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영 시인·가천대 독서코칭과정 책임교수

"특정인만 문제를 저지르지 않는다.
존중하고 존재로 여기지 않으면
누구나 가해자가 될 수 있다.

가해자에게 가해자다움이 없듯이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은 없다.
더 이상 피해자에게 2차 피해로
이어지는 행동을 삼가야 한다.
특히 성추행을 알려는 행동은
대표적인 2차 가해다..."

▲ 김신영 시인·가천대 독서코칭과정 책임교수

최근 정의당 김종철 전 대표의 성추행 사건으로 정국이 시끄러웠었다. 피해자인 장혜영 의원은 시국 선언문을 내고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2차 가해의 사회에 일침을 가했다. 문제는 가해자다. 누구보다 성인지 감수성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활동을 해온 사람이다. 그런데도 그 역시 성추행을 아무 생각 없이 저지르고 말았다. 나름대로 가장 진보적인 인물의 행동이 이러했으니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인식은 더 좋지 않으리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상대방을 존엄한 인격을 가진 존재로 본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문제가 더 커진다. 인간으로 존중했다면 상대가 느낄 혐오와 불안을 충분히 인지했어야 하지만 그는 이를 간과했기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더구나 사회에서 피해를 당한 자에게만 어떤 행동, 즉 피해자다움을 요구하는 풍토는 문제를 더욱 키우고 있다. 이에 어떤 피해자는 피해자다움을 위한 행동을 하기에 이르는 참담한 지경에 이르렀다. 도대체 가해자보다 왜 피해자에게 집중하며 왜 피해자다움을 요구하는가? 가해자를 벌주고 처벌하고 문제시해야 하지만 수많은 가해자는 면피하기 바쁘고 사과는커녕 발뺌하며 사회적 분위기에 동승해 오히려 피해자가 문제라고 지적을 한다.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피해자다움이란 것은 없다. 피해자들은 최대한 이전과 똑같이 일상을 회복해 생활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죄지은 자처럼 머리를 숙이고 우울해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더 적극적이고 열정적으로 이 사회의 한 존재자로서 자신의 자리를 지켜야 한다. 장혜영 의원은 가해자다움도 없다고 했다. 누구나 저지를 수 있는 것이라는 말이다. 특정한 가해자가 문제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존중하고 존재로 여기지 않는다면 누구나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은 어쩌면 존재자라는 인정을 받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항상 배제되고 뒤로 밀리며 사회의 험한 뒤치다꺼리는 다 여성의 몫으로 여겨지고 있다. 배려한다면서 배제하는 현실이 반복되고 있다. 필자도 여성으로 그간 살아오면서 수많은 성추행을 당해 왔다. 여성들이 늘 겪는 일상처럼 느껴질 정도다. 그때마다 반발할 수도 없다.
사실 한 마디도 꺼내지 못하는 피해자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그런 일은 무덤까지 가져가야 한다는 것이 내 어머니의 생각이었다. 이것은 여성들이 피해를 입고도 말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것을 단적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1991년에 와서야 처음으로 우리 사회에 일본군 위안부 사건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도 그런 이유다. 이는 아직도 망언을 쏟아내고 있는 참사에 해당한다. 말하기조차 참담한 그 일을 두고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게 처리하고 말하며 지나갈 수가 있다는 말인가? 사실 위안부라는 말도 적당한 말이 아니나 달리 뭐라 표현할 수 있는 적당한 말이 없다. 심지어 ‘성노예’라는 말은 더 충격적이다. 사건 자체에는 맞는 말일지 모르나 그 일을 겪은 당사자들에게는 2차 가해를 넘어 인격적 살인을 저지르는 말이기 때문이다. 납치하거나 일자리 소개를 빌미 등으로 끌려간 이들의 인생은 갈가리 찢기고 짓밟혔다. 그들은 미혼으로 12세부터 15세가 50%에 달할 만큼 어리고 꿈 많은 나이였다.

가해자에게 가해자다움이 없듯이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은 없다. 더 이상 피해자에게 2차 피해로 이어지는 행동을 삼가야 한다. 특히 성추행에 대해 알고 싶을 수는 있지만, 그것을 알려고 하는 행동은 대표적인 2차 가해임을 알아야 한다.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피해자를 괴롭히는 일은 당장 그만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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