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 - 시인 김신영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베어내어/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룬님 오신 날 밤이어든 굽이굽이 펴리라(황진이作/동짓날 기나긴 밤에)

이 시조를 읽어보면 헤어진 지 오래된 님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절절히 배있음을 느끼게 된다. 만나서 오랫동안 사랑을 나누고 싶은 따사한 감성을 절묘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립고 보고 싶은 애절한 감정을 이렇게 짧은 글로 절묘하게 그려내는 것이 시다.
시를 읽다 보면 시인이 표출한 시어를 통해 숱한 감정의 편린을 느끼며 감동을 얻는다. 이래서 사람들은 좋은 시를 애송하게 된다.
깊어가는 겨울밤 좋은 시를 읽고 쓰고 싶은 사람에게, 시 읽기와 시 창작에서 시작해 시인 등단까지의 과정을 소개한 책 ‘아직도 시를 배우지 못하였느냐?’를 펴낸 김신영 시인을 만났다. 그는 시인으로서 홍익대에서 시 창작 교수로도 활동 중이다.

혼란스런 마음을
순수하고 정화된 감정으로
바꿔내는 것이 시심...
시심을 글로 표출한 게 시

친구와 헤어진 우울감 달래려 독서에 몰입
“저는 초등학교 시절에 굉장히 친한 친구와 헤어졌습니다. 너무도 친해 하루도 떨어지지 않고 지냈는데 이민을 간 거예요. 심한 고독감으로 우울증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우울함을 달래고자 학교 도서관에서 책만 읽었어요.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도서관에서 책읽기에 더욱 깊이 빠져들었어요.
책을 읽으면서 ‘나중에 어떤 사람이 될 건가’, ‘나한테 부합되는 일이 무엇인가’를 깊게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대학에 가서 글을 쓰는 문인이 되고자 국문과에 진학했지요. 글을 읽고 쓰다보니까 시를 좋아하게 되면서 시인이 돼야겠다는 생각으로 등단의 길을 밟았는데 쉽지 않았습니다. 꼭 시인이 되겠다는 결심으로 ‘새벽 2시 이전엔 잠을 안 자겠다, 정신적인 포만감만을 얻으려 밥을 많이 안 먹는다, 시인이 되기 전에는 결혼을 안 한다’는 세 가지 다짐으로 시인 등단 도전에 힘썼지요.”

그런 노력 덕에 그는 1994년 계간지 ‘동서문학’으로부터 신인상을 수상해 등단의 기회를 얻었다. 그 후 홍익대 출강과 함께 모교인 중앙대에서 박사과정을 마쳤고, 현재는 ‘아시아문예’지의 주간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시는 감정을 세련되고 순화된 언어로 표현하는 것”
“시는 마음속에 있는 감정의 덩어리를 그대로 쏟아내는 게 아니라 좀 더 세련되고 순화된 언어로 바꿔 표현하는 것입니다. 발레리나들이 발동작이나 손동작으로 아주 섬세하고 우아하게 그것도 매우 가볍게 표현하잖아요. 시도 마음에 있는 감정을 그냥 내놓는 게 아니라 정제하고 승화시키는 것입니다.”
시심(詩心)을 잘 다듬는 방법에 대해 김신영 시인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우리 가슴 속에는 여러 가지 마음들이 혼탁하게 내재돼 있고, 혼란의 과정 속에 있는데 이 마음을 순수하고 정화된 감정으로 바꿔내는 것이 시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마음을 글로 표출하는 것이 시죠. 하지만 감정을 순화시키는 일이 쉽지 않아요.”

직접화법보다 부드럽고 은근하게...
“우리가 얘기를 나눌 때, 직접화법과 간접화법 등 두 가지로 말을 하게 됩니다. 기사나 논문, 수필 등은 직접화법으로 써야 의미가 전달되는데 반해, 시는 직접화법으로 쓰면 시시해집니다. 그래서 시는 간접화법으로 써야 합니다. 간접화법 시어의 서술방식은 비유와 상징입니다. 직접적이지 않고 비유를 해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겁니다. 구체화시켜서 직접 대하고 말을 하는 게 아니고 부드럽고 은근하게 이야기를 하는 화법으로 글을 써야 합니다.”

김신영 시인은 그가 쓴 책에서 ‘시인은 마법사’라고 표현했다. 왜 그렇게 표현했을까?
“시인이 시를 쓸 땐 마법사처럼 써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마법사가 마법을 부리면 그게 진짜인 것처럼 느껴지잖아요. 그게 마법입니다. 시인은 자기 마음대로 시를 쓸 수 있다는 거예요. 쉽게 말하면 이렇게 표현해도 되고 저렇게 표현을 해도 되고, 과장법을 써도 되고, 논리적으로는 말도 안 되는 비약적인 얘기를 써도 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시인을 마법사라고 하는 겁니다. 시인이 ‘하늘은 바다, 우리는 모두가 물고기가 돼 헤엄을 칩니다’라고 그렇게 시를 마법을 부리듯 쓸 수 있다는 겁니다.

자연․계절․날씨, 사람의 아우라도 시의 대상이자 재료
김신영 시인은 ‘시에도 레시피가 있다’고 말한다.
”시를 구성하는 것들을 이거다 저거다 콕 찍어서 말하긴 어렵지만 모든 사물이 시적인 대상이 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시인이 그것을 어떻게 요리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습니다. 시에서 레시피라는 것은 시적 대상, 시의 재료를 말합니다. 시의 재료로는 자연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시를 쓰려면 동물이나 식물, 곤충이나 꽃의 이름을 가슴깊이 넣어두고 있어야 합니다. 시인이라면 최소한 자연에 대해 친밀하게 잘 알고 있어야 된다는 의미지요. 그렇게 자연을 잘 알고 있으면 아주 훌륭한 시의 재료 즉 레시피가 갖춰졌으니 그것을 표현하는 작업이 중요하겠지요. 이 레시피엔 날씨도 굉장히 중요하고, 계절에도 민감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의 이름을 부르면서 좋아하는 사람의 아우라까지 함께 가져오는 것이 시에 있어서 중요한 레시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에는 발상의 전환이라는 레시피도 있습니다. 발상의 전환은 시뿐만 아니라 문학작품에서 굉장히 중요한 도구가 됩니다. 예를 들어 ‘나무가 걸어다닌다’, ‘춤을 춘다’고도 표현할 수가 있다는 겁니다.”

농촌여성들도 자신의 삶을 글로 남겨보라
김 박사는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남기며 인터뷰를 마쳤다.
“농촌여성신문 독자들에게 특별히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자신에 대한 기록을 어떠한 형태이든 남기길 바랍니다. 시나 일기, 편지, 수필 등 어떤 것이든 자신에 대한 기록을 꾸준히 써서 남겨보세요. 여성들은 기록을 남기는데 너무 소홀한 경향이 있어요. 자신의 삶을 어떻게 살았는가를 증명해 낼 수 있는 기록물을 남겨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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