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야 예술농부 - 전남 해남 농부화가 김순복 작가

낮에는 농부, 밤에는 화가인 농촌여성이 있다. 전남 해남에서 유기농 농사를 짓는 김순복 작가다. 어릴 때부터 그림에 솜씨가 있고 좋아했지만 ‘먹고 사느라’ 자신의 꿈을 가슴 한 편에 미뤄던 김 씨는 다복한 5남매를 모두 키워낸 후 다시 색연필을 들었다.

평생 간직한 화가의 꿈, 딸들 응원으로 시작
농촌일상 자체가 그림과 시에 영감

▲ 전남 해남에서 유기농 농사를 짓는 김순복 작가는 낮에는 농사일을 하고 밤에는 그림을 그리거나 시를 쓰는 등 작품활동을 한다.

다시 찾은 꿈
“농촌에는 그릴 것 천지에요. 아름다운 게 넘쳐나죠.”
김 씨의 말이다. 다채로운 색깔로 정겨운 농촌풍경을 그리는 김 씨의 그림은 보고 있으면 마음이 포근해지고 향수를 자극한다. 그림이 담고 있는 시선은 작가를 만나보지 않아도 그가 얼마나 따뜻한 사람인지 알 수 있다.

충북 청주가 고향인 그녀는 결혼과 동시에 전남 해남으로 내려왔다. 어릴 적부터 그림에 소질이 있었지만 집안 사정으로 미술공부를 제대로 할 수 없던 김 작가는 결혼 후에도 5남매를 키우고 시집살이 하느라 그림을 그리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림은 무슨…, 평생 농사짓고 애들 키우느라 그럴 시간이 어디 있나요. 그래도 농촌에서 일어나는 일상, 풍경들을 보며 언젠가는 그림을 그릴 것이라며 담아 두곤 했어요.”

그렇게 자신의 꿈을 희생하며 자식들을 키웠지만 다시 꿈을 찾아준 것 역시 자식들이었다. 김 씨의 이러한 마음을 알고 있던 딸들이 이제 온전히 자신을 위해 시간을 쓰라며 76색 수채화 색연필과 스케치북을 선물한 것이다.
그렇게 조금씩 그림을 다시 시작했다. 평생 봐 온 농촌풍경이었다.

▲ 시화집 ‘농촌 어머니의 마음’

생협 소식지 통해 세상 밖으로…
김 씨의 그림이 대외적으로 알려진 것은 생활협동조합 ‘한살림’의 소식지를 통해서다. 김 씨는 유기농 농사를 짓는 한살림 생산농가로, 함께 활동하는 조합원이 김 씨의 그림을 보고 이를 본사에 전해 매월 조합의 소식지에 게재하게 됐다.
이후 그의 그림이 알려지면서 행촌문화재단의 권유로 해남에서 첫 전시회를 열었다. 김 작가가 그린 농촌의 정겹고 소박한 일상이 인기를 끌자 전남지역과 서울시청 등에서도 계속해서 전시를 이어나갔다.

올해 8~9월에는 전남 해남 땅끝순례문학관에서 ‘속담으로 읽는 해남의 농촌 풍경’ 기획전시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소설을 배워보고 싶어 문학관에서 운영하는 소설반 프로그램에 수강생으로 참여하고 있었어요. 관계자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최근에 속담을 주제로 그림을 그린다고 했더니 전시하는게 어떻냐고 해서 열게 됐습니다.”

▲ ‘마늘밭 풀 매는 여인들’

가슴속 쌓인 응어리 풀다보니
2015년부터 그림을 시작하면서 거의 하루 한 장 꼴로 다작을 하는 김 작가에게 그림은 응어리를 푸는 수단이다. 고향을 멀리 떠나 부모님이 반대하는 결혼을 하고 시집살이를 겪으면서 가슴 속에 응어리가 쌓이고 쌓인 그녀에게 그것을 풀어낼 무엇인가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림 이전에는 시가 있었다.

“햇빛 아래서 벌레랑 싸워가며 일하지만 머릿속에서는 시상을 떠올리면서 일했어요. 그럴수록 힘이 덜 들고 무언가 얻는다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그게 내가 농사일을 하며 농촌여성으로 살아온 방식이에요.”
그렇게 쓰인 시가 600여 편이다.

첫 전시회를 마친 김 작가에게 화집을 권유한 출판사는 우연히 김 작가의 시를 보고 감탄하며 시화집을 제안했고, 2018년에 그녀가 써 온 시와 그림이 함께 담긴 시화집 ‘농촌어머니의 마음’이 출간됐다.
김순복 작가는 지금도 전남 해남에서 트랙터를 몰며 건강한 먹거리를 생산하고 끊임없이 작품활동 중이다. 낮에는 농사일, 밤에는 작품활동을 하다보면 지치지 않느냐는 기자의 우문에 그녀는 “그게 내 삶의 힘이여”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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