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광희 칼럼 - 누리백경(百景)(180)

# ‘고향이 그리워도 못가는 신세 / 저 하늘 저 산 아래 아득한 천리 / 언제나 외로워라 타향에서 우는 몸 / 꿈에 본 내 고향이 마냥 그리워’
6.25전쟁 중이었던 1951년, 북녘에 고향을 두고 온 실향민 가수 한정무(?~1960)가 부른 <꿈에 본 내 고향> 1절 가사다. 아득히 꿈에서나 그리는 가슴 먹먹해지는 ‘고향’이다.

이 노래의 노랫말은 원래 극작가였던 박두환이 평소 교유가 있던 시인 백석이 만주에서의 고독과 고향 그리는 마음을 그린 시 <북방(北方)에서>를 문예지 《문장》에 발표한 것을 보고 영감을 얻어 지었다고 전한다.

‘이미 해는 늙고 달은 파리하고 바람은 미치고 보래구름만 혼자 넋없이 떠도는데 / 아, 나의 조상은 형제는 일가친척은 정다운 이웃은 그리운 것은 사랑하는 것은… 바람과 물과 세월과 같이 지나가고 없다.’ 
-백석 시 <북방에서> 중에서

<꿈에 본 내 고향>은 KBS 가요무대가 집계한 ‘지난 35년간의 최다 엽서 신청곡 순위’에서 <찔레꽃>, <비내리는 고모령>, <울고넘는 박달재>를 제치고 1위를 한 적이 있다. ‘고향’은 누구에게나 무한대의 세월을 뛰어넘어 가슴에 서러운 한이 돼 차고 넘친다.

# ‘회귀본능’이라는 게 있다. 동물들이 자신이 태어난 곳을 떠나 살다가도 산란 등을 위해 자신이 태어났던 원래의 고향으로 되돌아오는 본능적인 능력을 말한다. 자신의 옛 둥지를 찾아 되돌아온다 해 귀소본능이라고도 한다.

지금은 양식이 가능해진 연어가 민물에서 태어나 큰 바다로 나아가 수년간 살다가 알을 낳을 때가 되면, 자신이 태어난 고향의 민물에 돌아와 산란하고 일생을 마감하는 ‘모천(母川)회귀본능’이 대표적인 예다.

얼마 전, 보일러를 튼 인공부화기의 따뜻한 모래 속에서 부화한 2017년생 세 살짜리 푸른바다거북 8마리를 제주바다에서 방류한 적이 있다.
이들 등에는 위성추적기를 달아 실시간으로 움직임을 관찰했다.

그런데, 그중 한 마리가 3개월간 무려 3800km를 헤엄쳐 자신이 태어난 고향인 베트남 동부해안에 가 있는 것이 확인됐다.
인공부화기에서 태어나 단 한번도 수족관 밖을 나가보지 못했는데도 엄마의 고향을 찾아간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 거북이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따뜻한 동남아 해역으로 이동한 것이라고 추측했지만, 태어났을 때 맡았던 화학적 신호를 기억했다가 찾아간 것일 수도 있다고도 했다. 이놈이 커서 산란기가 되면, 자신이 태어난 고향 제주로 되돌아와 알을 낳을지 어떨지에 대한 기대감도 크다. 여우가 죽을 때 머리를 자신이 태어난 언덕 쪽으로 둔다는 ‘수구지심(首丘之心)’도 귀소본능의 하나다.

지금 온 지구촌 사람들이 손 한번 잡아보지 못하고 사랑하는 가족을 저 세상으로 떠나보내야 하는 ‘코로나 이별’로 가슴아픈 시간을 보내고 있다.
죽은 이는 혼이라도 꿈에 본 고향에 돌아갈 수는 있는 걸까. 연어도, 거북이도, 새들도 제 고향을 찾아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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