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자매네 반디농장 김영란의 전원일기 ⑮

발아래 치이며 풀이라 불리던
그 많은 식물들은 거의 먹는
보약 같은 식물이었다...

코로나19로 온 세상이 불안에 떨고 있지만, 내 주변에는 코로나 걸린 사람보다도 암에 걸리거나 암으로 세상 떠난 지인들 소식이 종종 들려온다. 지난해만 해도 우리 회원님 두 명이나 부고 소식을 들었다. 나와 엇비슷한 나이라 더 가슴이 먹먹했다.
가까이 지내는 지인의 여동생이 얼마 전 제주도로 왔다. 췌장암이라서 췌장의 2/3를 잘라냈는데, 어느새 암세포가 간으로 전이돼 수술할 수도 없는지라, 식이요법으로 건강을 회복하기로 하고 도시를 떠나 공기 좋은 제주도로 살기 위해 왔다.

암을 더 크게 하지 않고 제압하기 위해 먹는 음식은 너무나 단출했다. 죽염과 유기농 식자재로 만든 소박한 식사. 그녀가 먹는 식단을 어깨너머로 건너보며 마음이 뭉클했다.
살기 위해 그녀가 선택한 최소한의 간소한 식단. 한 오라기 생의 밧줄을 부여잡고 그녀가 견뎌내고 있는 시간들을 가늠하면서, ‘내가 그녀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50대 중반 나이라면 아직은 젊은 나이지만, 우리 대다수는 여기까지 달려오느라고 사는데 골몰해 자신을 돌아볼 겨를이 없었을 것이다. 소소하고 수많은 시련들을 무심히 보내며 살아야 했기에 웬만한 일은 강심장으로 단련됐을 것이다. 하지만 암은 결코 가볍지 않은 상대다. 이겨낼 수도 있지만, 질 수도 있는 만만치 않은 상대를 만난 것이다.

푸석한 그녀의 얼굴을 수시로 엿보면서 내가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무엇일까. 그녀가 반드시 살아야 할 이유를 깨닫게 해주고, 매 순간마다 행복해질 수 있는 마음 관리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려면 대가 없는 사랑과 용기를 줘야 할 텐데...
환자가 되면 마음이 약해지기 쉽고, 때때로 생을 움켜잡은 손을 놓고 싶은 환각도 밀려올 텐데, 이제 이웃이 된 암환자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무엇일까?

그녀는 본능적으로 우리집 유기농귤을 즐겨 먹었다. 먹거리가 제한된 그녀가 먹을 수 있는 식자재는 자연산이나 식물성 유기농이라, 내가 대충 심어놓은 채소들을 보고 눈이 반짝이길래 내 것도 주고, 내게 없는 것은 이웃에게서 얻어다가도 줬다.
암을 이겨내려면 잘 먹어야 해. 항암효과가 좋은 식물들로 잘 먹고, 잘 자고, 즐겁게 지내고...

막상 암환자가 먹으려고 다른 유기농 식품을 찾으니 찾기가 쉽지 않았다. 나는 그녀에게 줄 식물들을 우리 귤밭에 자생하는 풀들에서 찾으려고 야생나물 공부를 시작했다. 그동안 발아래 치이며 풀이라 불리던 수많은 식물들. 방가지똥, 뽀리뱅이, 꽃마리, 별꽃, 광대나물, 점나도나물, 소루쟁이... 그 많은 풀들이 거의 다 먹는 식물이었다.

쑥, 냉이, 달래 정도는 익히 알지만 우리가 풀이라 여기던 식물들과 주변의 약초들. 그동안 관심은 있었지만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았던 풀나물들을 잘 활용해 생명의 먹거리로 밥상에 오르게 할 소임이 내 역할인가 싶다.
유기농귤 농부를 넘어서서 자연의 먹거리를 좀 더 다양하게 활용해 아픈 이들과 아프기 전 예방하기 위한 건강한 식단. 음식보약(食寶)에 내 에너지를 무한 방출해 보리라는 또 하나의 꿈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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