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우리나라 최초 ‘그레이트 히말라야 트레일’ 완주 설악아씨 문승영 씨

▲ 문승영씨(사진 오른쪽)는 히말라야 등반에 스태프들의 도움은 필수라고 말한다. 그들과‘함께’해야 등반이 가능하다.

문승영씨는 그레이트 히말라야 트레일 (GHT: 히말라야 횡단트레일) 하이루트 1700km를 우리나라 최초로 완주했다. 문승영 씨는 속초 출신의 ‘설악아씨’로 알려져 있는 오지 여행가다. 문 씨가 2014년 4월 첫발을 디디며 5차례, 총 138일에 걸쳐 2018년에 마무리한 ‘극한의 루트’라 불리는 그레이트 히말라야 트레일은 6000m 안팎 고도가 이어지며 낙석, 빙벽, 설상 등 전문 등반이 필요한 구간이 많다. 문 씨가 넘은 고개의 고도를 합치면 약 12만m다. 문 씨는 GHT종주 40일의 기록을 ‘함께, 히말라야’로 책을 내기도 했다.

▲ GHT종주 40일의 기록을 '함께, 히말라야’라는 책으로 펴냈다.

- 왜 히말라야인가
대학에서 지리교육학을 전공하고 학원강사로 일하다 히말라야을 알게 되면서 삶의 방향이 바뀌었다. 운명처럼 히말라야가 나를 이끌었다. 히말라야의 숨막힐듯한 풍광과 순박한 현지인 가이드(포터)들과의 우정이 힘든 여정임에도 불구하고 있는 돈 없는 돈 탈탈 털어 히말라야를 찾게 만든다. 덕분에 그곳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나기도 했다(웃음). 낙천적인 성격에 중·고등학교 때 육상과 카누를 해서 체력 하나는 자신있었다.

- 대부분의 산행기가 자신을 부각시키는데 반해 ‘함께 히말라야’는  특히 타인에 대한 배려가 눈에 뜨인다.
허니문 여행으로 남편과 함께 히말라야산맥 횡단 코스 중 가장 힘들다는 동부 네팔 구간인 ‘칸첸중가~마칼루~에베레스트 지역’(약 450km)을 40일간 연속 횡단했다. 그 험한 길에 현지인 가이드와 포터 열 명이 함께 동행하면서 마을이 없는 고립무원의 산속에서 텐트를 치고 동고동락했다. 포터, 쿡, 가이드 그리고 크고 작은 산골 마을에서 만난 수많은 인연들이 없었으면 완주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메인 가이드와 쿡은 동급으로 서열상 가장 위다. 메인 가이드 밑의 보조 가이드는 쿡 밑의 쿡보이보다 위다. 포터는 쿡보이보다 아래다. 그러나 나에게는 서열이 의미가 없었다. 그저 경험 많은 트레커로 대우하고 스태프로 부르며 서로가 필요로 하는 도움을 주며 산행을 했다. 나 보다 40~50kg의 짐을 더 지고 걷는 포터들에게 더 마음을 쓰여 눈이 허리까지 쌓인 곳에서는 포터들이 지나갈 수 있도록 눈을 치우고 길을 내 주기도 했다.

            가진 것 없어도 많이 웃는 현지인들 보며 행복의 의미 되새겨

           아직 남아 있는 농경문화...  60대 전후 여성 트레커들에게 인기

           마음의 고향 히말라야 돕고 싶어

- 히말라야 트레킹에 관심 있는 이들을 위한 조언 한마디

방송과 언론매체에서 히말라야를 너무 극한으로만 다뤄서 그렇지 쉬운 코스도 많이 있다. 생각보다 히말라야 트레킹이 어려운 코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얼마든지 다양한 방법으로 히말라야를 만나볼 수 있다. 실제 60대 전후의 여성분들도 히말라야에서 트레킹을 많이 한다. 이들은 히말라야의 속살을 보며 유년시절 살아온 과거를 느낀다고 한다. 도리깨나 탈곡기 절구 등 우리의 예전 농경문화가 이 분들의 추억을 다시 샘솟게 한다. 트레킹에서는 가이드나 포터,쿡 이른바 스태프들과의 호흡이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산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마음만 있으면 인생에서 한 번 쯤은 도전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 인생에서 쓴 돈 중에 히말라야를 가기 위해 지출한 비용이 제일 의미있게 생각된다.

- 설악아씨‘라는 별명에 걸맞게 지금은 외설악구조대원으로 일하고 있다.
고향속초의 친구들이 여전히 “오늘도 산이냐, 이 설악아씨야”라고 놀리지만 난 여전히 산이 좋고 또 그 속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좋다. 산을 찾으면 사람이 보인다. 그 속에서 만나는 사람의 모습이 진짜라고 생각한다. 히말라야의 험준한 산속에서 가진 것이 없으면서도 많이 웃는 스태프들을 보면서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가 생각해 봤다. 며칠씩 추위에 떨며 씻지 못하고 있다가 따뜻한 차 한잔을 마주하노라면 샤워할 수 있는 평범한 상황이 행복으로 다가온다. 

 내가 어떤 일을 할 때 가장 행복한가를 생각해 봤다. 누군가를 돕는 일에 가장 큰 희열을 느끼는 나를 발견했다. 그래서 무보수 명예직인 외설악 구조대원으로 활동하게 됐다. 사실 히말라야를 갈 땐 네팔사람들을 위해 모아놓은 옷가지 가득한 23kg의 배낭을 한 개 더 가져간다. 우리에겐 별 것 아닌 헌옷이 그들에게 절실하다. 부모가 모두 돌아가셔 고아가 된 ‘소남 엥지’를 딸로 두고 있다. 책을 낸 이유도 이 아이들을 위한 재단을 설립하고 싶어서이다. 유명해져서 아이들을 위해 좋은 일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도움을 모아 볼 생각이다.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저작권자 © 농촌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