈 노래를 잔마다 채우고/ 빗된 농담도 잔으로 나누기도 합니다 // 거리의 어둠이 짙을수록/ 진탕으로 울화가 짙은 사내들이/ 해고된 직장을 마시고 단칸방의 갈증을 마십니다 // 어쩌다 생의 절반을 속임수에 팔아버린 여자도/ 서울을 통째로 마시다가 속이 뒤집혀 욕을 게워냅니다.’
- 신달자 (1943~  ) 시, <저 거리의 암자> 부분 발췌

수년 전, 조오현(1932~2018)이라는 설악산 신흥사의 승려시인이 “산중 절간에서 석달 앉아 수행한 것보다 이 시(<저 거리의 암자>) 한 편이 더 불경에 가깝다”며 “도(道)는 사는 데 있지 산 속에 있지 않다”고 풀었던 시다.
날 저문 도심 허름한 포장마차의 술 한 잔에 드리워진 서민들의 고단한 삶의 풍경을 그린 시다. 고되게 사는 게 수행이라는.

#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조사 집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1인당 연간 평균 술 소비량(360ml 소주병 기준)은 맥주 148.7병, 소주 62.5병, 전통주(막걸리 등) 33병, 양주 2.7병, 와인 2.2병 순이다.

특히 1인가족의 증가와 코로나로 인한 사회 주거환경의 변화로 홈술(집에서 마시는 술)·혼술(혼자 마시는 술)이 늘어난 것도 음료 소비증가의 커다란 원인이 됐다. 이 같은 음주는 국민건강상 담배·당뇨에 이어 세 번째로 각종 질병의 주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데, 알코올 관련 한 해 사망자 수만도 5000명에 가깝다.

그런 측면에서 최근 보건복지부가 국민들의 지나친 음주폐해를 예방하고 건전한 음주환경을 조성한다는 취지로 옥외 술광고를 금지시키기로 한 것은 다소 늦은 감이 없지 않다. 이르면 오는 6월30일부터 시행될 이 시책은, 건물 옥상 옥외 간판과 디지털 광고물, 현수막·벽보는 물론 대중교통 차량 외부에 술 광고를 내걸 수 없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이에 대해 주류업계와 일부 주당들은 ‘지나친 규제’라며 반발하는 분위기다.

하마부터 그로인한 주류가격 담합 인상을 우려하는 축도 있다.
과거 우리 민족처럼 술 인심이 후했던 민족이 이 세상에 없으리만큼 우리 사회는 따뜻한 정이 철철 넘치는 술을 권하는 사회였다. 서민들은 술이 곧 밥이었다.
그 한잔 술로 고달픈 삶의 응어리까지 녹여냈다.

그러나 이제는 술 ‘안’권하는 사회로 가야 한단다. 아쉽지만, 예상되는 그 막대한 주세 수입 경감을 감수하면서까지 살뜰하게 국민건강을 챙기기 위한 규제라니, 유구무언(有口無言)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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