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광희 칼럼 - 누리백경(百景)(171)

# 일년 24절기 중 첫 번째 절기인 입춘(立春)이 코앞이다. 양력으로는 2월3일에 들었고, 음력으로는 섣달(12월) 스무 이튿날(22일) 이다. 낱말 뜻 그대로 ‘봄이 섰으니’ 곧 봄이 올 터다.

예전에는 입춘이 되면, 만복이 집안에 깃들기를 바라며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 혹은 ‘용(龍)/호(虎)’ 한자를 오른쪽 왼쪽 대문에 각각 크게 써서 붙였다. 이를 ‘입춘첩(立春帖)’ 혹은 ‘입춘방(立春榜)’이라고 했다. 이 입춘첩은 조선조 후기 효종 때 남인의 거두 미수(眉叟) 허목(許穆, 1575~1682)이 처음 만들어 대문에 붙였다고 전한다. 일종의 액막이였던 셈이다. 그러나 주거형태가 한옥 ‘대문’이 아닌 아파트 ‘쪽문’으로 대부분 바뀌면서 지금은 사라진 옛 풍속이 됐다.

# 입춘날에는 ‘오신반(五辛飯)’이란 별식을 챙겨 먹었다. 즉, 시린 눈밑에서 겨우내 봄을 기다리고 있던 다섯 가지 자극성(매운 맛) 있는 나물-멧갓·미나리·달래·부추·움파(혹은 붉은 쌈채소)들로 겨우내 잃었던 입맛을 되찾았다. 해서 이때의 햇나물들을 입춘채(立春菜)라고도 했다.

또한 입춘 바로 전날에는 철(24절기)의 마지막이란 뜻으로 ‘절분(節分)’ 혹은 ‘해넘이’라고 부르고, 콩을 한줌 방안이나 문에 뿌려 액귀를 쫓은 다음 새해를 맞기도 했다. 그리고 지방에 따라 조금씩의 차이는 있지만 ‘아홉차리’라는 풍속으로 공덕을 쌓는다고 믿어 이를 행했다.… 아홉 짐의 나무를 하고, 아홉 발 새끼를 꼬고, 마당을 아홉 번 쓸고, 길쌈 아홉 바디를 삼고, 밥을 아홉 번 먹고… 아홉(9)이란 숫자는 우리 조상들이 생각하는 숫자개념에서 최고의 ‘양수(陽數)’이기 때문이었다.

그뿐이랴, 입춘날 쌓는 ‘입춘공덕(立春功德)’도 전해 왔었다. 헐벗은 이에게 입을 옷을 주는 ‘구난(救難)공덕’, 깊은 물을 건널 수 있는 다리를 놓아주는 ‘월천(越川)공덕’, 병든 사람에게 약을 줘 낫게 해주는 ‘활인(活人)공덕’, 부처님께 공양을 드리는 ‘염불공덕’이 곧 그것이다. 이 공덕들은 죽어서도 저승에 가져간다 해 상여 앞잡이꾼이 부르는 <향도가(香徒歌)>로 불리기도 했다.

# 입춘과 관련해서 입으로 전해져 오는 속담도 있다. ‘이월에 물독 터진다’, ‘입춘에 장독·오줌독 깨진다’, ‘입춘 추위는 꿔서라도 한다’… 봄이 온다지만 입춘 때의 매서운 날씨를 체험으로 겪은데서 나온 생활속담들이다.

그러나, 올해 입춘날은 너 나 할 것 없이 코로나로 온갖 시름에 겨워, 절기를 챙겨볼 맘적 여유 없이 꽁꽁 얼어붙은 시린 세월을 보내고 있다. 그렇더라도 마음의 끈을 단단히 조여매고 하루하루를 버텨 볼 일이다. 이번 입춘날에는 뭐니 해도 법정스님이 이 세상에서 마지막 남긴 말로 ‘마음의 입춘첩’을 삼았으면 어떨까 싶다.

“어지러운 세상일수록 제 정신을 똑바로 차릴 줄 알아야 한다. 제 정신을 차리려면 자기 마음을 찾고 닦는 일이 선행돼야 한다. 사람들은 자기 집 문단속은 잘하면서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자기 마음은 단속할 줄 모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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