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미월의 문학향기 따라 마을 따라 - 경남 남해

▲ 다랭이마을 전경

남해는 보물섬처럼
먹거리와 볼거리가 많다.
남해의 봄바람을 쐬면
삶의 에너지가 초록 순처럼
충만해진다.
인생이 아름다워진다...

 

봄이면 남쪽이 그리워진다. 언제부터인지 그림 같은 남해 가천 다랭이마을에 봄이 오는 싱그러운 초록 풍경을 만나고 싶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남해로 갔다.
남해는 어족자원이 풍부하고 특히 남해 멸치는 멸치 중에 왕이다. 남해에는 빼어난 절경인 금산 보리암과 여름이면 사랑받는 곳 상주은모래비치, 해안선이 아름다운 미조항과 물미해안, 최근에 각광받는 설리스카이워크와 등대 모양을 닮은 물미해안 전망대가 스릴을 준다.

▲ 죽방렴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이 만든 독일마을과 남해 지족해협 죽방렴이 때 묻지 않은 신선함과 색다른 아름다움을 준다. 추울 때 적당히 따스하고 더울 땐 한껏 서늘해 사람 살기에 좋은 곳 남해다. 예술가들이 둥지를 틀고, 이역만리 타향살이에 지친 사람들이 깃드는 고향 같은 섬 남해는 심신이 고단한 이들을 포근하게 감싸준다.
 
생명력 가득 피어나는 다랭이마을
남해에 들어서 섬 남쪽 끝에 위치한 가천 다랭이마을부터 갔다. 평지를 달리다 깎아지른 듯 높은 지형을 굽이 돌아가며 펼쳐지는 드넓은 바다가 더 깊고 푸르다. 수시로 변하는 오묘한 바다색이 좋다.
터키의 파묵칼레처럼 층층 논에 초록이 한창이다. 바람이 강하게 불어서 스카프로 잘 여몄다. 탱탱하고 싱싱한 시금치와 쭉쭉 올라온 마늘과 하늘거리는 유채가 밭마다 건강함을 뽐낸다. 남해 시금치 보물초는 잎이 많고 선명한 녹색을 띠고, 결각(잎의 가장자리가 깊이 패어들어감)이 있는 게 특징이다.

가천 다랭이마을의 논은 바다 곁 경사진 산 위에다 밭을 일군 우리네 조상들의 강인한 생명력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 아름다움이 뛰어나 관광자원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마을이 웅성웅성 성급한 상춘객들로 붐빈다. 탤런트 박원숙이 운영하는 ‘박원숙의 커피스토리’에서 차 한잔을 했다. 전망 좋은 곳에서 차 한 잔을 다 마시고 나니 남해의 보드라운 바람이 다시 찻잔을 채운다.

다랭이논을 따라 바닷가로 내려가는 동안 마을의 오밀조밀한 집들과 오래된 돌담과 식당들이 고향집처럼 정겹다. 구수한 멸치쌈과 싱싱한 멸치회 무침으로 맛있는 점심을 먹었다.

 

▲ 상주은모래비치
▲ 보리암

금산 보리암과 상주은모래비치
앵강만을 끼고 돌다 보니 미국마을이라는 간판이 보인다. 재미 한인교포들이 보금자리를 옮겨 제2의 고향으로 터전을 잡았다는 곳이다. 미국형 건축양식인 민박형 펜션과 전원주거가 결합된 마을이다. 남해 바래길 탐방로가 사이사이 보이는 길을 달려 금산 보리암으로 향했다.

보리암은 금산 해발 705m의 영봉에 자리 잡고 있는 우리나라 3대 관음기도처 중 하나다. 온갖 전설을 담은 기암괴석이 금강산을 빼닮았다 해 남해 금강이라 불린다. 부처님께 간절한 소원을 빌며 엎드려 절을 했다. 아찔한 기암괴석에서 불상 한 번 쳐다보다 한려해상을 보면 섬들이 웅성웅성 깨어 달려오는 것만 같다.
산에서 내려와 상주 해수욕장을 둘러봤다. 제철이 아니라 썰렁했지만 부채꼴 모양의 드넓은 하얀 백사장이 좋다. 여름이면 피서지로 일품인 은모래비치다.

