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광희 칼럼 - 누리백경(百景)(167)

# 올해(엄밀히 말하면 새해)에는 제야(除夜)의 종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됐다. 코로나19라는 괴질의 확산으로 보신각 타종 행사가 1953년 처음 시작된 이래 67년 만에 취소됐기 때문이다.
‘제야’ 혹은 ‘제석(除夕)’이란 말은 음력 섣달 그믐날 밤에 어둠을 걷어낸다는 뜻이다. 이날 불교사찰에서 백팔(108) 번뇌를 뜻하는 108번의 종을 쳤던 불교 의식에서 ‘제야의 종’이 유래했다.
보신각 종치기 행사의 역사는 조선조 개국시조인 태조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1395년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상가로 조성돼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린다’ 해 운종가(雲從街, 지금의 광화문 우체국~종로3가 입구까지의 거리)로 불린 거리 중간쯤에 보신각이라는 누각을 짓고, 1398년 종을 매달아 한양도성 성문을 열고 닫는 시각을 알리는 종을 쳤다.

사람들의 통행금지 해제를 알리며 한양성문을 여는 아침(새벽) 4시에는 ‘파루(罷漏)’라 해 33번의 종을 쳤다. 그리고 성문을 닫아걸고 통행금지가 시작되는 ‘인정(人定)’에는 28번의 종을 쳤다. 말하자면, 보신각 종이 한양의 시간을 알리는 시계구실을 한 것이었다.

인정과 파루의 타종 수에도 담겨진 뜻이 있다. 인정의 28번은, 우리나라 토속 신앙에서 우러러 받드는 일월성신(日月星辰, 해와 달과 별) 28수에 나라의 평안을 비는 뜻이 담겼다. 파루에 33번의 종을 치는 것은 불교수호신인 제석천이 이끄는 33개의 하늘[33 천]에 국태민안(國泰民安)을 비는 뜻을 담았다. 이것이 ‘제야의 종’으로 그 역할이 바뀌어 보신각 타종행사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보신각 ‘제야의 종’ 타종 행사는 1953년부터 ‘가는 해를 기리고, 오는 새해의 복을 기원하는’ 의미를 실어 파루 때 치던 33번의 종을 쳤다.

# 제야의 종소리와 함께 연말이면 이 강산 구석구석에서 은혜처럼 가슴에 담아 누구나가 성가처럼 입에 올리는 노래가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이다. 영국 스코틀랜드 시인인 로버트 번스(Robert Burns, 1759~1796)가 스코틀랜드 구전민요를 정리해 노랫말(5절)을 지어 부른 이 노래 제목은 <먼 옛날부터>, 영어로는 <그리운 옛날(Old Long Since)>이다.

영어권 국가에서는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을 때 부르는 축가다.
우리나라에서는 <석별의 정>이란 제목으로 아동문학가 강소천이 번역 소개해 특히 <졸업식 노래>로 많이 불려왔다.
‘오랫동안 사귀었던 정든 내 친구여 / 작별이란 웬말인가 가야만 하는가 / 어디간들 잊으리오 두터운 우리 정 / 다시 만날 그날 위해 노래를 부르자’
우정을 기리는 이 오래된 스코틀랜드 노래-<올드 랭 사인>의 원래 가사는 이렇다. - ‘어릴 때 함께 자란 친구를 잊어선 안돼 / 어린시절에는 함께 데이지(국화)를 꺾고 시냇물에서 놀았지 / 그후 오랫동안 헤어져 있다 다시 만났네 / 자,한잔 하세~!’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서로가 서로를 그리워 하면서도 만날 수 없는 암울한 나날의 연속이다. 그래도 이 어둠은 머잖아 물러갈 것이다. 예전 한 전직 대통령이 된 이는 야당 대표시절 “(새벽을 알리는)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했다.

외로울지라도 가슴엔 한 줌의 희망의 불씨를 지펴올려 볼 일이다. 신축년(辛丑年) 새해-소띠 해에는.
어느 시인의 싯구가 작은 위안이 될 수 있으려니… ‘울지 마라 /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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