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만에 대통령 참석한 청와대 기념식

코로나19와 장소의 무게감으로 흥 실종
농민이 주인공인 진정어린 행사 아쉬워

1996년 국가기념일로 제정돼 올해로 25회를 맞은 농업인의 날. 과거 국가경제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을 때에는 나라님이 농업을 직접 챙겼다. 보릿고개로 국민이 배를 곯을 때 직접 모내기를 하며 농민들의 땀을 이해했고, 농업에 관심을 쏟는 나라님의 그 모습을 보며 농민들도 위안을 받았다. 그 시절엔 그랬다.

올해 농업인의 날 기념식은 최초로 청와대에서 열렸다. 행사가 진행된 청와대 대정원은 조선시대 경복궁의 후원으로 임금이 직접 농사를 지었던 친경전과 8도 농사의 풍흉을 살피던 팔도배미가 있었던 곳이라 의미가 남달랐다. 무엇보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2003년) 이후 무려 17년 만에 대통령이 직접 농업인의 날 기념식에 참석했다.

코로나19로 인해 대규모 기념행사가 불가한 상황이라 참석자도 수상자 대표 5명과 농민단체장 등 200여 명으로 제한됐고, 기념식과 축하무대, 부대행사 등이 생중계되는 가운데 비교적 조용히 치러졌다. 꽹과리와 징, 장구소리와 농요로 흥겨워야 할 농민들의 잔칫날은 코로나19에 장소가 주는 무게감까지 더해져 차분하다 못해 적막했다. 기념식 처음과 끝을 알리는 취타악과 진행자의 멘트, 축하공연, 대통령의 연설, 그리고 홍보영상, 현장중계영상에서 흘러나오는 음성만이 기념식장에 울려 퍼졌다. 한 해 농사를 마치고 수확의 기쁨을 함께 나누며 내년 농사를 기약하는 농민들의 신명난 잔치여야 할 농업인의 날 행사장에서 농민들은 주인공이 아닌 들러리이자 벙어리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모두가 정성을 다해 농업을 살피면 그만큼 대한민국은 열매를 맺고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며 “우리의 미래가 농업에 달려있다는 각오로 농촌이 잘 사는 나라, 농민이 자부심을 갖는 나라를 국민과 함께 반드시 만들겠다”고 희망메시지를 전했다. 후보시절에도 문재인 대통령은 농업을 직접 챙기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하지만 대통령의 이러한 장밋빛 청사진이 실현 가능할 것이라고 믿는 농민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역대 대통령의 그러한 공약(空約)을 충분히 확인했기에 그렇다. 여전히 타부처 예산보다 못한 꼴찌 수준의 농업예산, 소득 불안정, 도농 소득격차의 심화, 지방소멸 위기, 고령화, 농업인력 부족, 이상기후에 따른 농업재해, 가축전염병 확산 등으로 우리 농업·농촌은 여전히 지속가능성을 위협받고 있다. 하늘도, 나라님도 우리 농업과 농촌을 외면하는 한 우리의 미래는 없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해도 농업·농촌의 공익적 기능이 주는 힐링과 건강한 먹거리를 대신할 수 없다.

우리 농업·농촌을 살리겠다는 말이 구호에만 그쳐서는 안 된다. 친경전과 팔도배미가 있었던 청와대에서 열린 최초의 농업인의 날 기념식이고, 17년 만에 대통령이 참석했다고 자랑만 할 일이 아니다. 그 동안 우리 농업이 도외시돼 왔음을 방증하는 자백일 뿐이다. ‘국민의 생명, 농업’이라는 올해 농업인의 날 슬로건이 실현되길 농민들은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게 코로나19시대, 신성한(?) 장소에서 열린 농업인의 날 기념식에 참석한 벙어리(?) 농민들의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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