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 - 호박 육종가 엄영현 박사

호박은 열매, 줄기, 잎, 씨앗은 물론 꼭지를 차로 달여 마시고 꽃까지 먹는 작물이다. 호박을 재료로 전, 죽, 떡, 엿, 김치와 장아찌 등 다양한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 간식인 양갱과 케이크를 만드는데도 쓴다. 특히 노화 방지와 암, 뇌졸중, 두통 등을 완화하고 예방해주는 건강식품으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농촌진흥청 원예시험장(현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재직 중에 고추와 애호박 등을 육종하다가 2004년 퇴직해 개인육종가로서 애호박 품종을 개발하고 있는 엄영현 박사를 만나 국내 호박산업 현황과 애호박 육종 상황을 알아봤다.

착과제 없이도 열매 맺는
획기적인 애호박 품종 개발
호박산업 전환기 맞을 것

농진청 퇴직 후 민간육종회사로...
“서울대 농대를 졸업하고 1972년 농촌진흥청 원예시험장에서 연구사로 공직을 시작해 2004년 과장으로 퇴직하기까지 고추와 호박 중심의 품종개량 연구를 했습니다. 1981년에는 국내에서 가장 매운 ‘희농1호’ 고추 육종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지요. 당시에는 품종보호출원 제도가 없어 제가 개발한 ‘희농1호’가 복제돼 종묘회사로 넘어가 ‘청양고추’란 이름으로 둔갑돼 종자관리원에 ‘희농1호’와 ‘청양고추’간 차이를 규명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 결과, 같은 품종임이 밝혀졌죠.”
그는 농촌진흥청 퇴직 후 조그마한 종묘회사로부터 단호박 육종을 제안 받았고, 애호박도 같이 육종한다는 조건으로 8년을 근무했다. 그 후 엄 박사는 애호박 육종에 주력하고자 종묘회사를 그만두고 경기도 성남에 애호박 육종포장을 만들어 연구를 해오고 있다.

연중 생산되는 애호박은 겨울엔 비닐하우스에서 보온 또는 가온재배를 한다. 남부지방에선 속성과 반촉성 재배를 통해 생산된다. 중부지방에선 비닐하우스에서 보온으로 초봄에 재배를 시작해 봄재배를 하고 여름에는 비가림 재배를 한다. 강원지역은 비닐하우스에서 여름재배로 그물망을 치는 그물망 재배를 한다.
애호박은 식당 중심의 수요탄력성에 굉장히 예민해 여름에 많이 생산되면 가격이 하락하고 생산량이 적으면 가격이 폭등하는 작물이다. 올해는 예년에 볼 수 없었던 긴 장마로 인해 채소 중 애호박 가격이 최대로 폭등했다.

“박과작물인 호박은 수박에 이어 네 번째로 재배면적이 넓습니다. 애호박은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노지재배를 하다가 1980년대 중반 이후에 시설재배가 도입되면서 요즘은 95~98%가 비닐하우스에서 전업농들에 의해 생산되고 있습니다. 호박은 노지와 재배면적 비율이 2:1 정도인데, 생산량은 각각 15만 톤씩, 연간 30만 톤의 호박이 생산됩니다.
호박 재배농가 중 경기도 평택 진위면 애호박작목반의 한 농가는 액비를 이용한 양액재배를 하고 있는데, 국내 최대인 16,500㎡(5천 평)의 면적에서 애호박을 재배하고 있기도 합니다.”

저절로 착과돼 노동력 줄이는
애호박 개발 목표로 연구 착수

그에게 애호박 육종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저는 한국의 애호박이 호박넝쿨이 긴데다가 착과제 살포로 다른 작물재배와 비교해 노동력 투하가 높은 문제를 개선하고자 애호박에 착과제를 처리하지 않고 저절로 착과되는 품종 개발에 목표를 두고 연구를 했습니다.

