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임영규 환경조성본부장

지난 10월 29일은 ‘지방자치의 날’이었다. 지방자치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높이고 지방자치의 우수한 정책을 공유하기 위해 선포한 법정기념일이다. 하지만 현재 농수산물유통 분야에서 벌어지고 있는 중앙정부 중심의 통제 시스템은 지방자치의 취지를 무색하게 하고 있어 안타깝기만 하다. 최근 서울시는 농수산물 도매시장(이하 ‘도매시장)의 개설자로서 유통환경 변화에 대응하여 농수산물 유통구조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농식품부는 행정입법(농수산물유통및가격안전에관한법률 시행규칙)을 통해 농수산물도매시장 운영에 관한 사실상 모든 주요한 업무규정에 대해 농식품부 장관의 승인을 받도록 하고 있어 유통개혁을 가로막고 있다.

「지방자치법」시행령에 따르면 도매시장의 개설 및 운영은 지방정부의 고유사무에 속한다. 그러나 중앙정부인 농식품부는 지방자치단체의 개혁 의지를 행정입법(시행규칙)이라는 수단으로 막아놓고 있다. 이미 법에는 도입이 가능한 시장도매인제가 정부의 업무규정 개정 불승인으로 기약 없이 도입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서 금년 6월 개정․시행된 일본의 도매시장법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전반적으로 중앙정부의 권한과 역할을 축소하고 시장 개설자인 지방정부에게 권한을 대폭 이양한 것이 큰 특징이다. 즉 정부 역할을 축소하는 대신 자유로운 경쟁을 통해 시장의 활력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일본이 이렇듯 방향을 급격히 선회한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유통환경의 변화 때문이다. 그간 도매시장은 중앙정부를 중심으로 기준가격 발견 및 수요처 분산 역할을 하는 주요한 유통 주체였다. 그러나 대형 유통 업체의 증가 및 고품질 소량 다품목 거래가 소비자에 의해 선호 되면서 청과 도매시장 경유율은 급격히 하락하였다. 이런 변화를 중앙정부가 일률적으로 대응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지방정부에게 권한을 이양하여 탄력적으로 대응하려는 의도일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유통환경 변화는 일본과 다를 게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더 빠르게 진행되는 듯하다. 1인 가구의 급격한 증가에 따른 소량 다품목 구매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최근 코로나19에 따른 온라인 거래의 급격한 성장은 괄목할 만하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중앙정부에서 과도하게 도매시장을 통제하고 있고, 30년 전의 독과점적 경매제를 지금도 주된 거래 방법으로 규정해놓고 있다. 따라서 지방 도매시장은 소매시장으로 전락하고 있고 가락시장마저도 거래량이 정체·감소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매년 농산물 가격 급등락의 폐해가 반복되고 있다. 과도한 유통비용에 대한 비판도 끊이지 않고 있다. 이 모두 빠른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고 수십 년간 독과점의 경매제를 고수하며 경쟁 체계를 도입하지 않은 결과다.

이러한 체계 하에서 도매시장법인의 과도한 수익 창출에 따른 부작용과 독과점 구조의 폐해는 심화하고 있다. 경쟁 체제 없이 도매시장법인의 재지정이 이뤄지고 있고, 가락시장 개장 이래 도매시장법인이 재지정에서 탈락한 사례도 없다. 2019년 대전광역시가 도매시장법인 공모제를 추진하였으나 농식품부의 불승인으로 무산된 바 있다. 이처럼 독과점적인 지위에서 거의 영속적으로 고수익을 올릴 수 있다 보니 도매시장법인이 사모펀드 같은 투기성 자본의 먹잇감이 되는 참담한 일도 발생하고 있다.

그럼 이런 빠른 유통환경 변화에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
일본처럼 지방정부에 권한을 대폭 이양하여 변화하는 유통구조에 선제적으로 대응하여야 한다. 지방정부는 도매시장법인의 독과점을 타파하고, 이미 법에서 허용하고 있는 경매제와 시장도매인제 간의 경쟁 체계를 마련하여야 한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다. 시시각각 변화는 유통환경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각 도매시장 실정에 맞게 경쟁적․창의적으로 운영을 할 수 있도록 지방정부에게 권한을 대폭 이양하고, 중앙정부는 배후에서 지원하는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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