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옛날의 트로트 - 고향의 노래를 찾아서

<17> <가을 편지>와 최양숙의 노래

“우리 대중가요사상 가장 우아하고 아름다운 외모와 성악으로 다져진 클래시컬 한 창법은 ‘대중가요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말은 1960~70년대를 풍미했던 가수 최양숙(崔良淑, 1937~ )에 대한 평단의 이야기다.
최양숙에게는 늘 이름 앞에 두 가지 별칭이 따라붙어 다녔다. ‘한국 최초의 샹송가수’ 그리고 ‘서울대 음대 출신 대중가수 1호’란 말이다.

일제시대부터 1950년대까지 활동했던 이난영, 장세정, 황금심, 백설희 등이나 1960년대 트로트 가수인 이미자, 조미미의 창법과 음색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가진 최양숙의 등장은, 우리 대중음악계에 하나의 커다란 변화의 바람이기도 했다.

쓸쓸함이 묻어나는 우아하고 가늘게 떨리는 맑은 음색은 특히 인텔리층에게 인기가 많았다.
특히나 1961년부터 텔레비전 방송들이 개국되고, <선데이 서울> 등의 상업적 주간지 매체들과 본격적인 엘피(LP) 음반시대가 열리면서 그녀의 눈에 띄는 외모와 노래분위기는 뭇 대중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 전성기 때 모습

서울대 음대 재학 때 대중가요계 입문
최양숙은 함경남도 원산이 고향으로 1.4후퇴 때 월남해 서울예고를 거쳐 서울대 음대 성악과에 진학했다.
대학 때까지만 해도 ‘오페라 가수’가 꿈이었다. 가요계는 우연찮게 1958년 KBS 라디오 드라마 <어느 하늘 아래서>의 주제가인 <눈이 내리는데>를 부르면서 입문했다. 이 일은 대학 2학년 때 KBS 합창단원 활동을 하면서 주위의 권유에서 비롯된 대중가수로의 ‘외도(?)’였다.

대학 졸업 후 결혼(1962년)과 함께 모교인 서울예고 교사로 재직하던 중에 건강이 나빠져 잠시 공백기를 가졌다가 1962년 박춘석이 작곡해 백일희가 불렀던 <황혼의 엘레지>를 리메이크해 부르며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다. 말하자면, 샹송을 부르다가 대중가요 작곡가 박춘석에게 발탁된 셈이었다.
그후 <모래 위의 발자국>(1964, 김영광 작곡), <호반에서 만난 사람>(1966, 박춘석 작사·작곡-영화 ‘초연’ 주제가), <기다리겠어요>(1971) 등의 노래들을 히트시키며, 1966년에는 TBC(동양방송) 방송가요대상에서 최희준과 함께 남·녀 최고가수상을 수상하며 최전성기를 구가했다.

그녀의 목소리로 잘 알려진 <태양은 가득히>, <파리의 다리밑>, <사랑의 찬가>, <물망초>, <죽도록 사랑해서>, <빠담 빠담>, <장미빛 인생> 등의 샹송번안곡들 역시 우리 가요 팬들의 사랑을 꾸준하게 받았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포크송과 팝에 밀려 사양길로 접어들자, 1971년 남산 드라마센터에서 오케스트라를 동원해 컴백리사이틀을 가지며 의욕적인 재출발의 의지를 다지기도 했고, 샹송의 본고장인 프랑스와 이탈리아, 벨기에, 홍콩, 일본, 미국, 캐나다를 돌며 민간외교급의 음악활동을 펼쳐보이기도 했다.

▲ 최양숙의 가요히트앨범

을노래의 대명사가 된 <가을 편지>
해마다 가을이 되면 너나 없이 떠올리며 읊조리는 노래 <가을 편지>도 그 무렵인 1971년에 불렀다.
오빠인 최경식 PD가 1968년 평소 친분이 있던 고은 시인을 서울 동숭동의 술집에서 만나 여동생인 최양숙을 위한 노래의 노랫말을 부탁해 즉석에서 받은 시를 김민기에게 작곡을 의뢰했다. 김민기는 <가을 편지>와 함께 자신이 작곡한 <(무궁화)꽃 피우는 아이>란 노래를 최양숙에게 부르게 했다. 훗날 최양숙은, “김민기의 곡 분위기와 기타 반주가 너무 좋아 단 한번만에 노래 녹음을 마쳤다”고 술회하기도 했다.

