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광희 칼럼 - 누리백경(百景)(162)

# 조 바이든(Joe Biden·77)은 미국 정치역사상 두 가지 기록을 가지게 됐다. 30세에 다섯 번째로 최연소 연방 상원의원이 됐다는 것과 78세의 최고령 대통령이 됐다는 것이다.
그는 또 소탈한 이웃집 아저씨같은 친근감을 줘 미국의 ‘블루칼라’인 서민 노동자들로부터 ‘엉클 조(uncle Joe)’로 불린다. 그 자신도 ‘블루칼라’를 자기 정체성의 근간으로 삼아 이미지 메이킹을 하며, “나는 벨트 버클부터 구두 버클까지 노동자다!”라고 선언해 ‘소탈한, 서민적’이란 뜻의 ‘폭시 조(folksy Joe)’라 불리기도 한다.

# 바이든은 연방 상원의원 생활 36년간 열차만 이용해 출퇴근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30세에 상원의원 첫 당선 후, 집에 있는 두 아들을 돌봐야 한다며 몇 년간 집이 있는 델라웨어주 윌밍턴에서 워싱턴 디씨(D.C)까지 매일 77Km를 왕복 4시간씩 출퇴근했다. 그의 열차이용은 정평이 나 고향의 윌밍턴역을 자신의 이름을 붙인 ‘조 바이든 주니어 역’으로 불릴 지경이 됐었다.
그가 고정으로 타고 다니는 열차는 아셀라 익스프레스라고 한다. 이번 대선 때도 기차를 타고 경합주들을 누비며 선거운동을 했다.

# 그의 가정사는 흡사 ‘비극적 영화사’ 같은 역정으로 얼룩져 있다.
그는 1942년 펜실베이니어 스크랜튼에서 기울어 가는 아일랜드계 가톨릭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화로 청소와 중고차 중개업으로 어렵게 살림을 꾸려가며 처가의 도움으로 생활을 했다.
바이든은 델라웨어대(역사·정치학 전공)를 거쳐 시러큐스대 로스쿨을 나와 변호사 자격을 얻었다. 그리고 로스쿨에 재학중이던 1966년, 첫사랑인 네일리어 헌터와 결혼해 2남 1녀를 뒀다.(그는 여자친구 집에 처음 인사를 가 예비 장인·장모께, “변호사가 된 후 정치를 하고,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말해 결혼승낙을 얻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말대로 1972년 29세 때 델라웨어 연방 상원의원에 도전, 당시 공화당 현역 거물을 꺾어 전국적인 화제가 됐다. 그의 반세기 정치역정의 눈부신 출발이었다.
그러나 선거 6주 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쇼핑을 나갔던 아내와 아들, 딸이 대형 트레일러에 치받혀 아내와 한 살배기 딸이 죽는 참사를 당했다.(그래서 상원의원 취임선서를 아들 둘이 입원해 있는 병원에서 했다.) 이후 그는 해마다 사별한 부인과 딸의 기일인 12월28일에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또 2015년에는 그의 정치적 후계자로 여겼던 장남 보 바이든이 45세에 뇌종양으로 세상을 뜨는 아픔을 겪었다.

우리나라와는 2001년 김대중 대통령 때와 박근혜 대통령 시절, 미 상원 외교위원장과 부통령으로 각각 방한한 인연이 있다.
그는 ‘더 나은 미국 재건(Build Back Better)’을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그런 그가 앞으로 4년간(혹은 8년간) 트럼프 전 정권이 초래한 분열과 혼란을 어떻게 잠재우며, 미국인들이 갈망하는 안정된 미국으로 이끌어 나갈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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