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자매네 반디농장 김영란의 전원일기 ⑱

"멀리가지 않고도
봄을 만끽하며
느린 소처럼 일하는
봄날이다...
행복은 수입만으로
계산되지 않는다."

봄의 한가운데, 봄꽃들이 축제를 벌이고 있다. 귤나무는 새싹이 움텄고, 잎과 꽃이 구분될 정도로 모양을 드러냈다. 예년보다 보름이나 빠른 봄. 농부의 관점으로 보면, 또 조심스럽다. 벌써 새싹이 나오면 어느 날 난데없이 뒤끝매운 한파가 몰려와서 어린 새순과 꽃눈을 얼려버리면 한해 농사가 낭패가 되는 경험을 종종 하는지라, 일찍 달려가는 봄이 마뜩찮다.

세상사가 하도 어수선하여 마음 졸이며 사는데 농사라도 풍년이 들어서, 농부도 서민들도 먹고 사는 시름을 덜면 좋을 텐데... 부디, 순한 계절 잘 보내고 올해는 풍년이 들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겨울 농번기를 미처 정리하기도 전에 봄에 와 있는지라, 쌓였던 피로를 풀기도 전에 봄 농사에 돌입했다. 피로를 풀어내면서 봄 농사를 준비하고 있다. 겨울 수확에 지친 귤나무에게 생선액비 영양제를 두 번 줬고, 땅으로는 EM발효액을 뿌려주고, 목초액과 기계유(식물성)로 나무 소독도 해줬다.

콩퇴비를 만들어 쓰던 봄 시비는 너무 힘들어서 식물성으로 만들어진 유기질 퇴비도 한번 뿌려줬다. 나무수세를 높이기 위해 동물성 퇴비를 쓰지만 우리는 동물성 퇴비는 쓰지 않는다. 암환자가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귤을 생산하는 게 우리 철학이다. 귤나무 아래 풀들은 최대한 키워서 예초를 하면 거름이 되므로 일 년에 서너 차례 예초를 한다.

제주도는 아열대기후로 변해가면서 유기농 농사짓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기후임에도, 유기농사를 16년을 지속해 왔다. 처음에는 작은 것들에도 애를 끓이고 발을 굴렀으나 이제는 자연이 주는 대로 생산한다는 의연한 마음이 생겼다. 생산량을 배가시키는 화학비료를 쓰지 않고 나무가 스스로 만들어 낸 양분으로 결실을 하고, 이듬해는 해거리로 쉬는 순환을 담담히 받아들인다.

유기농산물이 비싼 이유를 소비자는 과정을 모르고 평가한다. 무농약은 많은데 유기농이 적은 이유는 화학비료를 쓰지 못해서 수확량이 훨씬 줄기 때문이다.
도시소비자였던 나도 이런 순환구조를 전혀 몰랐지만 농부가 되고나서보니 우리들이 사먹는 농산물들이 농약장아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장려해도 1% 넘지 않은 유기농업이다.

어렵게 유기농사를 지어 놨는데도 판로가 없어서 포기하는 사례도 더러 보았다. 나는 처음부터 직거래를 개척해서 살아남았지만 농부들이 반은 친환경, 반은 관행을 하는 것도 보는데 이런 현상은 수입과 판로에서 오는 현상이다.

소비자를 개도(開導)하는 것은 정책인데, 거대자본주의 사회에서 얽히고설킨 자본구조가 다수의 이익에 초점을 맞추기에 극소수 유기농농부의 목소리는 언제나 뒷전으로 밀려난다. 그래서 나라도 자꾸만 실상을 알리고 소비자의 의식을 깨울 책임감을 느낀다.

대학병원이 문전성시를 이루고, 암환자도 몇 개월을 기다려야만 하는 시대. 역사상 유례없던 코로나19를 겪고도 아직 우리가 친환경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면 지구 자멸의 길은 더욱 재촉될 것이다.

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리는 농사로 이 기회에 돌아가야만 한다. 꽃 보려고 먹지 않았던 갯무꽃이 만발해 멀리가지 않고도 봄을 만끽하며 느린 소처럼 일하는 봄날이다. 행복은 수입만으로 계산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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