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미월의 문학향기 따라 마을 따라 -전남 보성

▲ 보성 차밭

푸른 녹차향 가득한 보성읍
꼬막의 고장 벌교를 돌아보며
남도의 맛과 멋에 흠뻑 취하다...

전남 보성은 녹차의 고장이다. ‘녹차 수도 보성’이라는 간판이 곳곳에서 보성을 알린다. 어디를 봐도 아름답게 가꾼 차밭이 눈을 시원하게 해준다. 대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골짜기에, 굽이진 산등성이마다 차밭이 땅의 모양과 형편에 맞게 일궈져 있다. 벌교에는 소설가 조정래의 태백산맥문학관이 있고, 읍내 곳곳에는 대하소설 ‘태백산맥’에 나오는 장소들이 스토리텔링을 형성하며 재미를 준다. 벌교 꼬막은 일품이다. 차향과 더불어 주민들의 삶이 곳곳에 짙게 밴 보성을 다녀왔다.

마음속 깊이 초록으로 물들다
남쪽으로 한참을 달려서 보성 땅에 도착하니 초록이 더 깊다. 장성을 들러 보성에 도착한 터라 점심시간을 조금 넘겼다. 남도음식 명가라는 한정식집은 아쉽게도 휴식시간으로 문이 닫혔다. 정원이 아름다운 집이었는데, 발길을 돌려 인근 식당에서 낙지덮밥을 먹고 ‘대한다원’으로 향했다.
입장료는 성인 1인이 4000원이다. 드라마 ‘여름 향기’, ‘태왕사신기’ 등의 촬영지로도 유명하고, CNN이 선정한 ‘세계의 놀라운 풍경 31선’에 선정된 녹차밭의 일렁이는 초록 물결은 장관이다. 연초록 녹차아이스크림을 사 들고 폼 나게 녹차밭 배경으로 셔터를 눌렀다.

한낮의 땡볕은 무더웠지만 넓은 다원(茶園)에 조성된 삼나무 숲과 편백나무 산책로를 걸을 때는 잠시 더위를 잊었다. 하늘을 찌를 듯 한 아름드리 삼나무 숲길을 걸을 때의 청량감을 무엇에 비할 수 있으랴. 나무 그늘 아래 벤치에 앉았다. 차밭에서 불어오는 차향이 코끝을 간질이고 초록 그늘이 주는 숲의 시원한 냉기가 심신에 힐링을 선사한다. 선물 코너에는 녹차로 만든 상품들로 가득하다. 녹차 비누, 녹차 양갱, 녹차 과자, 녹차 라떼 등을 샀다.

▲ 율포해수녹차센터

솔향 가득한 득량만 율포해변
대한다원을 두루 보고, 봇재를 넘어 굽이굽이 내려오다 눈길을 사로잡는 풍경 앞에 섰다. 초록 잎이 펼치는 세상이다. 다향각에서 보는 다랑이논 같은 녹차밭 풍경이 한 폭의 수채화 같다.
율포해변의 숙소에 도착해 짐을 풀고 주변 산책을 했다. 득량만에서 유월에 잡힌다는 살이 통통한 바지락을 삶아 무를 넣고 새콤달콤하게 무친 바지락 회무침이 저녁 메뉴다. 쌀밥에 참기름을 넣고 바지락 회무침을 쓱쓱 비며 먹는 맛, 맥주 한 잔을 곁들이니 아름다운 여름밤이다.

해변을 산책했다. 득량만의 잔잔한 바다를 배경으로 해변 낭만의 거리 솔밭에는 텐트족들이 별빛 아래 파도 소리와 풀벌레 소리의 협주곡을 듣는다. 율포에 가면 빼놓을 수 없는 체험코스 해수녹차탕을 찾았다. 먼 길을 달려와 피곤한 몸을 말끔히 씻어준다. 차의 고장 보성 ‘율포해수녹차탕’은 천연암반수를 끌어올린 해수에 짙은 갈색의 찻잎을 우려낸 탕이다. 뜨거운 녹차탕에서 나왔는데, 아이러니하게 시원한 맛이다.

둘째 날 새벽 숙소에서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온다. 여명 속으로 하루의 단추를 풀며 어선들이 바다를 가른다. 만선을 기원했다. 아침 식사를 서둘러 하고 나도 세상 속으로 출항한다.
추억의 거리가 있는 득량역으로 향했다. 득량만 해안도로를 따라가는 길에 감자밭과 옥수수밭이 드넓게 펼쳐진다. 경상도 삼랑진역에서 전라도 광주송정역까지 운행되는 경전선(慶全線)인 득량역에 도착하니 ‘득량 추억의 거리’가 나온다. 추억을 재현한 사진관, 전파사, 추억 문방구, 장군 왕대포 간판들과 벽화가 정겹다. 득량역은 시골 역의 전형을 보여준다. 득량역 앞 고목 느티나무 평상에는 동네 어르신들이 손부채 없이 아침을 맞고 계시다.

태백산맥 기운이 꿈틀대는 벌교
시간이 멈춰선 듯 한 벌교에는 작가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의 무대로 유명하고, 태백산맥문학관이 있다. ‘벌교 가서는 주먹 자랑하지 말라’는 말은 일제강점기에 교통과 행정의 요지가 되면서 돈이 넘쳐나는 곳이었고 주먹패도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여자만(汝自灣)의 깊고 차진 갯벌에서 잡힌 벌교 꼬막은 벌교의 대표 음식이다. 점심으로 꼬막 정식을 먹었다. 꼬막찜, 꼬막무침, 꼬막전, 꼬막 탕수, 꼬막 된장찌개 등이 한 상 가득 나온다. 씹을수록 쫄깃한 꼬막의 식감이 별미다. 태백산맥 덕분에 벌교 꼬막은 전국에 널리 알려졌다. 조정래가 이룬 쾌거가 아닐까.

▲ 보성여관

소설에 나왔던 현부자 집, 소화네 집, 보성여관(남도여관), 구 벌교금융조합 등이 있는 거리는 스토리가 있는 감성으로 출렁인다. 보성여관은 다다미방과 정원, 찻집 등 깔끔한 시설이 하룻밤 묵어가고 싶은 유혹을 한다.

▲ 벌교에 있는 태백산맥문학관

태백산맥문학관은 단일 문학작품을 위해 설립된 문학관으로는 국내 최대 규모다. 건축물이 북향인 이유는 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을 담았고 산줄기를 자른 위치에 문학관이 위치한 것은 남북 분단의 현 상황을 의미한다.

작가가 소설 취재를 위해 입었던 복장이 눈길을 끈다. 전 10권으로 이뤄진 대하소설 <태백산맥> 육필원고 1만6500장을 비롯한 작가의 취재수첩, 작가가 직접 그린 벌교 읍내와 지리산 일대의 약도 등 작품의 탄생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사람 키보다 높은 독자들이 정성 들여 또박또박 쓴 소설 필사 원고지도 발길을 잡는다. 문학관과 벌교 읍내를 돌아보며 우리 민족이 겪은 분단 의 아픔과 이데올로기의 대립, 민중의 한(恨), 역사를 재조명하게 된다.
태백산맥이 품고 있는 고장, 다향(茶香) 가득한 보성읍과 꼬막의 고장 벌교를 돌아보며 남도의 맛과 멋에 흠뻑 취했다.

▲ 독자들의 소설 태백산맥 필사 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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