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 - ‘시시콜콜한 조선의 편지들’의 저자 박영서 작가

가을이 깊어가면서 불현듯 고향의 부모와 멀리 가 있는 친구에 대한 그리움에 빠져들게 된다. 이럴 땐 가족사랑의 정을 듬뿍 담아낸 손편지가 그립다.
이에 본지는 한국효행청소년단과 함께 ‘가족사랑 손편지쓰기운동’을 펼치고 있기도 하다. 옛사람의 손편지를 소개하는 책 ‘시시콜콜한 조선의 편지들’을 펴낸 박영서 작가를 만나 손편지가 주는 애틋한 정 이야기를 들어본다.

“손편지는 추억이 되고
 추억은 다시 역사가 됩니다.
 세월이 흐르면 가문에 남을
 좋은 사료가 될 겁니다.”

손편지는 추억이고 역사가 됩니다
“손편지는 추억이 되고 추억은 다시 역사가 됩니다. 우리 윗세대인 옛사람들이 주고받은 손편지는 세월이 흘러 가치를 더해가면서 가문에 길이 남을 좋은 사료가 될 겁니다.
이에 저는 옛사람의 개인 문집, 가문의 문집, 무덤에서 발견된 편지를 간추려 ‘시시콜콜한 조선의 편지들’이란 제목의 책을 펴냈습니다.”
박영서 작가가 책을 펴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렇다면 박 작가가 꼽는 대표적인 손편지는 무엇이 있을까.

죄책과 회한 담긴 정약용의 편지
박 작가는 먼저 우리 역사에서 불세출의 천재였던 다산 정약용(1762~1836)이 유배지에서 작은 아들에게 보낸 편지글을 소개했다.

“형이 여기 와서 기쁘기는 한데 며칠 지내며 얘기를 해보니 아버지가 가르쳐준 경전의 이론을 우물쭈물하기만 하고 대답을 못하니 너무 슬펐다. 아버지 때문에 집안이 뒤집힌 탓이고 또 정신을 차리지 않고 얼빠진 채 지낸 탓이겠지... 하지만 이 지경이 되니 안타깝고 안타깝다. 너 역시 오죽 하겠니?”

자신의 유배와 폐족으로 자식의 출세 길을 막은 죄책감과 가까이에서 자식의 공부를 돌보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밴 이 편지를 보며 가슴 아린 연민이 느껴진다고 그는 말했다.

따스한 부정 담은 박지원의 편지
연암 박지원은 열하일기를 써낸 정조시대의 최고의 문장가였다. 박지원이 아들에게 보낸 편지글엔 이런 글이 담겨있다.

“내가 지난 번  보낸 쇠고기볶음 잘 받아 조석 반찬으로 먹고 있니? 맛이 있으면 있다고, 없다면 없다고 답장을 할 것이지 그냥 무시하는 거냐? 무심타 무심해. 나는 그게 육포나 장조림보다 나은 듯하더라. 고추장 또한 내가 손수 담근 거야. 맛이 좋은지 어쩐지 답을 주면 앞으로도 보내줄게 아버지가.”

박지원은 거대한 풍채에다 호방한 성격을 지녔음에도 손수 담근 고추장과 쇠고기볶음을 자식에게 보내는 따사한 부정을 보이고 있다. 의외로 어른으로 대접받기보다 자녀에 대한 내리사랑이 그지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편지다.
“옛사람들은 선대가 쌓은 가업과 학업이 날아갈까 노심초사했습니다. 그래서 가문의 책임을 진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자손들의 학업 독려에 관심이 컸습니다.”

손자공부 격려하는 할머니의 편지
은진 송씨 송진길 가문의 한글문집에 있는 할머니가 손자에게 보낸 편지도 소개했다.

