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옛날의 트로트 - 노래의 고향을 찾아서

<15> <과거를 묻지 마세요>와 나애심의 노래들

▲ <과거를 묻지 마세요> 노래비. 1998년 서울 광진구 구의동(어린이 대공원 후문) 거리공원에 ‘이 노래를 아끼는 벗들이 뜻을 모아’ 세웠다.

탁음 섞인 허스키 보이스로 주목 받아

▲ 나애심의 전성기 때 모습

나애심(羅愛心, 1930~2017)의 본명은 전봉선(全鳳仙). 원로가수 명국환의 <방랑시인 김삿갓>과 <아리조나 카우보이>, 박경원의 <이별의 인천항>, 현인의 <인도의 향불> 등을 작곡해 히트시킨 작곡가 전오승(全吾承, 1923~2016)이 친오빠다.
평안남도 진남포가 고향으로 진남포여고를 졸업하고서는 애초 연극배우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디뎠다.
그녀의 이국적인 생김새와 글래머러스 한 풍만한 몸매는 가수보다는 연기자 쪽이 더 어울릴 법도 했다. 훗날 가수로 데뷔한 후에도 끊임없이 여러 편의 영화에 주연급으로 캐스팅됐던 것만 보더라도 그녀의 타고난 천부적 재질, 신체적 조건과 결코 무관치 않다고 볼 수 있다.

▲ 나애심의 친오빠인 작곡가 전오승

아무튼 그녀는 6.25전쟁 발발 후 맥아더 원수의 인천상륙작전 바로 다음날, 서울의 오빠 전오승을 찾아 고향 진남포를 떠나 월남했다. 이 무렵 오빠 전오승은 HLKA 정동방송국 경음악단에서 콘트라베이스 연주자로 있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1953년 오빠의 곡 <밤의 탱고>를 받아 가수로 데뷔했다.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란 뜻의 ‘나애심’이란 예명도 이때 <빈대떡 신사>를 부른 한복남이 지어줬다. 그녀는 등장부터가 온통 화제거리가 됐다.

휘둥그런 눈에 가무잡잡한 피부며 몸매가 영낙없는 인도계 외국여자 모습인데다가, 특히 전통 트로트 가수들의 틀에 박힌 신파조의 꺾기창법과는 전혀 다른 탁음이 섞인 굵직한 ‘허스키 보이스(Husky Voice, 쉰 목소리)’는, 낯설면서도 도시적 매력을 풍겨줘 대중들의 마음을 붙들어 잡아맸다.

대구 피난시절에는 이북출신 예술인들의 모임인 ‘꽃초롱’ 단원으로도 활동했는데, 이것이 인연이 돼 1956년 계용묵(1904~1961)의 소설을 이강천 감독이 영화화 한 문화영화 <백치 아다다>의 주인공으로 캐스팅 되고, 주제가까지 부르게 된다. <백치 아다다>의 주제가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시나리오 작가인 홍은원(洪恩遠, 1922~1999)이 노랫말을 짓고, 평안남도 안주 출신으로 가곡 <가고파>를 작곡한 김동진(金東振, 1913~2009)이 작곡을 했다.

 

‘초여름 산들바람 고운 볼에 스칠 때/ 검은 머리 큰 비녀에 다홍치마 어여뻐라 / 꽃가마에 미소 짓는 말못하는 아다다여 / 차라리 모를 것을 짧은 날의 그 행복 / 가슴에 못박고서 떠나버린 님 그리워 / 별 아래 울며 새는 검은 눈의 아~다다여’

                           (1956, 홍은원 작사 / 김동진 작곡)

 

1983년부터 연예생활 일체 접고
신앙생활에 전념해

그 바로 한 해 전인 1955년, 처음으로 영화 <구원(久遠)의 애정>에 여주인공으로 발탁돼 배우 윤일봉과 호흡을 맞추기도 했는데, 이때 부른 노래가 널리 알려진 <물새 우는 강언덕>(손석우 작사/ 박시춘 작곡)이다. 이 영화는 흥행에는 실패했으나, 유니버살레코드사의 음반으로 제작돼 세상에 나온 백설희의 노래가 주제가 원곡가수인 나애심을 제치고 대히트를 하면서 백설희는 ‘꾀꼬리 목소리’라는 세평을 얻으며 트로트계 뉴스타로 발돋움 하기도 했다.

이후 서양풍의 탱고리듬으로 된 <언제까지나>(김문응 작사/전오승 작곡), 블루스곡인 <영원한 사랑>(전오승 작사·작곡, 1958), 샹송 번안곡인 <남의 속도 모르고>(1959), <미사의 종>(전오승 작사·작곡, 1958), <아카시아 꽃잎 질 때> 등의 노래와 <돌아오지 않는 해병>(1963), <감자>(1968),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1981) 등의 영화까지, 1950년대부터 1980년대에 걸쳐 100여 편의 영화출연과 300여 곡의 노래를 불러 ‘연기와 노래’를 겸하는 이른바 ‘싱잉스타(Singing Star)’로서의 면모를 아낌없이 보여줬다.

그녀가 부른 노래 중 최대의 히트곡이자 대명사처럼 불리는 <과거를 묻지 마세요>(정성수 작사 / 전오승 작곡, 1959)는 당시 유명배우 문정숙이 주연을 맡은 같은 이름의 영화주제가 이기도 하다.

