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연재 - FTA시대 우리농업, 여성의 힘으로 지킨다

FTA(free trade agreement, 자유무역협정)시대엔 희망과 불안이 동시에 존재한다. 무역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경제여건상 전자 ․ 자동차 ․ 반도체 산업은 FTA에 따른 수출 증대 등이 기회요인으로 희망이 되겠지만, 산업기반이 약하고 고령화된 한국 농업은 농산물 수입 개방화에 대한 불안감을 떨쳐내기 힘들어 FTA의 희생양이란 소리를 듣는다. 하지만 국내 농업도 세계화 개방화의 거스를 수 없는 환경변화 속에서 국내 농식품의 경쟁력을 향상시키고, 자구책을 강구해야 하는 큰 과제와 패러다임의 변화가 요구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에 농촌여성신문은 농림축산식품부와 공동으로 FTA를 위기가 아닌 기회로 생각하고 FTA를 활용해 국내산 농식품과 가공품으로 해외시장 개척에 도전하고 성과를 이뤄낸 선도 여성농업인들, 또 FTA에 대응해 국내산 농산물 소비촉진에 힘쓰며 우리 농식품의 경쟁력 향상에 앞장서는 여성농업인들의 활약을 10회 시리즈로 소개해 여성농업인들이 FTA시대를 슬기롭고 현명하게 대처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 수출배 선별작업이 이뤄지는 안성마춤농산물유통센터는 FTA 지원사업으로 2006년에 만들어졌다. 안성원예농협은 1988년도부터 안성배를 미국에 수출하고 있으며 올해는 신품종 신화배를 처음으로 수출했다.

⑤ 경기 안성 배 염철순씨

국내소비 부진, 농가들 수출에서 길 찾아
한·아세안 FTA 발효 후 수출 확대

이상기후로 인한 냉해와 매년 더 강해져 찾아오는 것 같은 태풍, 몇 년간 계속되는 소비부진으로 배 농가의 시름이 깊다. 실제로 배 재배면적, 생산량이 모두 줄면서 최근 배 1인당 연간 소비량은 4kg 내외 수준까지 감소했고 실질가격은 가락시장 기준 kg당 2013원에서 1959원으로 3%가량 하락하는 등 약세가 지속되고 있다.

▲ 수출용 배. Korean Pears

상황이 이렇다 보니 많은 배 농가들이 타개책으로 수출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신선배 수출 비중은 2006년 배 생산량의 6%에서 2018년 13%까지 확대되고 있으며 주요 수출국가는 미국과 대만이다.
1980년대 후반부터 미국시장에 수출중인 한국산 배는 꾸준한 성장세를 유지 중이다. 주로 추석 전후에 교민을 대상으로 조생종인 ‘원황’이 수출되며, 10월 이후에는 ‘신고’배를 중심으로 설까지 지속적으로 수출한다. H-마트와 같은 한인, 중국계 마트 위주로 유통되고 있으며 최근에는 아시아와 히스패닉 마켓 중심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고도 한다.

이처럼 배는 대미 수출액이 가장 많은 농산물이다. 한·미FTA 협상에서 미국이 육류를 제외하고 한국산 농산물의 상당부분에 대해 관세를 철폐했듯이 배 또한 0.3¢/kg의 관세가 즉시 철폐되면서 일본산과 중국산에 비해 가격 경쟁력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맛과 품질이 떨어졌던 중국산 배가 한국산 품종재배로 품질 향상을 꾀해 수출이 늘어 한국산 배를 위협하고 있으며, 비아시아 소비자들에게 시식법이 다소 생소하다는 점과 교민 위주로 형성된 시장은 여전히 뛰어넘어야 할 과제다.