“손자야, 네 나이가 적니? 혹시 글이 너를 싫어하디? 너의 부모 병 때문에 너의 공부를 돌보주질 못해 걱정이다. 글공부가 안 된다고 하지만 네가 만병통치약을 만들어 부모님 병을 고칠 수가 없다면 그저 글공부로 성공하는 게 효도란다”

할머니가 글을 마치 사람처럼 보고 ‘글이 너를 싫어하니?’라며 손자에게 공부를 강조한 것이 매우 인상적이고 재미있다.
1989년 4월 곽주의 아내 하씨의 관에서 172건의 편지가 발견됐는데, 이를 학계에선 ‘현풍곽씨 언간(言簡)’이라고 부른다고 박 작가는 설명했다. 이 언간에는 1602년부터 1652년까지 50년간 곽주가 아내 하씨에게 보낸 편지를 비롯해 가족 간 오고간 편지가 있다.
이들 편지를 통해 조선시대 가족의 삶이 마치 그림처럼 소상히 그려져 있다며, 박 작가는 곽주가 아내 하 씨에게 보낸 편지글 하나를 소개했다.

“곡식을 좀 꿔달라고 관아에 청원서를 내며 통사정을 해도 쥐뿔도 안 주니 돌아가신 아버지 제삿밥을 살아 계실 때처럼 보리밥으로 올려요. 누가 젯상에 쌀밥을 올려야 한다고 해도 절대 넘어가선 안 돼, 알았지? 절대 안 돼!”

곽주(1569~1617)는 임진왜란 시대를 산 인물이다. 농민들이 전쟁에 끌려나간 데다가 가뭄마저 들어 쌀값이 폭등했던 당시의 피폐했던 사회모습이 잘 드러난 편지다.

부부의 정이 담긴 편지들
선조 때 이조참판을 지낸 유희춘은 서울에서 관직생활을 하며 외간여자와 가까이 하지 않는다고 자랑하는 편지를 아내 강덕봉에게 보냈다. 이 편지를 받은 아내가 남편에게 보낸 답장이다.

“고작 3~4개월 홀아비 노릇을 하며 고결한 척 생색을 낸다고 내가 ‘아이고 잘 하셨습니다’라고 할 줄 알았어요? 당신이 행실을 곧게 하면 자연스레 소문이 날 텐데. 굳이 편지까지 쓰는 건 뭐래? 겉으로 성인군자처럼 행세하며 남이 알아주길 바라는 생각을 가져선 안돼요. 홀아비생활 쉬운 일이 아니란 건 않지만 생색 내지 말고 나랏일 열심히 하세요.”

아내가 알아주기보다 공직자로서 남이 알아주는 곧고 바른 행실을 해야 된다는 아내의 날카로운 조언이다. 옛 여인의 남편사랑과 슬기로운 지혜를 엿보게 되는 글이다.
또 과거길 찾아가는 남편 김진원에게 보낸 아내 신씨의 편지엔 애틋한 정이 담겨있다.

“여보, 천리길 어떻게 찾아가는지 걱정되네. 잘 때도 먹을 때도 당신 걱정뿐이야. 잘 지내고 있지? 이곳은 모두 별일 없이 잘 지내. 여행경비 부족해서 고생하지? 미안해. 다음 인편엔 당신 입을 옷 마련해 보낼게.”

박 작가는 이 밖에도 좋은 편지가 많지만 다 소개하지 못하는 게 아쉽다며 “옛날과 같이 함께 살기보다 흩어져 사는 지금, 가족 간 사랑과 정을 확인하고 따뜻하게 살려면 손편지를  주고받아야 합니다. 외로이 고향을 지키는 부모에게 자녀들은 손편지를 자주 보내야 합니다. 노인공경과 부모에 대한 효도는 인류공통의 기본 인륜 가치이며 덕목입니다”라며 농촌여성신문사가 추진 중인 ’가족사랑 손편지쓰기운동‘을 적극 응원했다.
그는 “독자 여러분, 손편지 쓰기에 힘써주기 바랍니다.”라고 재차 강조했다.

저작권자 © 농촌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