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자수필-귀농아지매 장정해 씨의 추억은 방울방울

"사람은 자신이 선택한
경험을 통해 가장 많이
배우는 법이니까..."

꽃잎이 난다. 4월이 간다. 배나무 꽃잎이 굵은 눈송이처럼 바람결에 흩날려 하얗게 깔린 과수원 길을 따라 걷는다. 4월엔 여러 개의 기억이 들어있다. 내 개인사가 있는 4월이, 사회적인 역사적인 4월이 포개있어 이런저런 생각에 젖어든다. 순식간에 겨울의 한 허리를 베어내고 그 무수한 꽃무더기가 찬연히 피어오르더니 겨울을 배반한 괘씸죄가 발고돼 새벽아침엔 무서리가 이렇게 오래 내리는가! 강 건너편 마주한 앞산엔 아침 햇살이 눈부신데 오늘도 마당 끝 창고 지붕위로 하얗게 서리 내려 이 변곡점이 어디쯤에서 서로 화해를 하려나...

남편은 토종 자두나무를 살리려고 돌복숭아 묘목 15그루에 자두가지를 접붙였는데, 서리에 싹이 트지 않을까봐 플라스틱 병으로 고깔을 만들어 씌우곤 매일 노심초사다.
배꽃 보러 온다고 지난주에 두 딸과 손자 그리고 딸 친구까지 함께 내려와 하룻밤을 자고 갔다. 흥미진진하고 변화무쌍한 일곱 살 난 손자의 등장으로 과수원집 안팎은 난리 북새통이었다.
저녁을 먹고 딸과 함께 설거지를 하며 “엄마는 요즘 더 예뻐졌어. 살도 좀 빠지고.” “지금이 내 인생에서 제일 좋을 때 아니겠니. 요즘이 최고로 행복하지 뭐.”

딸이 엄마의 간섭으로 힘들어하는 친구 얘기 끝에 “너 도토리가 왜 동그란지 아니? 상수리나무 아래선 상수리나무가 못 자라지. 그래서 엄마나무에서 떨아지면 되도록 멀리까지 굴러가려고 동그랗게 생겼다잖아.” 멀찍이 굴러가 자라는 걸 엄마는 그냥 지켜봐준다. 설거지 하며 흥얼거리며, 그러나 엄마는 결코 무심하지 않다. 다만 고민 끝에 ‘상수리 이론’에 따라 너희를 내버려두기로 결정한 것이다.

5년 전 쯤 작은 딸이 결혼하고 서울 변두리에 전세를 살며 손자를 낳았을 때 그 땐 집값이 많이 떨어져 있었다. 나는 딸이 사는 전셋집에 몇 천 만원 보태면 집을 살 수 있었기에 보텔 테니 그냥 사라고 권유했다. 딸은 한마디로 거절했다. 자기네 힘으로 하겠단다. 몇 해가 지난 지금도 여전히 전세로 살고 있는 그 집은 몇 억을 보태도 살 수 없게 됐다. 나는 그 후로 딸의 살림이나 손자의 교육에 대해 될 수 있는 대로 충고나 간섭은 하지 않는다.

부모는 살아 온 자기 경험으로 자녀의 삶을 미리 예단하려는 맘이 있다. 딸의 독립은 앞으로 더 많은 손해를 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또한 자기 선택이고 사람은 자신이 선택한 경험을 통해 가장 많이 배우는 법이니까. ‘이게 다 너를 위해서야’라는 맘이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권고일 뿐 직접 겪은 깨우침만큼 큰 것은 없기 때문이다. 뒤돌아보면 나 역시 내 엄마로부터 끝없이 독립투쟁을 해오지 않았었던가!    

가끔 운동 삼아 친구들과 스포츠센터에 수영을 하러 간다. 물속에서 걷기도 하고 헤엄도 치고 시합도 한다. 뒤처질까봐 몸에 힘을 주면 줄수록 숨이 가빠지고 결국 가라앉아 버리는 걸 여러 번 겪고서도 여전히 힘 빼기는 어렵다. 힘을 빼고 물에 나를 맡긴 채 나아가는 것, 딛고 설 곳이 없어도 두려움을 이기고 믿는 것, 수영에 도가 트면 인생에도 도가 틀 것 같다. 수영 대선배들도 종종 ‘힘 빼기가 제일 힘들다’고 한다. 힘을 빼는데 가장 힘이 든다니...

이젠 꽃보다 새로 돋는 잎이 더 어여쁘다. 뽕잎, 제피순, 머루순이 눈꼽 만큼 솟는다. 남편은 닭사료를 구해들고 올 봄에는 기필코 잉어를 낚겠다고 릴 채비를 해서 강가로 내리닫고, 4월은 같이 가자며 졸래졸래 그 뒤를 좇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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