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촌愛살다 - 전남 영암 ‘태양애무화과 농장’ 이청재 대표

전문가와 현지주민에 묻고 배워가며 노하우 다져
불합리한 유통구조 극복 위해 전국 발품팔며 판로 개척

▲ 귀농 7년차를 맞은 ‘태양애무화과 농장’ 이청재 대표

월출산과 영산강의 고장 전남 영암군. 영암군은 ‘떨어뜨려도 스스로 올라왔다’는 월출산의 영험한 바위(靈巖)에서 이름이 유래했다. 월출산 북서쪽으로 고도 100~200m의 반도 모양의 구릉이 산재하는데, 그 사이로 좁은 듯 넉넉하게 평야가 펼쳐진다. 호수로 유명한 영광군 삼호읍이다. 원래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땅도 좁고 척박했다. 그러나 영산강 유역 농업개발에 따른 하굿둑이 축조되면서, 영산호 영암호의 인공호수가 조성되고 내해(內海)에 둘러싸이면서 삼호(三湖)가 됐다.

삼호읍은 기후가 온난해 쌀·보리·고추 등과 더불어 무화과(無花果)를 많이 재배하기로 유명하다. ‘태양애무화과 농장’ 이청재 대표(59)는 삼호읍 무화과 농민들 중에서도 대표적인 성공 귀농인으로 꼽힌다. 이 대표는 귀농 2년만인 지난 2016년 영암무화과품평회에서 1등의 영예를 안았다.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했는데, 귀농을 결심하고는 주말마다 내려와서 귀농 사전연습을 했지요. 영암군농업기술센터 무화과 전문 강사들의 이론 교육 그리고 현지 농업인들을 찾아다니며 나름대로의 농업방식을 승화시키려고 노력했는데, 1등을 할 거라고는 생각 못했습니다. 지금도 1등이라고 호명되는 순간이 생생하네요. 가족과 주변은 물론이고 제 자신과의 약속을 조금은 지켜낸 결과라는 생각에 더 없이 의미가 있었지요.”

▲ 무화과가 햇살을 가득 머금은 모습

이청재 대표는 광주가 고향이다. 대학졸업과 함께 서울에서 직장생활만 24년여를 했다. 광고대행사와 벤처기업의 마케팅기획부서 등에서 일하는 동안 언제나 인생 2모작을 염두에 뒀다.
“직장생활이 길어질수록 퇴직에 대한 부담, 건강, 가족, 미래 같은 단어들의 고민도 깊었습니다. 그러면서 어느 순간부터 와이프와 가족들을 설득하기 시작했지요. 처음에는 많이 반대했지만, 어쩔 수 있겠어요. 지켜보자는 식이더라고요. 처음부터 귀농을 꿈꿨던 것은 아니었어요. 직장 생활을 하면서, 귀촌을 통한 새로운 도전을 생각했지요. 그리고 주말이면 시골에 가서 농사일도 알아보고,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귀농 시 겪게 되는 어려움 등을 파악하는 한편, 최대한 귀농자금 확보에도 노력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이왕 내려갈 거면 귀농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바뀌더라고요. 그래서 귀농자금 확보에도 최선을 다했지요. 그렇게 해서 2014년 가을쯤 귀농을 하게 됐지요.”

이 대표는 작목을 선택하는데도 고민이 많았다. 축산업에 평소 관심이 많았던 탓에 소를 키우는 축사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주변의 도움과 여건 등을 고려해 무화과로 마음을 먹었다.
“삼호읍이 전국적으로 무화과가 유명합니다. 그래서 저도 자연스럽게 무화과로 귀농 첫단추를 끼워야겠다는 생각에 이르렀지요. 무화과 재배를 위해 밭 5000㎡(1500여 평)을 구입한 순간부터 한 순간도 방심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항상 무화과를 궁리하고 질문하고 터득하려고 노력했지요. 그러다보니 벌써 귀농 7년차가 됐네요. 지금은 귀농이 잘한 결정이었다고 확신하고 있지요.”

귀농 7년차를 맞으며 무화과 전문가 수준의 농사꾼이 된 이 대표지만, 좋은 수입을 올리는 일은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유통업체의 가격담합 등이 안정적인 판로를 가로막았다. 이 대표는 그래서 불합리한 유통구조를 개선해야 한다고 마음먹었다.

▲ 무화과 선별작업

페이스북 등 SNS에
‘친환경과 품질’의 홍보 주력

“아무리 1등을 하고, 품질이 좋아도 유통업자들끼리 가격을 형성해버리기 때문에 차별화된 농사전략 등이 무의미해져요. 그래서 서울을 비롯한 전국 각지의 시장을 발로 뛰며 거래처를 직접 확보하기 시작했지요. 그러다보니 지금은 조금 더 나은 가격으로 판매를 하고 있습니다.”

이 대표는 특히 카톡과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한 무화과 홍보에도 열심이다. 동시에 친환경 인증 등을 추진한 결과 입소문이 퍼지면서 학교급식 납품 등 해를 거듭할수록 소득의 성과를 올려가고 있다.

“귀농은 시행착오를 줄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결국은 현지 농가 또는 귀농 선배들한테 배울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주민들과의 관계 형성에 노력하고, 먼저 다가가는 정성과 지혜가 필요합니다. 작물을 재배하는 노동이 곧 취미고 즐거움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농사꾼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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