최근에는 베트남을 중심으로 한 동남아시아와 아랍에미리트 등 중동국가까지 시장을 넓혀가며 배 수출선이 다변화되고 있기도 하다.
특히 대 아세안 배 수출량은 한·아세안 FTA 발효 후 급증했는데 FTA 발효 전(2002~2006년)과 발효 후(2012~2016년)를 비교했을 때 수출량은 각각 990톤, 1691톤으로 평년대비 70.6%가 증가했다.
또한 FTA 이행후기(2012~2016년) 아세안 과일·채소 수출액은 FTA 이행전기(2007~2011년)와 비교했을때 큰 폭으로 증가했는데 배의 경우, 수출액이 이행전기보다 142% 증가해 FTA 체결 이후 점점 수출 시장이 더욱 확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시아에서는 대만, 베트남, 홍콩 순으로 한국 산 배를 가장 많이 수입하고 있으며, 베트남의 경우 지속적인 경제 성장에 따른 중산층 확대, 한국산 선호도 등 국가 이미지가 수출을 증대하고 있고, 2016년 25% 기준 관세율이 철폐돼 20%의 수출가격 하락효과가 나타나기도 했다.
대만은 아시아에서 한국산 배를 가장 많이 수입하는 국가로 2010년부터 쭉 9000여 톤의 한국 배를 수입해 오다 잔류농약 문제로 2018년 물량이 급격하게 감소했으나 2019년에 다시 회복하고, 2018년 수입량의 75%인 9286톤의 한국산 배를 수입했다.

 

수출 딛고 일어난 과수원집 딸

▲ 염철순씨는 배 수출을 하면서 영어공부도 함께 시작했다. 언젠가 현지에서 소비자와 소통할 날을 위해서다. 이처럼 염 씨는 수출을 통해 안정적 판로 확보뿐 아니라 자신의 시야가 더 넓어지는 것 같다고 말한다.

경기도 안성에서 2대째 배 과수원을 운영하는 염철순씨는 4년 전부터 생산하는 배 전량을 미국으로 수출하고 있다. 아버지 때부터 고향에서 농사를 지어온 안성 토박이 염 씨가 불현듯 미국 시장으로 눈길을 돌린 이유는 무엇일까?
염 씨는 “국내에서는 내 노력이 아무 의미가 없어보였다”고 말했다.
풍년이라는 이유로 원물의 가격이 폭락할 때, 가격 책정이 배의 품질보다는 모양이나 색깔 위주로 이루어질 때, 이러한 이유로 어떻게든 트집을 잡아 수확물의 가격을 떨어트릴 때 등의 이유로 수확한 배들이 제값을 못받게 되면 자신의 노력이 무산되는 느낌이라는 것이다.

고정된 판로가 없다는 점 또한 염 씨가 수출을 결심한 이유 중 하나다. 염 씨는 고정 거래처를 우선으로 하는 관행을 지적하며 “원물을 유통할 때, 당도나 품질에 따른 기준이 우선이 아니라 우선순위 거래처 위주로 하다보니 단골 어디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한 나는 내수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염 씨는 이전부터 안성원예농협에서 수출 제안을 받아 온 상황이었다. 그렇게 수출을 결심했지만 결심만 한다고 해서 쉽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특히나 안성 배는 대미 위주로 수출이 이뤄지고 있어 농가가 갖추고 있어야 할 조건이 까다로웠다.

먼저 수출 신청을 하면 농가시찰이 이뤄진다. 타 과실수가 있는지, 담장 분리는 잘 돼있는지, 농약과 배 봉지는 지정된 것을 쓰고 있는지, 농지가 안성시 내에 있는지 등의 조건을 통과해야 한다.
염 씨는 이를 위해 안성원예농협에서 이뤄지는 수출 관련 교육을 받았다. 검역 교육부터 수출에 필요한 농약교육, 품질을 높이기 위한 병해충 예방교육, 수출을 하기 위해 농가가 갖춰야할 조건 등 부단히 노력해 온 염 씨는 수출농가로 인정받았고 최근에는 글로벌 GAP 인증을 신청하는 등 끊임없이 도전 중이다.

수출에 안성맞춤, 안성 배
염 씨가 수확한 배는 안성원예농협 유통센터로 보내진다. 1988년도부터 안성배를 미국에 수출중인 안성원예농협은 현재 동남아시아까지 그 범위를 확장해 지난해 기준 약 1200여 톤의 배를 수출 중이며, 올해는 신고배와 화산배를 교배해 추석 선물용으로 각광받고 있는 ‘신화배’를 미국에 첫 수출하는 기염을 낳기도 했다.
FTA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2006년에 지어진 ‘안성마춤농산물유통센터’에서는 배 관련 연합회 등에서 제시하고 있는 기준에 따라 배 선별작업이 이뤄진다.

