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수첩

“뭘 이런 걸 다 찍는데유~ 자전거도 늙었구 사람도 늙었구먼...”말은 그렇게 해도 취재차 만난 충남 부여의 황호정 할아버지는 마을입구에서부터 나를 푸근하게 맞아줬다. 50년 된 낡은 자전거를 버릴 
법도 하건만 정이 들어 버릴 수가 없었다며 ‘닦고 조이고 기름치며’ 여태 쓰고 있는 그는 농사가 힘에 부쳐 얼마 전 논을 팔았는데 지금도 그 앞을 지날 때는 마음이 아파 애둘러 멀리 돌아서 다닐 만큼 매사에 정이 깊다. 
한 번 쓰고 바로 버리는 일회용품과 패스트패션으로 가벼움만을 추구하는 요즘, 진득하게 정을 주고 무던하게 끝까지 바라보는 그의 삶을 대하는 사고방식이 낯설지만 존경스러웠다. 
쉽게 사고 쉽게 버리는 현대의 소비생활은 많은 쓰레기를 양산해 환경을 파괴시키는 문제도 있지만 은연중에 우리의 사고방식도 너무나 가볍게 만든다. 오히려 생각이 많거나 사려 깊은 사람은 ‘진지충’이라는 조롱의 신조어로 놀림을 받는 현실이다. 무던함과 꾸준함의 미덕이 지금처럼 과소평가 됐던 적이 있었던가.
54년간 ‘정 좋은 부부’로 오늘도 허리 아픈 아내를 위해 페달을 밟는 황 할아버지 부부의 사랑은 젊은이들의 현란한 말솜씨나 이벤트처럼 화려하지 않다. 애써 사랑이라고 표현하기도 겸연쩍다. 그렇지만 반백년을 함께 서로를 꾸준하게 바라보는 눈길은 분명 무던한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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