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자매네 반디농장 김영란의 전a원일기 ⑲

"씨앗 뿌리고 삽목해서
번식하다보면 부자 된 듯
포만감이 저절로..."

한 개가 두 개가 되고, 두 개가 네 개가 되고...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소득이 있다면 왕대박일 거다. 로또에 가까운 이런 소득이 어디 있다고?
그러나 농사짓는 농부들은 깨닫지 않았을까? 열 개의 고추모종을 사다가 심어서 풋고추로도 실컷 먹고 남은 것은 익혀서 붉은 고추로도 양념하고, 그리고 고추 두 개만 남겨서 이듬해 그 고추씨앗으로 수십 개의 고추 모종을 만들 수가 있다.

물론, 그 안에는 사람의 수고와 얼마간의 경비가 투입될지라도 이런 원리는 기하급수적인 증식이라고 할 수 있다. 수많은 변수가 따를 수도 있지만 이런 단순 원리를 적용하면 몇 년 후 복리로 증가한 수입이 된다.

귤농부인 나는 씨앗번식으로 증식하는 것은 작은 텃밭에서 내가 먹을 채소들에 국한되지만 귤나무도 한 번 심어서 몇 년 키우면 수십 년을 관리하면서 소득을 낼 수가 있다. 농부는 부자는 되지 못할지라도(경제적인 큰 소득을 올리는 사람도 있지만) 적어도 굶어죽지는 않는 직업인 것 같다.

꽃을 좋아하는 나는 귤나무 옆 한 편에도, 길가에도 빈 공간만 보이면 꽃을 심어서 나의 갈증을 풀어냈다. 심지어 귤나무 아래에도 이것저것 심어서 남편이 예초할 때마다 날려버리곤 해서 귤나무들을 하나씩 이사시키면서 내 꽃밭을 확장해 갔다. 경제개념이 없는 농부였지만 그래서 나만의 숨을 쉬었다.

언젠가 이웃에게서 곁눈질로 배운 삽목법을 알게 된 후, 관심 가는 꽃나무만 보면 한 가지씩 얻어다가 뿌리 내리면 몇 년 후 청년나무가 되는 신기하고 재미나는 삽목번식법을 터득하고 그 이후 틈만 나면 나는 삽목을 했다.
가장 삽목이 잘되는 수국을 귤나무 아래 삽목해 귤밭 주변 담장 아래에 심었다. 먼 훗날을 기약하거나, 큰 그림을 그린 것은 아니라서 그냥 재미로 삽목해 여기저기에다가 어수선하게 심었다.

생업인 귤농사가 바빠서 에너지를 다 쓰고 나면 체력이 방전돼 꽃들은 심어뒀으나 거의 수풀 속에서 자생하며 생존하기 일쑤였는데도 강인한 생명력으로 살아남아서 어느 날 보니 수국들이 한 아름씩 자라 있었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커서 둥지를 떠나고 나니 수풀 속에서 고개를 내밀고 꽃을 피운 수국들이 자식들 대신 품안으로 들어왔다. 제대로 돌봐주지 못했는데, 때가 되면 피어나는 수국들 때문에 젊은 날 막연히 꿈꿨던 꽃동산에의 꿈이 다시 몽글몽글 솟아나기 시작했다.
10년 전에 심어둔 수국들이 한 아름씩 돼서 내 꿈을 소환해 준 것이다. 사느라고 잊어버렸던 꿈, 럭셔리한 멋진 정원이 아닌, 소박하고 아름다운 뜰을 만들고픈 꿈. 지지난해 낡은 창고를 수리해서 쉼터 겸 작업실을 만들고 뜰을 만들면서 그동안 내가 삽목해서 키운 모종들을 옮겨 심고 있다.

한 뼘 가지를 얻어 오거나 전정 후 버려지는 가지들을 삽목해서 키운 아이들이라 더 정이 가는 꽃나무들. 그중에 한 뼘 가지를 삽목해서 수백 개가 된 로엘리아는 내가 마치 문익점이 된 듯 뿌듯하다.
세월과 정성과, 사랑과, 노력이 어우러진 나만의 뜰이 되어 가겠지. 그 안에서 나는 어느덧 황혼이 돼가는 나의 삶을 유유히 관조할 것이다. 씨앗을 뿌리고 삽목을 해서 번식하다보면, 부자가 된 듯한 포만감은 저절로 안분지족(安分知足)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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