배 수출 선별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병해충이 없어야 한다는 점이다.
안성원예농협 경제사업소 임명관 과장은 “크기와 색 등을 보기도 하지만 수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인은 병해충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염 씨 또한 “수출하게 되면서 다른 외부요인 없이 배의 품질만으로 가격이 책정되는 점이 가장 만족스럽다”면서 “내수위주로 출하했을 때에는 품질과 상관없이 가격등락의 폭이 크고 변동이 심해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수출은 그 차이가 크지 않다”고 설명했다.

농업·수출 둘 다 변수 많지만…
그러나 고충은 늘 있다. 바로 농약이다. 염 씨는 “지정받은 농약만 사용해야 하는데다 그 강도가 너무 약하고 농약이 듣지를 않거나 병해충이 다시 생기기도 해 고민이 깊다”고 토로했다. 뿐만 아니라 머나먼 타국으로 수출을 하다보니 상황에 따라 변수가 많다는 점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이유다.
올해 같은 경우 안성원예농협은 농가가 신청한 수출물량의 50% 가량만 수출하고 있다. 봄에 있었던 냉해로 수확량이 줄고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바이어 방문이 늦어지면서 수출일정이 미뤄진 까닭이다.

염 씨는 “수출도 농업과 마찬가지로 어찌할 수 없는 변수가 많다는 것을 몸소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염 씨는 계속 도전한다. 미국 배 수출을 시작하면서 영어 회화공부도 함께 시작했다. 언젠가 자신의 농산물이 팔리고 있는 현지를 직접 가게 될 때를 위해서다. 염 씨는 “수출을 시작하면서 시야가 한 층 트인 것 같다”면서 “단순히 배 농사만 짓는 것이 아니라 교육 등을 통해 농업관련 지식을 익히고 현지 방문해 소통하겠다는 꿈이 생겼다”고 말했다.

 

■  안성 배 수출 비결은…
    안성원예농협 홍상의 조합장

국가대표 ‘안성배’ 자부심 커

안성배는 단단하다. 배를 미국으로 수출하기 위해서는 15~20일이라는 시간동안 저장이 가능해야 하는데, 단단한 정도가 높다보니 잘 무르지 않아 저장성이 아주 좋다고 할 수 있다.
뿐만아니라 아이러니하게도 기후가 점점 따뜻해지면서 당도가 올라가 단단하면서도 당도 높은 품질 좋은 배를 생산 중이다. 특히 올해는 실온에서 30일 정도 보관할 수 있을 정도로 저장력이 우수한 신품종 ‘신화배’를 미국에 첫 수출하기도 했다.

안성배의 이러한 우수성은 배 농가들에 대한 끊임없는 지원에서 나온다. 한·미 FTA, 한·칠FTA 체결 후에 농가 지원차원으로 저장창고 지원, 관수시설, 태풍시설, 방풍시설, 조류퇴치기를 지원했으며, 올해에는 심한 냉해로 배 수정이 예년보다 어려워지자 인공수분 기계를 50% 보조를 해 구입하도록 했다.

내년에는 안성 공도읍에 유통시설이 들어선다. 8580㎡(2600여 평) 부지에 51억 원 규모로 배와 포도 선별, 저온저장고 등의 시설이 들어섬으로써 안성과수 수출을 위해 더욱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아낌없는 지원들로 인해 염철순씨와 같은 수출 여성농업인이 발굴됐지 않나 싶다. 염철순 씨는 항상 수출관련 교육이 있으면 빠지지 않고 참석해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며 농사에 열정적인 젊은 여성농업인으로, 안성원예농협 대의원을 맡고 있으며 수출의 필요성, 농가 변화의 필요성에 대해 발언하기도 하는 등 선도적인 모습을 보인다. 다른 농가들 또한 우리가 생산하는 배가 전 세계에서 한국을 대표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품질 좋은 배 생산을 위해 힘써주길 부탁한다.

(농림축산식품부·농촌여성신문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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