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 - 임실생약영농조합법인 심재석 대표

전북 임실군 오수면의 외진 척박한 황무지를 개간해 약초 재배에 이어 가공과 건강식품 제조, 체험관광에 이르기까지 농업의 6차산업화를 실현한 임실생약영농조합법인 심재석 대표. 그로부터 약초재배 영농사례와 약용작물을 소재로 한 기업운영 성공담을 들어봤다.

 

부모 설득해 매입한 황무지 6천평...
국내 10위권 약초재배에 이은
건강식품 성공 바탕으로 세계화 추진

4-H 선배로부터 약초재배 전수받다
심재석 대표는 20세 때 전주농림고등학교(현, 전주생명과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임실군 오수면에 있는 부모 곁으로 돌아와 농사를 시작했다. 당시 부모의 농사규모는 약 1천 평에 불과한 소농이었다. 때마침 부모님이 쌀계를 해 탄 돈으로 논을 사려던 참이었다.
“논농사보다 밭농사가 전망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렇지만 부모님은 완강했어요. 3일간 단식을 하며 밭을 사자고 졸랐어요.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결국 아버지께서는 ‘야, 이놈아 나는 모르겠으니 네 맘대로 해라’라고 승낙하셨습니다.” 심 대표는 그 돈으로 황무지 6천 평을 사들였다.

심 대표는 나름대로 학교에서 배운 기술을 바탕 삼아 감자, 생강, 토마토 농사에 도전했지만 영양분이 부족한 황무지인데다가 기술력과 자본, 경험이 일천했던 터라 실패를 거듭했다.
4-H 활동을 하면서 ‘좋은 것을 더욱 좋게’라는 4-H이념을 터득했기에 그는 농사를 잘 짓고 싶었다. 그래서 4-H활동을 통해 알게 된 장수군의 약초재배 선배회원을 만나 그에게서 약초재배 정보와 기술을 배웠다. 그것이 1981년 약초재배를 시작해 약초농사의 성공을 찾아가는 단초가 됐다.

 

율무로 시작해 독활․작약 주산지 조성 주도
첫 약초농사로 율무를 재배했던 심 대표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농업을 평생직업으로 하겠다는 단호한 결의를 하고 소득을 올리려고 열심히 농사지었어요. 율무는 척박한 토양에서도 잘 자랐어요. 수확 후 탈곡하려고 쌓아 놓으니 마당애 한 가득이 되더군요. 그걸 본 사람들이 ‘재석이가 부자됐다’며 재배기술을 자꾸 물어보시더군요. 당시 농촌에선 통일벼가 재배되고 비닐멀칭재배가 되던 때였는데, 농민들이 벼 이외의 소득작물에 관심을 두면서 약초재배에 관한 문의가 쇄도했어요. 그 이전엔 임실지역에서 약초를 재배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거든요. 1983년 5평의 작은 건물을 임대해 ‘오수생약사업소’라는 간판을 달고 약초재배 상담과 기술 지도를 시작했죠.”

심 대표는 담배, 생강, 고추는 수확·가공이 어려운 작목이라 바로 내다팔았다. 그러나 약용작물은 한의원과 한약방에서 즉시 사용할 수 있도록 세척과 건조, 절단 등 가공공정을 거쳐 부가가치를 높이며 약초 불모지였던 임실에서 약초재배를 선도하게 됐다.
한편, 심 대표는 임실군을 독활(생두릅) 전국 생산량의 70%를 생산해 내는 주산지로 키워내기도 했다. 그중 20%는 심 대표가 직접 생산했다. 이러한 성과는 임실군이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작약 주산단지로 지정되는데 큰 힘이 됐고, 심 대표는 그 역할의 중심에 있었다.
그러면서 심 대표는 자신의 땅과 임차한 땅 5만 평에 작약 3만 평, 독활 2만 평을 재배하며 전국 10위권의 약초전업농가로 우뚝 섰다.