 

                       <과거를 묻지 마세요>
1. 장벽은 무너지고 강물은 풀려 / 어둡고 괴로웠던 세월도 흘러
   끝없는 대지 위에 꽃이 피었네 / 아 아~꿈에도 잊지못할 그립던 내 사랑아
   한 많고 설움 많은 과거를 묻지 마세요
2. 구름은 흘러가고 설움은 풀려 / 애달픈 가슴마다 햇빛은 솟아
   고요한 저 성당에 종이 울린다 / 아 아~흘러간 추억마다 그립던 내 사랑아
   얄궂은 운명이여 과거를 묻지 마세요

                                                      (1959, 정성수 작사 / 전오승 작곡)

 

그렇게 눈부시게 스크린과 무대를 오가던 그녀는, 1983년 이후 거짓말처럼 모든 연예활동을 접고 오로지 신앙생활에 전념하게 된다.
직접적인 이유야 딱히 알 수 없지만, 특히 하나 뿐인 딸(김혜림)의 교육문제 때문이었다는 게 중론이다.

▲ 나애심-김혜림 모녀

그러나, 정작 딸은 그런 엄마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태어나자마자 아버지가 없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존재를 묻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내 이름을 혜림으로 지어주셨다는 말만 전해 들었다.”
나애심, 아니 전봉선·만인의 ‘디바(DIVA)’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그녀는, 그렇게 속죄양처럼, 혹은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란 예명처럼 당찬 자부심으로 살다 10년 여의 오랜 투병생활을 끝으로 여든 일곱살 되던 해에 산타마리아의 종소리를 들으며 이 세상을 떠나갔다.

 

■  가요 Topic

명동 술집에서 태어난 <세월이 가면>

▲ <세월이 가면> 노랫말을 지은 시인 박인환(오른쪽)과 작곡자인 극작가 이진섭(1955년 모습).

6.25 전쟁으로 허겁지겁 아랫녘 부산·대구로 피난 내려갔다가 서울로 돌아온 직후인 1956년 3월 초. 실로 오랜만에 명동 휘가로 다방에 모여 환담을 나누던 시인 박인환(朴寅煥, 1926~1956), 극작가 이진섭(李晋燮, 1922~1983), 언론인 송지영(宋志英, 1916~1989), 그리고 가수 나애심이 여흥을 즐기기 위해 부근의 단골 빈대떡집(경상도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막걸리 잔이 한 순배 돌자 박인환과 이진섭이 나애심에게 노래 한 곡조를 청했다.(훗날 송지영의 회고에 따르면, 이 무렵 나애심은 미8군무대에서 함께 활동하던 여동생 전봉옥과 충무로에서‘뚜리바’라는 카페를 운영했는데, 소위 단골이 청하면 즉석에서 <세월이 가면> 등의 노래를 파리에서 듣는 샹송처럼 불렀다고 한다.)

나애심이 “마땅히 부를 노래가 없다”고 난색을 표하며 발뺌을 하자, 순간 박인환이 코트주머니에서 담배갑을 꺼내 펼친다음 그 종이에 무언가를 쓱쓱 써내려 갔다.
그리고 그 종이쪽지를 이진섭이 건네받고는 샹송 멜로디를 흥얼거렸다. 이때의 정경을 소설가 이봉구는 훗날 자신의 글 -<명동, 그리운 사람들>에서 이렇게 그렸다.

“<세월이 가면> 첫 발표회는 동방살롱 앞 빈대떡집에서 열리게 되었다. 박인환은 벌써 흥분이 되어 대폿잔을 서너잔 들이켜고, 이진섭은 술잔을 든 채 악보를 펼쳐놓고 손가락을 튕기는가 하면, 그 몸집과 우렁찬 성량을 자랑하는 테너 임만섭이 목청을 가다듬기 시작했다. 거리의 사람들이 모여들거나 말거나 이들 세 사람 입에서는 샹송이 쉴 새 없이 흘러나왔다. 빈대떡집 젊은 마담이 박인환의 어깨를 치면서 야무진 사투리로 말했다.- 그 노래 눈물 난다. 인환이 어쩔라고 그런 노래를 지었노?”
<세월이 가면>은 그렇게 태어났다.

 

‘지금 그 사람의 이름은 잊었지만 그의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어 /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고 과거는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 위에 /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 지금 그 사람의 이름은 잊었지만 그의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어 내 서늘한 가슴에 있건만.’

                                        (박인환 <세월이 가면> 원시, 1956)

 

이 시를 마지막으로 남기고 박인환은, 그 일주일 뒤 폭음에 의한 심장마비로 서른 한 살 푸른 나이에 세상을 떴다.
나애심은 1956년, 박인환이 세상을 떠난 바로 그 해에 친오빠인 작곡가 전오승 편곡으로 신신레코드사에서 이 노래를 취입해 세상에 내놓는다. 말하자면,<세월이 가면>의 원곡가수인 셈이다.

훗날 나애심의 친딸이자 가수인 김혜림(53)이 한 TV프로그램에서 눈물을 쏟으며 엄마 나애심 얘기를 털어놓은 적이 있다.
“난, 엄마가 가수로 활동하는 걸 아예 못봤다. <세월이 가면> 노래도 엄마 임종 직전(2017년)에야 ‘그 노래 내 노래야’ 해서 그런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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