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광희 칼럼 - 누리백경(百景)(165)

# “어느 일요일 저녁, 파브롤교회 앞 광장에 있는 빵집 주인 모베르 이자보가 막 잠들려는 참이었다. 가게의 창살 달린 유리진열장이 쨍그랑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가 보니 마침 그때 창살과 유리를 한꺼번에 주먹으로 깨뜨린 구멍으로 손 하나가 쑥 들어와 있는 게 눈에 띄었다. 그 손은 빵 하나를 훔쳐가지고 나갔다.
이자보는 재빨리 밖으로 뛰어나갔다. 도둑은 쏜살같이 달아났다.”

빅토르 위고(Victor Hugo, 1802~ 1885)의 장편소설 <레 미제라블>(1982)에서 주인공 장발장(Jean Valjean)이 빵 한 개를 훔치는 장면을 묘사한 소설의 원문이다.
장발장은 누나와 일곱 명의 어린 조카들을 위해 빵집 진열장 유리창을 깨고 바게트빵 한 개를 훔쳐 달아난다.

가난과 굶주림에서 비롯된 이 도둑질로 옥살이가 시작된 장발장의 구체적인 죄목은 빵 절도와 가게 창문유리 파손, 밀렵과 불법무기(권총) 소지로 5년형을 선고받고, 네 차례의 탈옥 시도로 14년이 가중처벌돼 모두 19년 형을 선고받았다.
소설 <레 미제라블>이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된 건, 1914년 《청춘》 잡지를 통해서였다. 이때의 제목은 원제목 ‘레 미제라블’을 그대로 직역한 <너, 참 불쌍타>였다.

# 조선조 후기 영조대에 새로운 학풍(실학)을 세운 재야 실학자 성호(星湖) 이익(李瀷, 1681~1763)은 그의 저서 《성호사설》에서 ‘조선의 3대 도적’을 언급했다.
연산군대에 충청도·경기도 일대에서 도적패거리의 우두머리로 활약했던 홍길동, 조선 중기 명종대에 황해도 구월산을 거점 삼아 도적질을 했던 백정 출신의 임꺽정, 그리고 숙종대에 활약하던 광대 출신의 장길산이다.

이익은 이들을 부패한 탐관오리들의 재물을 훔쳐다가 가난한 백성들을 도와주는 의로운 도적, 즉 ‘의적(義賊)’으로 판단했던 것이다.
# 요즘 코로나 상황 속에서 자신이 머무는 수원의 한 고시원에서 구운 달걀 18개(5000원 어치)를 훔친 47세의 한 건설현장 청소부가 생계형 절도라 해서 ‘코로나 장발장’이라 불리는 코미디 같은 일이 벌어졌다.

이 남자는 경찰에서 “코로나로 공사가 중단돼 수입이 없어져 생활비가 떨어졌고, 무료급식소도 문 닫는 바람에 열흘 가까이 물만 마셨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경찰 조사 결과 같은 류의 전과가 9회에, 실형을 선고받은 전과 만도 6회에 달해 특가법을 적용, 징역 1년의 최저형량을 선고받아 체포영장이 발부됐다. 형편 참작의 여지가 없었던 상습전과자였던 것이다.

그런 한켠에서는, 벌금형을 선고받고도 낼 돈이 없어 노역장유치를 당하는 빈곤층에게 시민들의 후원으로 모은 돈을 빌려주는 단체인 ‘장발장 은행’도 설립(2015년 3월)돼 있는 게 온정적인 우리 사회이고 보면, 이래저래 먼 이국땅에서 건너온 ‘장발장’만 우스개 같은 말놀음에 이용당하는 꼴이어서 뒷맛이 영 개운치 않다. ‘코로나 장발장’에 ‘장발장 은행’ 이라니… 불현듯 생각나는 말씀 하나-“일 하기 싫으면 먹지도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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