 

한중 수교 후 값싼 약재 수입 봇물...
건강기능식품 제조로 과감히 전환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나라가 중국과 외교관계를 맺으면서 값싼 수입약재가 봇물 터지듯 밀려들어왔다. 국산 약재의 가격 경쟁력이 곤두박질쳤고, 그의 약초재배도 난관에 봉착했다.
이때 심 대표는 큰 결단을 내렸다. 약초재배와 가공, 판매시스템에서 건강식품 제조업으로 전환한 것이다. 새출발의 첫 걸음으로 그 동안 운영해왔던 생약재 건조시설을 굴삭기로 밀어버리고 관내 부존자원을 이용하기 위한 건강식품 제조시설을 설치했다. 약탕기로 시작한 제조설비로는 제품의 균일성을 확보하기가 힘들다고 판단한 6개월 만에 설비를 교체하며 품질을 높이는데 매진했다.

특히, 경험과 관행을 바탕으로 한 생산으로는 품질 고급화와 제품 개발에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 원광대 의약자원연구센터, 전북대 식품공학과 등 연구기관과 협약을 맺고 연구를 기반으로 한 제품 개발·생산체계를 갖췄다.
이러한 노력으로 심 대표는 2001년 국내에선 최초로 섬진강에 서식하는 다슬기를 이용한 간기능 보호 건강식품을 개발해 냈다. 2003년에는 한국식품연구원의 용역연구를 통해 토종민들레를 상품화하기도 했다. 이후 제품 개발에 탄력을 받은 그는 전라북도농업기술원 약용작물연구소의 기술지원을 받아 인진쑥진액과 전북대 식품공학과의 공동 개발로 산수유, 흑마늘, 천마 등을 활용한 30여 종의 제품을 생산했다.

 

국내 최초 엉겅퀴 재배 성공
글로벌 엉겅퀴 약재산업화가 꿈

최근 임실생약을 대표하는 작물은 엉겅퀴다.
“약초전문가로서 자타공인의 임실생약 대표상품을 개발해야겠다는 각오로 토종엉겅퀴의 약재화에 나섰습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엉겅퀴 재배농가가 전무했었죠. 엉겅퀴 생리작용과 재배방법 등을 터득하며 국내 최초로 엉겅퀴 재배에 성공하게 됐죠.”
엉겅퀴 연구 16년차에 이른 지금까지 그는 엉겅퀴의 부위별, 수확시기별 생리활성물질을 분석해 임실엉겅퀴의 성분지도를 완성해냈다. 그리고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임실치즈연구소, 전주대, 중앙대, 가천대, 아주대, 부산대 등 전국의 다양한 과학자들과의 연구 협력을 통해 산야초인 엉겅퀴가 지닌 약효를 규명해냈다.

“예로부터 엉겅퀴는 간에 좋고 어혈을 풀어주고 신경통과 관절통에 좋다고 전해져왔는데, 그것을 과학적으로 확인한 것이죠. 연구기관에서 엉겅퀴의 알츠하이머 신경세포 보호 효과와 췌장세포 보호 효과, 당뇨합병증 등 치료효과를 밝혀내면서 15종 이상의 엉겅퀴 제품을 개발하게 됐습니다.”
현재 엉겅퀴를 주원료로 생산·판매되는 제품은 간기능 보호와 혈액순환, 숙취 해소에 좋은 액상, 환, 차(茶), 식초, 발효식품 등과, 관절과 근육통에 효험이 있는 연고형 크림 등 다양하다. 엉겅퀴가 식의약 소재로 활용되면서 산업화도 크게 진전돼 현재 관내 17개 농가가 임실생약과 엉겅퀴를 계약재배하고 있다. 그는 아름다운 엉겅퀴의 보라색 꽃을 관광자원화해 대규모 테마공원을 조성, 꽃 피는 시기에 많은 관광객이 끌어 모으고 있다.

“처음에는 잘 모르고 농사를 시작했다가 부가가치 높은 약초 재배에 이어 약초가공을 하다 보니 전문가가 됐더라고요. 그 후에는 망하지 않으려고 애쓰다보니 점점 진화해서 이제는 건강식품 제조에 철학과 비전을 갖게 됐습니다. 앞으로도 올바른 건강기능식품을 개발하고, 제가 개발한 한국 엉겅퀴 제품이 세계화되고 글로벌 소재화 되는데 힘을 쏟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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