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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는 여자들, 역사가 되다■특별전시 – 역사를 뒤흔든 여성독립운동가 14인의 초상
엄윤정 기자  |  uyj449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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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3.12  13:4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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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독립운동가들의 투쟁을 상징하는 붉은방에서 윤석남 화백이 그녀들의 삶을 추모하고 있다.

노동운동가,간호사,비행조종사, 임시정부 주요인사, 무장투쟁 운동가 등으로 활약했으나 역사 속에서 단 하나의 그림이나 글로도 남지 못했던 여성독립운동가 14인의 초상을 만나볼 수 있다. 서울 소격동 학고재갤러리는 4월 3일까지 윤석남의 개인전 ‘싸우는 여자들, 역사가 되다’를 전시하고 있다.

   
▲ 박자혜초상. 독립운동가 신채호의 아내.간호사들을 모아 ‘간우회’를 조직해 만세시위를 벌인 인물이다.

학고재 본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박자혜(1895-1943)의 초상을 만난다. 독립운동가 신채호(1880-1936)의 아내다. 1920년 신채호와 결혼하기 이전의 활동에 대해서는 조명된 사례가 많지 않다. 박자혜는 1919년 3·1운동 당시 간호사로서 부상자들을 치료하다 민족적 울분을 느꼈다. 간호사들을 모아 ‘간우회’를 조직했고, 만세 시위와 동맹파업을 시도하다 체포되기도 했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됐으나 대중에게는 그 이름이 아직 낯설다.

전시장 중앙 벽에는 김마리아(1892-1944)의 초상을 걸었다. 교육자이자 독립운동가로서 널리 신망 받은 인물이다. 3·1운동을 일으키는 데 적극 가담했으며 체포 후 극심한 고문을 겪어 평생 후유증에 시달렸다. 1944년 투병 끝에 숨을 거둘 때까지 독립에 대한 열망과 민족의식을 잃지 않았다. 1962년 그의 업적을 기리는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됐다.

윤석남은 1939년 만주에서 태어났다. 한 가정의 아내이자 어머니로서 전통적인 여성의 역할을 행하며 살다 40세 불혹의 나이에 붓을 잡았다. 윤석남은 아시아 여성주의 미술의 대모로 불린다. 가부장적인 동아시아 문화 속에서 반기를 든 여성주의의 움직임을 가장 잘 드러내는 작가로 손꼽힌다.

이번 전시에서는 역사 속 여성독립운동가들의 초상 연작과 대형 설치 작업을 함께 선보인다. 현재 경기도 화성에서 꾸준히 작업을 이어가며 여성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수년간 개인의 삶을 돌아본 윤석남이 이제 역사 속 여성독립운동가들의 삶을 복원하려 한다. 채색화를 그리며 과거의 복식 등을 참고하고자 한국의 초상화를 모은 책을 구입했다. 방대한 분량 속 여성의 초상은 가장 뒤편에 이름도 없이 단 두 점 실려 있었다. 일제강점기 당시 그려진 그림이었다.

“왜인지 울화가 치밀었다. 어려운시대, 나라를 위해 싸운 여성들의 삶을 조명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윤 화가는 역사가 충분히 주목하지 않은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화폭에 기록하기로 했다. 남아있는 사진 자료를 참고해 얼굴을 묘사하고, 각 인물의 생애에 대한 기록을 토대로 배경과 몸짓을 구상해 그려 넣었다. 초상화 속 인물들의 손은 크고 거칠게 표현했다. 살아온 삶을 정직하게 드러내는 신체부위는 바로 ‘손’이라고 생각해서이다. 윤석남 화가는 자립적인 여성의 삶을 대변하는 투박한 손이 작고 고운 손보다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학고재 본관 안쪽 방에 들어서면 대형 설치 작업 ‘붉은 방’을 만난다. 윤 화가는 ‘핑크 룸’ ‘블루 룸’ 등의 ‘방’ 연작을 꾸준히 제작해 왔다. 그중 붉은색 종이를 활용한 ‘붉은 방’은 이번 전시에서 처음 선보인다.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흘린 피와 열망을 상징하기 위해 붉은색을 선택했다. 종이 콜라주 850여 점과 거울 70점이 전시 공간의 세 개 벽을 가득 메운다. 공간 내부에 자리한 50여 개의 나무 조각에 여성 독립운동가의 초상을 추상화 해 그려 넣었다.

앞으로도 조명할 인물이 많다. 윤석남의 채색으로 많은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부활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학고재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위치한 율곡로 3길에는 ‘여성독립운동가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여성해방운동가이자 덕성학원의 전신 근화학원을 설립한 차미리사(1880-1955) 선생이 일제강점기 당시 민족교육을 실천한 장소다. 근화학원 학생들이 이곳에서 만세 운동을 했다.

80이 넘은 나이에도 굴하지 않고 윤석남 화가는 이러한 인물들을 염두에 두고, 역사 속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기록을 그림으로 복원해내는 작업을 앞으로도 이어갈 예정이다. “100인의 여성 독립운동가 초상을 그리는 것을 장기 목표로 삼았다. 사진 기록에 근거해 그려야 하는 작업의 특성상 자료가 많지 않아 쉽지 않겠지만 힘닿는 데까지 해보겠다” 라는 그의 소신이 확신에 가득 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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