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봅시다 -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장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장은 1991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성폭력상담소를 운영하고 여성폭력방지 관련 법제정 운동, 피해자 중심 지원활동에 앞장서 성평등 국가체계 확립에 공헌한 공로로 지난 9월 ‘25주년 양성평등 주간 기념식’에서 국민훈장 목련장을 수상했다.

▲ 이미경 소장은 지난 30여 년간 법제도 개선과 새로운 성문화를 만들어가는 반성폭력운동의 현장에서 치열한 삶을 보냈다.

- 먼저 수상을 축하한다.
반성폭력 운동은 다 함께 한 활동인데, 개인이 대표로 상을 받는 것에 대한 죄송함이 있지만 이 상을 주는 의미를 가슴에 잘 새기겠다. 무엇보다 우리사회의 맥박 역할을 하는 NGO 활동가로서 태산과 같은 자긍심을 갖고 내년 1월 퇴임 이후에도 상담소 상근활동가가 아니더라도 다양한 형태로 이 운동에 함께 하라는 의미로 받아 들이고 싶다.

- 30여 년의 세월이다. 긴 시간 꾸준히 이 길 위에 서있게 한 원동력은 무엇인가?
처음 이 운동을 시작할 때 길면 3년 정도를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활동을 시작하니 할 일들이 정말 많았다. 1991년에 21년 전 강간범을 살해한 사건이 있었고, 그 이듬해엔 13년간 의붓딸을 강간한 아버지를 남자친구와 살해한 사건, 그 이듬해인 1993년에는 서울대 교수의 조교 성희롱 사건, 이어 2018년 #미투운동, 올해만 해도 오거돈 부산시장 성폭력 사건, 박원순 서울시장 성폭력 사건 등등... 한국성폭력상담소 한 곳에서만도 지금까지 8만7000건의 상담을 받고 있다. 많은 분들이 이처럼 마음 무거운 사건들을 지원하다보면 힘들지 않느냐고 걱정하는데 오히려 현장에서 피해자분들의 아주 특별한 용기와 힘, 지혜를 보면서 많이 배우고 성장한다. 개인적으로 내 삶의 한 가운데를 반성폭력운동가로 살 수 있었음에 감사하고 있다.

- 제일 기억에 남는 순간을 꼽는다면 ?
1994년 성폭력특별법 제정의 순간을 잊을 수 없는데 법의 통과 순간보다 그 법을 제정하기 위해 3년이 넘는 동안 법조인과 학자 등 전문가들과 활동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법안을 마련해 각 당과 국회의원들을 설득해나갔던 시간들이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2004년 밀양집단성폭력사건에서 “네가 밀양물 흐려놓았다”라고 오히려 피해자를 비난하는 발언을 비롯해 9가지나 되는 경찰의 2차 피해에 대해 국가상대 손해배상 소송을 해 처음으로 성폭력 2차 피해에 대한 국가책임을 인정한 사건도 의미있었다.

- 안타까운 순간도 많았을 듯 싶다.
너무 많다. 27살 나이차이 나는 연예기획사 대표가 중학생을 성폭력해 임신, 출산에 이르게 한 사건이 2011년에 발생해 2017년에 대법원 판결이 났는데 최종적으로 무죄를 선고했다. 이 사건 대법원 최종판결이 있던 날 피해자 어머니가 전해주신 말씀이 아직도 가슴에 먹먹하게 남아있는데 “제 딸은 이 재판에 대해 아무 기대가 없어요”라는 말이다. 피해자가 사회에, 재판부에 아무런 기대가 없는 현실에 대해 모두가 성찰적으로 무겁게 받아야 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성폭력 예방의 기본은 평등함이다. 성 차별이 없어야 하고 성인지감수성을 갖춰야 한다. 결국 우리가 가야 할 곳은 힘 없는 소수자에 대한 인권존중이다.

- 성폭력 발생 시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지금 나에게 일어난 일이 성폭력임을 인지하고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내가 거기만 가지 않았더라면’, ‘술만 마시지 않았더라면’ 등 자책감을 갖는 경우가 있는데 성폭력은 피해자 잘못이 아니라 가해자 잘못이므로 ‘내 잘못이 아니다’라고 사건을 바로 보는 것이 인식이 필요하다. 몸에 피해가 있다면 바로 산부인과 등을 방문에 상처 치료와 증거채취 등이 필요하다. 고소여부와 관계없이 정액채취뿐만 아니라 입었던 옷이나, 사진자료, 가해자와 주고받은 문자나 SNS 자료 등등...증거를 모아두는 것 또한 중요하다.

- 혼자 이 과정을 처리하고 진행하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
전국에 170여개 성폭력상담소가 있고 한 자리에서 의료적 진료와 상담, 고소를 할 수 있는 해바라기센터가 있다. 상담소에서는 비밀을 보장받으면서 법적, 의료적, 심리적 지원을 받을 수 있다. 피해자는 무료법률지원으로 변호인 선임을 할 수도 있고 급할 경우 1년 365일 운영하는 (국번없이) 1366에 전화 해 적절한 상담기관을 안내받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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