 

문학의 섬 ‘노도’
노도(櫓島)는 <구운몽>과 <사씨남정기>, <서포만필>로 유명한 조선 후기 문신인 서포 김만중(1637~1692)이 유배 생활을 하다가 56세의 나이로 수형의 삶을 마감했던 곳으로, 그의 유적과 이야기가 깃든 문학의 섬이다. 벽련항에서 노도로 가는 여객선을 타면 5분이면 닿는다.

▲ 노포에 있는 서포 김만중의 <서포만필> 책 표지석

선착장에 도착하면 이곳이 문학의 섬이라는 것을 알리는 조형물 ‘서포의 책’이 여행자를 반긴다. 노도에는 김만중의 대표작인 <구운몽> 본문을 발췌한 내용과 김만중 조형물, 앵무새 부조가 있다. 김만중이 유배지에서 외롭고 쓸쓸하게 지내면서 홀로 남겨진 어머니를 위해 위로해 드리고자 글을 썼는데, <구운몽>은 모든 부귀영화가 부질없다는 교훈을 준다.

섬에서 나와 송정 솔바람 해변을 지나 설리해수욕장 인근에 타워크레인 같은 건축물이 눈에 들어왔다. 설리스카이워크다. 아찔한 하늘길을 걸으며 주변 조망을 즐기는 전망대다. 해안선이 들쑥날쑥 아기자기한 미조항이 아름답다. 남해의 미항(美港)인 미조항에서는 해마다 5월이면 보물섬 미조항 멸치 축제가 열린다. 대한민국 최고의 명품 멸치와 해산물의 향연이 펼쳐지는 곳이다.

 

▲ 독일마을

물미해안의 낭만과 작은 유럽 독일마을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는 건지 더 높은 곳에서 아름다움을 만끽하려 한다. 해안을 따라 달리다 등대 모양의 건축물인 물미해안 전망대를 만났다. 대한민국 최남단 남해를 아름답게 비추는 등대의 모습을 형상화한 건축물로, 내부에서 바라보는 바다의 모습은 초호화 고급 크루즈를 탄 듯한, 국내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360도 파노라마 바다 조망을 자랑하고 있다. 물미해안을 달릴 때 고두현 시인의 시를 떠올리며 가면 더 운치가 있다. 봄에 어떤 가을날을 떠올리며 음미하면 낭만가도가 된다.

저 바다 단풍 드는 거 보세요/ 낮은 파도에도 멀미하는 노을/ 해안선이 돌아 앉아 머리 풀고/ 흰 목덜미 말리는 동안/ 미풍에 말려 올라가는 다홍 치맛단 좀 보세요/ 남해 물건리에서 미조항으로 가는/ 삼십리 물미해안, 허리에 낭창낭창/ 감기는 바람을 밀어내며/ 길은 잘 익은 햇살 따라 부드럽게 휘어지고/ 섬들은 수평선 끝을 잡아/ 그대 처음 만날 날처럼 팽팽하게 당기는데...
 - 고두현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중 일부

물미해안에서 이어지는 독일마을은 이국적 느낌을 선물한다. 빨간 지붕을 한 독일풍 건축물, 독일 맥주와 소시지를 파는 가게들이 즐비하다. 잠깐 독일을 즐기기에 좋다. 과거 독일에서 열심히 일하며 국가경제 발전에 크게 기여한 교포들이 귀국 후 정착한 곳이다. 매년 10월경 독일마을 광장에서 독일맥주 축제가 열린다.

노을빛을 보며 지족어촌관광단지를 둘러봤다. 죽방멸치가 나오는 곳이다. 원시성이 그대로 살아있는 죽방렴은 길이 10m 정도의 참나무로 된 말목을 갯벌에 박고 그 사이에 대나무를 주렴처럼 엮어 만든 어업 도구다. 조류가 흘러오는 방향을 향해 V자형으로 벌려 고기를 잡는다. 남해 특산물인 은빛 죽방멸치는 비싸지만 구하기 어려울 정도로 인기가 높다.
남해는 보물섬처럼 먹거리와 볼거리가 많다. 남해의 봄바람을 쐬면 삶의 에너지가 초록 순처럼 충만해진다. 인생이 아름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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