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자수필-귀농아지매 장정해 씨의 추억은 방울방울

"코로나에 휩쓸려
한 해가 끝나간다.
시작보다 중요한 게
마무리다..."

TV에서는 연일 폭주하는 코로나19 상황을 보도하느라 열을 올리고, 검찰개혁의 지루한 싸움에 귀가 따가운데 아침부터 창 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다. 올 들어 처음 맞는 눈이다. 소리도 없이 떡가루 같은 하얀 눈가루가 아침부터 한나절 동안 쉼 없이 쏟아지더니 세상천지가 하얀 솜이불을 덮고 따뜻하게 누웠다. 삶의 슬픔도 고통도 어려움도 혼란과 두려움도 모두 감싸 안고 아무 일 없는 듯 천지는 뽀얗고 고슬고슬한 솜이불에 파묻혀있다.

12월 둘째 주, 농촌에 이맘때면 24절기 중 대설을 지나 동지로 가는 절기다. ‘농가월령가’의 11월의 노래는 농사지어 빌린 쌀 갚고 세금 내고 종자 남기고 소작료 내고 일꾼 품삯 갚고 나니 성기고 옹골차지 못한 것이 남는 게 하나 없는데다, 아침엔 밥이나 저녁엔 죽을 끓여야하는 초겨울 농촌의 고단한 삶을 노래했다. 조선시대의 농민의 삶이나 12월을 맞는 지금 우리의 심정이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이지만  연초부터 코로나19가 터져 모든 게 망가지고 무너져 혼란스럽다.

지금까지 살아 온 삶의 질서와 가치였던 대면사회를 비대면사회로 송두리째 바꿔야하는, 아무런 연습이나 훈련도 없이 느닷없이 치러야 하는 이 과도기는 너무 황당하지 않은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흐릿한 기억밖에 없는 2020년 한 해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나는 혼란스럽기만 하다.
마침 딸이 코로나19로 집에서 쉬게 된 친구네(아들만 있는) 집에 갔다가 거실에 붙여 놓은 메모를 내게 전송했다. <코로나 생활 수칙> ①주는 대로 먹는다. ②TV 끄라고 하면 당장 끈다. ③사용한 물건은 즉시 제자리에 ④한 번 말하면 바로 움직인다. ⑤엄마에게 쓸데없이 말 걸지 않는다.  # 위 사항을 어기면 피가 코로 나올 것이다.

누군가의 말에 생각을 정리할 때 ‘어려운 것은 쉽게, 쉬운 것은 깊게, 깊은 것은 유쾌하게’를 염두에 두라고 한 말이 떠올라 한참을 웃었다. 코로나가 사람을 웃기기도 하다니.
20년 전 비극적 교통사고를 당한 다이에나 왕세자비 죽음에 전 세계인이 애도했고 관심이 집중됐다, 그녀의 시신이 파리에서 영국으로 옮겨질 때 본 한 장면은 영국황실 비행기가 착륙하고 그녀의 시신을 화물칸에서 내리더라는 것이다. 사랑받았던 사람이 짐짝 취급을 받은 것은 죽었기 때문이었다. 그 누구라도 죽으면 화물취급을 받는다는 것, 우리는 지금 살아 있다는 것은 생명이 있다는 최저점에서 다시 시작해야하는 게 아닐까? 먼저 그것에 감사함이 옳지 않을까? 매사를 너무도 당연히 여겼던 것을, 잃어버리고 나서야 비로소 안다.

2020년 시작이 불과 며칠 전 같은데 코로나에 휩쓸려 한 해가 끝나간다. 시작보다 중요한 게 마무리다. 느슨해지는 마음을 다잡아 할 일들을 끝까지 잘 정리하고, 새해에 하고 싶은 것, 해야 할 것들을 담기 위해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확실히 해야겠다. 주어진 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부정하거나 거절하거나 그냥 보내지 않고 움직이며 반응해야 겠다.

‘까르페 디엠(Carpe diem)’. 현재 순간에 충실하라는 뜻의 라틴어다. 현재를 충실하게 살며 생명에 대해 감사를 잊지 말고 살아야겠다. 때로 길을 잃는다는 건 새로운 길을 알게 된다는 뜻이리라. 코로나19로 길을 잃고 혼란에 빠진 것 같지만 그래도 더 넓은 길로 나가는 새로운 길을 찾을지 누가 알겠는가. 눈길을 걸으며 찬바람 서성이는 한 해의 길목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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