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명견 교수의 재미있고 유익한 옷 이야기(87)

"무엇을 입어도
다 벗는다 해도
더위를 못 비켜가..."

장마가 서서히 꼬리를 내리며 찜통더위가 바짝 따라 붙고 있다. 장마엔 빗물로 대지를 식혔지만, 장마 뒤의 더위는 그야말로 공포다. 무엇을 입어도, 다 벗는다 해도, 이 더위를 비켜갈 수는 없다. 그래도 가장 시원할 수 있는 옷을 찾아야한다. 인체의 방열(放熱) 메커니즘과 섬유, 직물의 성질, 그리고 옷의 디자인을 통해 최상의 답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인체는 여름이나 겨울이나 약 37℃의 체온을 유지해야 한다. 이 온도를 벗어나면 병이 되고, 심하면 생명도 잃게 된다. 겨울에는 체온 손실을 막고, 무더운 여름엔 체열을 밖으로 내보내야 하는 것이다. 조물주는 사람이 37℃를 유지할 수 있는 기능을 주셨다. 환경온도가 높아지면 자연스레 땀이 흐르는 것도 몸을 식히는 기능이지만, 한 겨울에도 인체에서는 수분 증발을 통해 열을 내보내고 있다. 이 증발은 사람이 전혀 느끼지 못하는 상태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불감증설(不感烝泄)이라고 한다. 이것에 의한 하루 증발량은 800~1200g정도로 500㎖ 생수 두 병 정도다. 날씨가 더워지면 불감증설량도 많아지고, 땀을 통해 적극적으로 증발이 일어난다. 그러나 높은 기온과 습도, 거기에 바람까지 없으면 증발은 어려워진다. 여름이 힘든 이유다.

시원하게 옷을 입기 위해서는 바로 체열이 밖으로 잘 빠져나가게 하면 된다. 섬유의 열 전도성이 좋고, 수분 흡수와 흡수된 수분을 빠르게 밖으로 배출하는 성질이 중요하다. 마섬유(麻纖維)는 이 같은 기능이 매우 우수하다. 삼베(hemp), 모시(ramie), 아사(linen)가 대표적인 마섬유다. 특별히 여름에 가장 선호되고 있는 리넨은 자체 섬유 무게의 20% 정도의 수분을 흡수할 수 있고, 통기성도 좋아 빨리 마르기 때문에 그 기화열로 인체를 잘 식혀준다. 따라서 세균 번식도 잘 안 되고 섬유가 피부에 붙지 않아, 오랜 시간 입어도 쾌적한 청량감을 느낄 수 있는 이상적인 여름 옷감이다. 그러나 구김이 심하고 가격이 비싸서 다른 섬유들과 혼합해 사용하기도 한다.

섬유의 열전도성뿐만 아니라 직물의 두께나 밀도도 크게 영향을 주기 때문에 얇을수록, 성글게 짜인 것일수록 좋다. 또한 수분 증발에는 바람의 역할이 크므로 가능한 한 여유 있고, 몸을 많이 드러내는 디자인이 유리하다.

비싼 천연 마직물 외에도 여름이면 쏟아져 나오는 합성섬유가 바로 냉감 소재다. 폴리에스테르, 스판덱스 같은 합성섬유에 구멍이나 돌기를 만들기도 하고, 커피나 옥(玉) 가루 등으로 가공해 통풍이 잘되도록 해 피부에 달라붙지 않으면서 수분이 빠르게 말라 시원하게 하는 냉감 소재들이 많이 개발되고 있다. 현대 과학의 산물들이다. 속칭 냉장고 바지가 가장 널리 알려진 대표적이고 서민적인 냉감소재 제품이다. 초기의 냉장고 바지는 중·노년층의 바지로 여성들의 사랑을 받아왔으나 이제는 남성들의 노동복으로도 널리 애용되고 있다. 2013년엔 미국 CNN이 한국의 냉장고 바지를 조명해 국제적인 관심을 끌 정도로 유명하다.

온도와 습도를 높이며 마지막 기승을 부리는 이 더위는 우리가 견뎌야 하는 자연의 이치다. 간단한 과학의 활용으로 보다 쾌적한 여름나기를 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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