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광희 칼럼 - 누리백경(百景)(159)

# 계영배는 고대 중국에서 유래한 술잔 이름이다. 인간들의 분에 넘치는 과도한 욕심을 경계하기 위해 비밀리에 만들어 하늘에 제사 지낼 때 썼던 제례용 의기(儀器)였다. 그와 용도가 유사한 술독도 있었다.

하루는 공자가 제자들과 제나라 환공( ? ~기원전 643)의 사당을 찾았다. 이때 제 환공이 살아생전에 ‘늘 곁에 두고 보면서 스스로의 과욕을 경계했다’던 술독을 봤다. ‘유좌지기(有坐之器)’라 불린 술항아리였다. 갸우뚱 기울어지기도 하고, 밑바닥엔 구멍이 나 있었다. 물을 부어도 처음엔 새지 않고 갸우뚱거리다가 독의 7부(70%)이상 물이 차자 밑구멍으로 쏴- 쏟아져 버렸다.
제자들이 물었다.

“스승님, 어떻게 하면 가득 차는 물을 덜어낼 수 있습니까?”
“아무리 총명하다 하더라도 우둔함을 지키고, 공훈이 천하를 덮을지라도 겸양을 잃지 않아야 하며, 아무리 용맹스러워도, 천하의 부자라 해도 겸손·검약해야 넘치는 물을 덜어낼 수 있느니라.”

#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조 순조 때, 조선 최고의 부자였던 평안도 의주출신 거상(巨商) 임상옥(林尙沃, 1779~1855)이 늘 곁에 뒀었다던 계영배 얘기가 전해져 온다.
임상옥은 중인계급인 역관(통·번역관) 집에서 태어나 나이 어린 18살 때부터 장사를 배워 중국을 대상으로 한 인삼, 특히 홍삼무역으로 막대한 부(富)를 일궜다.

그는 평소 ‘상즉인/인즉상(商即人/人即商)’ 즉, ‘장사는 이익보다 사람을 남기는 것이고, 사람은 곧 장사를 통해 얻는 최대의 자산’이라며, 장사에서 얻는 것은 ‘사람’이라는 지론을 가지고, 이(利) 보다는 의(義)를 좇은 큰 장사꾼이었다.

# 그런 그가 회갑연 때 받은 선물의 하나가 계영배였다. 이 계영배에는, ‘계영기원/여이동사’(戒盈祈願/與爾同死) -가득 채워 마시지 말기를 바라며 / 너와 함께 죽기를 원한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잔의 70% 이상을 채우면 술이 모두 밑으로 난 구멍으로 흘러버려 ‘넘침을 경계하는 잔’ 즉 과욕을 삼가라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물이었던 것이다.

과학적으로는, 술잔 안의 연통형 관(구멍) 안과 밖의 대기압력 차이를 이용한 ‘사이펀(Siphon)원리’로, 우리가 쓰는 화장실의 수세식 변기 물채움 작동원리와 같다. 우리의 국어사전에는 ‘계영배=절주배(節酒杯)’로 표기돼 있기도 하다.

아무튼 임상옥은 “나를 낳은 건 부모지만, 지금의 나를 이루게 한 건 하나의 잔이다”라면서 계영배를 늘 곁에 두고 마음을 다잡곤 했다 한다.
그의 문집 <가포집(稼圃集)>에 실려있는 죽기 직전에 썼다는 만시(輓詩) 한 편이 눈길을 잡는다. 생 날것 같은 요즘 세상, 제 분수 모르고 날뛰는 인사들은 그 얼마나 많은지… 가슴에 담을 만하다.

‘재상평여수/인중직사형(財上平如水/人中直似衡)’-‘재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물처럼 순리대로 취하고, 사람은 좌우가 평등한 저울처럼 바르게 대해야 한다’
지금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회에 가면, 그 계영배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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