 

                   <가을 편지>
1.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 주세요 낙엽이 쌓이는 날 / 외로운 여자가 아름다워요
2.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 주세요 낙엽이 흩어진 날 / 모르는 여자가 아름다워요
3.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모든 것을 헤매인 마음
    보내 드려요 낙엽이 사라진 날 / 헤매인 여자가 아름다워요

                                                   (1970, 고은 시 / 김민기 작곡)

 

이 노래는 군사정권 아래에서 이 곡의 작곡자인 김민기가 활동제재를 당하면서 판매금지 되는 불운을 안기도 했으나, 10년 뒤인 1982년 이동원이 불러 재히트 하기도 했다.
그녀의 ‘노래 인생’에 대해서는 지금은 망명하듯 미국으로 이민 가 살고 있는 오빠 최경식 PD가 1966년 발매한 신성일·남정임 주연의 영화 <초연>의 주제가 <호반에서 만난 사람> 앨범에 평론가의 이름으로 쓴 글로 대신해도 좋을 듯하다.

▲ 2018년 KBS <불후의 명곡-전설>로 출연했을 때 모습(KBS 불후의명곡 캡처사진)

“최양숙은 오랜 편력에서 돌아왔다. 클래시컬 리이드에서 파리의 샹송, 샹송에서 팝송으로, 그리하여 이제 그는 가곡과 가요를 분간할 필요조차 없는 우리 노래로 돌아온 것이다. 성숙과 깊이를 동시에 보여주는 이번 앨범은 그동안의 생과 체험을 들려줄 것이다.”
최양숙, 그녀는 2년 전인 2018년, 여든 한살의 나이에 KBS <불후의 명곡-전설>로 우리 곁에 다시 돌아왔다.

 

 

1971년 CBS 기독교 방송의 인기 음악프로였던 <꿈과 음악 사이>에 시인 고은(1933~ )이 출연해 수필을 낭송하게 돼 있었다. 이 프로의 담당 프로듀서(PD)로 음악평론가이기도 했던 최경식은, 이때 배경음악으로 고은 시인의 시가 노랫말로 돼 있는 노래를 깔기로 하고 방송국이 있던 종로5가의 한 막걸리집에서 고은 시인을 만나 배경음악으로 쓸 노래 가사를 부탁했다.
고은 시인은 언젠가 남해의 진해와 통영 앞바다에서 들었던 멸치잡이 어부들의 뱃노래를 떠올리며 그 앞소리인 ‘세노야~’를 제목으로 해서 즉석에서 시를 써내려 갔다. 그 앞소리는 고은 시인의 고향인 옥구(군산) 앞바다에서도 듣던 귀에 익은 ‘삶의 노래’이기도 했다.

                              <세노야>
1. 세노야 세노야 / 산과 바다에 우리가 살고  산과 바다에 우리가 가네
2. 세노야 세노야 / 기쁜 일이면 저산에 주고 슬픈 일이면 님에게 주네
3. 세노야 세노야/ 기쁜 일이면 바다에 주고 슬픈 일이면 내가 받네
4. 세노야 세노야 / 산과 바다에 우리가 살고 산과 바다에 우리가 가네

최경식 PD는 이 노랫말을 <가을 편지> 노래를 통해 알게 된 당시 서울대 미대생인 김민기에게 줘 작곡을 의뢰했지만 김민기는 서울대 음대 작곡과에 다니던 누나 친구 김광희(1950~ )에게 작곡을 의뢰했다.
“방송국에서 가사로 쓰일 시를 받은 지 이틀 만에 작곡을 끝냈다. 방송날짜가 워낙에 촉박해서 가수가 노래 익히기에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판단해서 노래를 가장 잘 아는 작곡자인 내가 김민기의 기타반주에 맞춰 노래를 불렀고 그것이 방송을 타게 됐다.”

<세노야> 작곡자이자 노래까지 직접 부른 김광희의 얘기다. ‘얼굴과 이름없는 가수’ 김광희는 여전히 베일에 싸인 채 <세노야>노래는 전파를 타게 됐고,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이 노래는 최경식 PD의 친여동생이라는 인연으로 1970년 최양숙이 앨범을 냈고, 그 이듬해에 양희은이 불러 최양숙의 노래보다 더 잘 알려지게 됐다. ‘한국 최초의 샹송가수’였던 최양숙은 <가을 편지>와 함께 이 노래로 포크송에 대한 지평을 열어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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