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 - 자전거여행가 차백성씨

자전거로 세계 33개국, 5만여㎞를 달린 자전거여행가 차백성 씨를 만났다. 그는 대우건설 공채1기로 1976년에 입사해 25년간 근무했다. 그는 재계의 별이라는 임원의 자리를 내려놓고 자전거여행가로 과감히 변신해 세계를 누비고 있다.
미국 여행을 하고는 ‘아메리카로드’, 일본 여행 후에는 ‘재팬로드’, 유럽을 다녀와서는 ‘유럽로드’란 단행본을 냈다. 그리고 각종 언론매체에 자신의 여행담을 소개하기도 했다. 자전거로 세계를 누비는 그의 여행은 우리에게 삶의 열정을 주는 소중한 스토리가 된다.

 

여행가 김찬삼의 세계여행기에 푹 빠져
삶을 풍요롭게 할 세계여행가 꿈 품어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미국여행
“초등학교 시절, 교수이시던 아버지를 여의었습니다. 사랑을 주시던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자 절망과 허망함이 이루 말로 할 수가 없었어요. 이때 아버지가 모아둔 책 중에 여행가 김찬삼의 세계여행기를 읽었죠. 호기심이 많던 저는 여행에 푹 빠지고 말았습니다, 에디슨과 같은 위인은 못 될지라도 삶을 풍요롭게 하는 세계여행가의 꿈을 간직하게 된 것이죠. 그리고는 멋진 여행기를 내는 것을 일생의 목표로 삼았습니다. 
쉰 살이던 2000년에 회사를 떠나 자전거로 지금까지 세계를 누비고 있죠. 인생의 전환점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가족의 동의가 있어 가능했습니다.”

“미국여행은 시애틀에서 샌디에이고까지 서부해안 3천㎞ 종주였죠. 여행의 테마는 ‘극기’였습니다. 이 코스는 ‘북에서 남’이 불문율이죠. 시애틀을 출발해 하루 100㎞씩 하루도 쉬지 않고 한 달을 달려 샌디에이고에 도착했습니다. 여행에 앞서 ‘일간스포츠’에서 제 여행기를 연재하기로 제의했던 터라 시애틀을 떠나면서 첫 인터뷰를 했습니다. 다음 샌프란시스코, 그 다음 LA지국에서 인터뷰를 한 뒤 산티아고에 도착해 마지막 인터뷰를 했어요.”

자전거에 40㎏ 이상의 짐을 싣고 달리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주로 캠핑을 하기 때문에 짐이 많았던 것이다. 기본 의식주용 짐만 해도 30㎏나 됐다. 그러다보니 칫솔을 반 토막으로 줄이고, 그 밖의 물건도 최대한 무게를 줄여 30㎏으로 감량할 수 있었다. 현지에서 물, 부식, 과일 몇 개를 보태면 40㎏가 훌쩍 넘었다. 자전거 캠핑 여행은 고도의 짐 꾸리기 노하우가 요구됐다.
전 세계 라이더들이 동경하는 꿈의 코스 미국 서부 해안길 3000㎞. 힘은 들었지만 태평양의 멋진 풍광을 보며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도전은 극복을 전제로 했던 것이다.

식민지 역사 원인 찾아나선 일본여행
“저는 어릴 적부터 왜 우리가 일본사람한테 35년간 종살이를 했는지 의문을 갖고 있었어요. 그들과 똑같이 쌀밥에 된장국을 먹고 생김새도 비슷한데, 왜 모진 설움을 당했는지 알고 싶었죠. 그래서 ‘역사’라는 테마로 일본여행을 떠났습니다. 일본여행은 유희적 기분으로 할 순 없었어요. 그래서 한국과 일본 역사책, 특히 양국의 근현대사 책을 많이 읽고 떠났습니다.”
일본은 세 차례로 나눠 돌아봤다. 첫 번째는 큐슈와 쓰시마, 두 번째는 오키나와와 시코쿠, 세 번째는 혼슈와 홋카이도였다.

일본은 생각보다 국토가 커 두 달에 걸쳐 약 5천㎞를 주파했다. 혼자 다니다 보니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어려움이 많았다.
“일본은 풍수해가 많은 나라죠. 특히 여행 중 비오는 날이 많았어요. 가는 비가 내리다가 폭우로 변하기도 했고, 그러다가 농수로에 빠져 코가 깨지거나 팔에 큰 상처를 입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붕대를 감고 여행을 강행했죠. 심신이 고달프니 가족생각이 밀려오면서 심한 고독감에 휩싸이기도 했습니다.

‘내가 무엇을 얻으러 이런 힘든 여행을 하나...’ 하는 회의가 들 때도 있었죠. 이럴 땐 ‘힘들기 때문에 할 만한 가치가 있다’며 제 스스로를 설득했습니다. 자전거 여행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없습니다.”
가고시마 외곽에 살고 있는 한국계 일본 도예가인 심수관 선생댁을 찾아 갔을 때였다. 그는 정유재란 때 도공으로 끌려왔던 심당길의 14대 후손으로 400여 년째 가업을 잇고 있었다.

“심 선생은 제가 왔다는 비서의 전갈을 듣고 버선발로 뛰어 나와 ‘아니, 서울에서 자전거로 여기까지 왔단 말인가?’ 하며 반갑게 맞아줬습니다. 그날 밤 선생댁에 묵었는데, 일본에 정착하며 고초를 겪었던 가문의 내력을 들려줬습니다. 다음날 ‘銀輪結世界’(자전거로 세계를 누벼라)라는 친필휘호를 써주며 아쉬운 작별의 인사를 나눴습니다. 아직도 심 선생의 자상하고 따뜻한 환대를 잊지 못합니다.”

인문학적으로 접근한 유럽 여행
차백성씨는 유럽여행에 대한 얘기를 이어갔다.
“서유럽 8개국 6천㎞를 세 차례 다녀와 ‘유럽로드’란 책을 냈어요. 유럽은 우리에겐 ‘바람(風)의 원천’입니다. 서양사가 유럽역사이고 유럽역사가 세계사라고 해도 무방하죠. 그래서 유럽 여행은 인문학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그래서 떠나기 전에 역사, 지리, 문학, 음악, 종교, 신화, 인물, 리더십, 전쟁 등 다양한 주제를 섭렵했죠. 세계를 제패했던 이탈리아, 유럽 문명의 원천 그리스, 동양과 서양을 잇는 터키는 무한한 호기심을 자극했습니다.”

북유럽 7개국인 러시아와 발틱 3국(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스칸디나비아 3국( 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도 다녀왔다. 그리고 남유럽인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아우르는 이베리아 반도를 두 달에 걸쳐 자전거로 샅샅이 돌아봤다.
현재 여행기는 완성됐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발간이 지연돼 안타깝다고 그는 말한다.

중국여행 통해 한국인 긍지 되새길터
그는 마지막으로 중국을 가보고 싶다며 향후 여행 포부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중국대륙을 여러 시각으로 풀어보려고 합니다. 우선 태산에 올라보고 싶습니다. 자전거로 오를 수 있다면 더 좋겠지요. 중국 내륙의 삼국지 루트인 적벽대전 전적지와 수호지 호걸의 무대였던 양산박, 두보가 악양루에 올라 동정호를 보며 시를 읊었다는 그곳에 가보고 싶어요. 또 윤봉길 의사가 일본을 향해 저항한 상하이 홍커우 공원이나,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하얼빈 역도 빼놓을 수 없겠지요.”
그의 세계를 향한 두 다리와 두 바퀴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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