그간 농촌진흥청 원예시험장에선 쥬키니호박 초형에 애호박이 착과되는 품종을 육성하는데 심혈을 기울였지만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이에 저는 퇴직 후에 원예시험장이 해내지 못한 것을 성공시키기 위해 연구에 매진했습니다. 그러나 호박이 작고 종자 생산량이 턱없이 적었어요. 종자 생산이 저조하다보니 보급이 어려울 수밖에 없었죠. 종자가 많고 종자가격이 저렴해야 많이 팔릴 텐데, 수량도 적고 호박 크기도 작아 애호박 개량 연구를 접었습니다.”

육종 연구에 앞서 엄 박사는 평택 진위의 애호박 전업농가를 찾아가 애호박 육종을 어떤 방향으로 할 것인가를 심도 있게 협의했다.
“그 전업농가의 남편은 9900㎡(3천 평), 부인은 6600㎡(2천 평)에서 농사를 짓는데 벌에 의한 호박꽃 수정이 저조하고 외국인근로자에게 수정작업을 시켜도 일이 시원치 않아서 부부는 새벽부터 수정작업을 하느라 아침밥을 먹을 새가 없다고 하더군요. 이에 농민은 오이와 바나나처럼 수정작업을 하지 않고 저절로 착과되는 호박 품종을 조속히 개발해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때 제 나이가 70이 훨씬 넘어서 ‘내 평생에 해낼 수 있을까요’라고 했더니 농민은 ‘박사님 밑에 있는 사람이 이어받아 할 수 있는 연구기반이라도 만들어놓아야 합니다’라고 간청했습니다.”

하지만 엄 박사가 막상 연구를 시작하려니 국내에는 유전자원이 없었다. 그는 눈을 외국으로 돌렸다.
엄 박사는 미국 코넬대학 리차드 W. 로빈슨 교수와의 40년 교분을 앞세워 1998년 코넬대학이 육종한 쥬키니계 일반품종인 ‘히드테이크’ 종자를 보내달라고 했는데, 로빈스 교수는 그 호박 종자가 품종보호를 받는 품종이라 함부로 못 준다고 했다. 그래서 통사정을 했더니 자기가 퇴직해 종자보관소에 갈 수가 없다며 집에 보관하고 있던 종자 16개를 보내왔다.

하지만 이 종자를 파종했더니 발아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또 다시 간청을 하니 미국대학 저장고에 있는 씨앗 16개를 보내왔다. 막상 파종했더니 오만 잡다한 호박이 열려 더 이상 부탁이 어렵다고 생각한 엄 박사는 열매를 맺은 호박 중에서 주먹크기의 호박과 동양종 호박과 같이 약간 길쭉한 것을 우리 애호박에 접목해 나온 모종 5포기를 평택 진위의 농민에게 보내 키워보라고 했다. 그 농민은 모양만 개량하면 가능성이 있다는 답을 보내왔다. 마침내 애호박 신품종 육성에 대한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인도네시아에서 육종기간 1/3 줄여
애호박 신품종 개발…내년께 선보일 것

5년 전 엄 박사는 이 호박을 갖고 인도네시아로 건너갔다. 그곳에서는 호박재배를 1년에 세 번 할 수 있어 육종에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서였다. 그는 인도네시아 육종회사에 근무하고 있는 제자를 어르고 달래 국내에서는 9년 걸릴 육종기간을 3년으로 줄여 재작년에 씨를 받아냈다.
엄 박사는 이 종자로 호박 모양을 개량했고 지난해 국립종자원에 품종보호 출원을 했다. 이 호박은 올해 종자원에서 1년차 실험을 하고 내년 연말이면 신품종 승인을 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번에 개발한 애호박은 현재 재배되는 애호박과 모양이 같은데다가 오이와 바나나처럼 저절로 착과되는 혁신적인 품종이어서 국내 호박산업에 새 전환기를 맞게 될 것입니다.”
엄 박사는 앞으로 암꽃이 피는 품종을 개발해 열매를 솎는 노동력을 줄이고 상품성이 높은 다수확 호박 품종을 개발하는데 힘을 쏟겠다는 포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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